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폐기, 성소수자 사업 불용...“헌법 위반”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 위반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로 서울시민인권헌장(아래 인권헌장)을 폐기한 서울시, 성소수자 청소년 관련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불용한 성북구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성소수자의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해치고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등 헌법적 가치를 저버렸다는 게 그 이유다.

성북무지개행동,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소원 청구 이유를 밝히고, 헌법재판소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터 인권헌장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보수 기독교 단체가 공청회를 무산시키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11월 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인권헌장을 사실상 폐기한 바 있다.

성북구도 2013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출된 성소수자 위기 청소년 지원 사업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가 2013년 말 서울시의회로부터 예산 배정을 받았음에도, 성북교구협의회 소속 목사의 반발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말 사업안을 제출하지 않아 예산을 불용 처리했다.

이에 지난 2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정욜 활동가가 서울시의 인권헌장 폐기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또한 기자간담회 이후에는 성소수자 위기 청소년 지원 사업을 제안했던 시민모임 즐거운교육상상 안영신 대표가 성북구의 사업 예산 불용을 두고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다.

헌법소원 청구 이유로 성북무지개행동 등은 서울시의 경우 2012년 9월에 제정된 서울특별시 인권조례 12조에 명시된 인권헌장 제정 의무를 저버렸고, 성북구도 주민이 참여한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성북구가 보수 기독교계의 압력을 이유로 적법한 행정력 행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성북무지개행동 등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도록 한 헌법 20조를 위반해 성소수자 차별을 막고 인권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 11조, 국민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인권을 규정한 헌법 10조 또한 준수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성북무지개행동 등은 “2007년 차별금지법 사태 이후, 국가, 지방자치단체들이 종교적 중립성 원칙을 저버리고, 비뚤어진 종교관으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특정 종교인들의 비민주적, 비합리적인 주장에 연이어 굴복하여, 사회적 소수자인 성소수자들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평등권,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한국사회에 대한민국 헌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원칙, 모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평등권 등 헌법적 가치를 묻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성북무지개행동,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 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시 인권헌장 폐기, 성북구 성소수자 사업 불용 건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기독교 반발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 철회...행복추구권, 평등권, 정교분리 위반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인권헌장 제정 과정과 성북구 참여예산제도 사업 등에 관계했던 이들이 나와 서울시와 성북구의 반헌법적 태도를 질타하기도 했다.

인권헌장 제정위원회 시민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종걸 집행위원은 서울시에 대해 “기독교 교리에서 비롯된 보수 기독교 세력들의 반인권적인 동성애 혐오 논리를 그대로 의견으로 받아들여,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누군가가 찬성, 반대해야 하는 문제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헌장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있었던 성소수자 혐오 발언과 폭력 행위에 대해 눈감고, 이것을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양상으로 인식해 인권헌장 제정 의무를 저버렸다. 오히려 인권헌장 제정위원회가 민주적 절차에 맞게 제정한 인권헌장을 선포하지 않고 폐기했다”며 “이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할 서울시의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한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명백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안영신 대표는 성북구의 예산 불용에 대해 “구청장의 정무적 판단으로 주민참여예산제로 제안된 사업도 불용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또한 앞으로 어떤 공적 예산의 영역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예산을 편성하기 쉽지 않게 됐다. 성북구는 인권의 역사, 주민참여예산제의 역사에서 이런 나쁜 선례를 남긴 것에 대해 분명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그런데 성북구는 여전히 종교 편향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지난 2월 6일 성북교구협의회 등이 개최한 기도회에) 김영배 성북구청장, 서울시의회 이승노 의원, 성북구의회 김춘례 의원 등이 인사말을 전했는데, 너무 종교 편향적이어서 인사말을 언급하기도 부끄럽다. 관내 정치인이 헌법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하는 행보를 하는 것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성북구의 예산 불용에 항의해 성북구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한 바 있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박경신 소장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성소수자 인권 보호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행정부의 위헌성을 꼬집었다.

1996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는 주민 발의를 통해 “주정부가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는 주헌법 조항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조항에 대해 대법원은 이 법이 평등권을 명시한 연방헌법을 위반했고, “이성애자는 자신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을 만들 수 있으나,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비슷한 법을 제정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무효 판결을 내렸다.

이에 비춰 박 소장은 “소수자 중에서 오직 성소수자를 보호 대상, 수혜 대상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하자가 없는 사업들을 폐기한 행위는, 특혜 부여를 안 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평등권적 측면에서는 성소수자 권리를 제약한 것”이라며 “인권헌장은 시 조례에 의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사업이었고, 이 사업의 수행에 있어 동성애자만을 인권 보장에서 제외하는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서울시와 성북구의 행위가 “인권헌장이나 주민참여예산과 같이 조례에 근거해서 진행되는 주민 참여적인 프로세스에서 소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사회적으로는 차별받는 소수 그룹을 특정하고 그 그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도록 행정권을 발동한 것”이라며 “그러한 의도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단순히 법을 만들지 않고 예산을 집행하지 않은 잘못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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