최저임금과 최고임금, 그리고 잔인한 봄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뿐만이 아니다

3월 19일 저녁 부천 중동역 1번 출구 앞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최저임금은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노동자를 살려 두기 위해 국가가 법으로 정해 놓은 임금으로 2015년 3월 현재 1시간에 5,580원입니다. 1개월로 치면 116만 원쯤 됩니다.

뉴스를 챙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요새 정부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최저임금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여당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7%만 올리자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평균임금의 50%면 1시간에 8,000원쯤 되고 1개월이면 160여만 원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이 적어도 ‘시간당 1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개월로 치면 200만 원쯤 됩니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의 말을 빌자면 현재 한국 땅에서 “월급 200만 원 이하가 무려 940만 명”이라고 합니다. 만일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대로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른다면 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입니다. (그들의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숫자는 더 늘어나겠지요.)

저는 이 글에서 최저임금이 얼마가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긴 올라야 할 것 같은데 대체 얼마나 올라야 할까요? 민주노총이 주장하듯 1만원만 오르면 충분할까요? 더 올라야 하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재벌들이 주장하듯 한 푼도 오르지 않아도 먹고살 만할까요? 1만원으로 올린다고 해도 몇 년이 지나면 또 서명운동과 지루한 입씨름을 되풀이해야 하진 않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여당과 야당의 주장보다는 민주노총의 ‘1만원 쟁취’를 지지합니다. 실제로 중동역 1번 출구에서 진행된 서명운동은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멈춰 서서 서명을 했을 만큼 큰 관심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최저임금보다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최저임금이 얼마여야 하는가?’가 아니라 ‘최고임금은 왜 그렇게 값이 매겨졌는가?’입니다.

  부천 중동역 1번 출구에서 민주노총 부천지부가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겐 얼마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최저임금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톨스토이의 소설 제목을 빗대어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사람에겐 얼마큼의 돈이 필요할까?’ 법원에서 일하는 판사가 한 달에 받는 돈과 거리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받는 돈은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어떤 노동에는 대가로 얼마가 쥐여져야 하는지 대체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시세’를 들먹이며 편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 시세 또한 사람이 정한 질서가 아닐까요? 노동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헤아려 적당한 이윤을 붙여 ‘가격’을 정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노동의 대가’ 그 자체로 받아야 하는 돈은 과연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져야 할까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단지 직업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호소할 뿐 월급까지 동등해야 한다는 뜻까지는 담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판사와 청소노동자가 왜 다른 월급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새 청소노동자 월급도 생각보다 많다”고 제게 이야기하신다면 청소노동자가 아니라 제 이야기로 바꿔 보겠습니다. 다시 묻죠. 왜 판사는 저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을까요? (저는 현행 최저임금보다 살짝 많은 월급을 받고 일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해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그러나 판사들이 법 공부를 열심히 할 때 저는 다른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요? 통합진보당 해산을 판결한 헌법재판소장을 보면 판사라고 해서 다 똑똑한 것 같진 않은데요? 사법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치렀기 때문이라면 결국 월급은 직업 자체의 성격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땄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많은 월급은 결국 자격증값일까요?

현재 국회에서 또는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 논의는 무척 중요합니다. 온 나라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이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110만 원에 지나지 않는 최저임금은 당연히 올라야 하지만 아마 이 실랑이는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갑’과 ‘을’이 존재하는 한 계속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한 1,000년쯤 지나고 나면 지금처럼 최저임금이 어쩌구 하는 입씨름보다 ‘최고임금’의 정당성을 들여다보려는 논의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끌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은 노동자들이 다 하는데 재벌 우두머리들은 왜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까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식당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들은 왜 해마다 최저임금에 허덕이며 살아야 할까요? 어떤 노동에는 얼마가 값매겨져야 한다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왜 사람들은 그 기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까요?


제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창문을 넘어 도망간단다.” 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마저 숫자로 줄 세우는 천박한 것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산소처럼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남들의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더 꺼내 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 땅의 자본주의가 뼈저리도록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일한 만큼 먹고살 수 있는 세상,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세상은 정녕 꿈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도 최고임금도 없는 세상은 아주 먼 미래에나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어쨌든 현실은 잔인합니다. 가장 잔인한 게 뭔 줄 아시나요?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정부 추천과 노동부장관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위촉한다는데(한마디로 대통령이 뽑는다는데) 대부분 대학교수에 무슨무슨 연구원인 그 사람들이 과연 한 달에 고작 100여만 원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요? 그들에게 최저임금이란 노동자의 목숨줄이 아니라 그저 깡통에 땡그랑하고 던져 주는 동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올려준다고 해도 선심 쓰듯, 거지에게 적선하듯 결정하는 것이 전부겠지요.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를지는 오는 6월에 정해집니다. 그때까지 민주노총은 500만 명에게 ‘최저임금 1만원’ 서명을 받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어차피 둘 중 하나일 테지요. 오르거나 안 오르거나. 그러나 최고임금은 늘 그랬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갈 것이고, 최저임금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높으신 분들이 최저임금을, 노동자들의 목숨줄을 쥐락펴락하게 될 것입니다.

봄은 성큼 다가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여전히 춥습니다. 옷을 아무리 따뜻하게 껴입어도 이 추위는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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