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낳고 자연으로 낫는다

[윤성현의 들풀의 편지](5) 익모초가 여성 질환에 널리 쓰이는 이유

벌써 덥습니다. 봄이라고 해봤자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바로 여름철에 든 것일까요? 아프리카의 줄곧 더운 곳에서 사는 하마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악어, 멧돼지, 코끼리, 사자, 고래 중 어느 동물일까요?

지표면을 세로로 날줄 표시한 것을 경(經)이라고 합니다. 가로로 씨줄 표시된 위도에 따라서 햇빛을 받는 양이 달라진다면 경도에 따라서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스물네 시간마다 지구가 한 바퀴씩 자전을 하니까 15도마다 한 시간의 차이가 나겠지요. 베이징보다 10도쯤 동쪽에 있는 서울은 40분 정도 해가 일찍 뜨게 됩니다.

처음에는 뒤뚱거리며 헤매고 다니다가 차츰 한 자리에서 맴을 도는 팽이처럼 천체도 안정이 되면 일정한 주기로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데 시간에 따라 해가 뜨고 지며, 때에 맞추어 달도 차고 기웁니다. 그래서 시간 선(線)인 경(經)은 어긋남이 없는 규칙, 곧 법칙을 뜻하며 천체의 운행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사의 문제에 있어서도 불변의 진리를 담았다고 해서 성경이나 불경이라 이르는 경전들이 있습니다.

달마다 온다고 해서 달거리인 여성의 생리 주기는 왜 28일일까요? 배란을 전후로 난포기와 황체기가 각각 2주일씩이어서 그럴까요?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과 같은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서 그렇게 결정된 것일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팽이처럼 자리를 잡기 전에는 그 주기가 보름이나 아니면 두 달이어서 에스트로겐이 주도하는 난포기와 프로게스테론이 주도하는 황체기도 각각 1주일이거나 아니면 한 달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초경이후 자신만의 주기를 갖기까지 한동안은 생리가 불규칙하며 폐경 전에도 생리불순이 하나의 주요한 증상임을 보면 생리도 확실히 물리적인 운동을 닮았습니다. 무엇을 닮았을까요? 말 그대로 달의 운행을 닮았을까요? 한의학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호르몬을 밝혀낼 수가 없어서 호르몬 요법을 쓸 수는 없지만 떨어지는 사과조차도 지구와의 인력작용에 따른 것이듯 모든 생명활동은 자신을 둘러싼 천체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에 한의학은 눈을 감지 않습니다.

만물은 하나의 기(氣)이며 그것은 질량이기도 하고 에너지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하나의 기는 양기가 되기도, 음기가 되기도 하고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화(火)의 다양한 기후가 되기도 하며 기와 혈로 나뉘기도 합니다. 태양이 아니라 달의 운행주기를 닮은 생리 현상은 에너지처럼 동(動)적, 양(陽)적이기보다는 질량과 같은 정(靜)적, 음(陰)적이며 낮의 영향보다는 밤의 영향을 더 받을 것입니다. 도꼬마리가 일정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어둠속에서 잠들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성의 생리가 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 그 영향을 받을까요? 지구에서 자신의 위성인 달의 영향을 직접 받는 것으로는 밀물과 썰물로 나타나는 조류가 있습니다. 조류 현상이 나타나는 바닷가에 의존해서 인류가 오랫동안 진화해오지 않았을까요? 해양생물학자 알리스터 하디로부터 시작한 일군의 과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이 얕은 바닷물에서 산 수생유인원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릴라나 침팬지와 같이 영장류의 한 부류였던 우리의 먼 조상은 아프리카 초원인 사바나가 아니라 어떤 지각 변동에 의하여 수중에서 살게 되면서 돌고래처럼 털이 없어지고 대신 체온을 유지하고 부력을 키우기 위해 돼지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피하지방층을 두텁게 했답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걸어야 했던 한계가 직립보행으로 이어졌으며, 다른 육상 포유류는 하지 못하는 ‘의식적 숨 멈추기’를 물질하는 해녀처럼 해야 할 필요 때문에 숨을 멈춘 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수면 위로 올라와서는 숨을 몰아쉬어야 했기 때문에 코와 입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숨이 가빠지는 것을 극복하고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류는 다른 유인원보다 더 진화함으로써 직립보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며 도구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기 위해서 손이 자유롭게 된 것도 아니랍니다.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함으로써 두뇌가 커진 것도 아니며 노동에 따른 의사소통을 위해서 말을 하게 된 것도 아니랍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다른 유인원보다 더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달리 진화한 것일 뿐이며 뭍이 아닌 물에서 진화한 결과일 뿐이랍니다. <호모 아쿠아티쿠스 - 일레인 모간 저, 김웅서, 정현 역,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출판>

침팬지가 35일, 비비가 30~40일, 짧은꼬리원숭이는 28일의 주기라고 하니 지구상에서는 생리가 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 어떤 변수가 있겠지만 모든 생명이 때에 맞추어 활동한다는 점은 변치 않는 법칙입니다. 어느 혁명가가 “자유란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곧 멸종까지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 떼는 초원을 가로지른 뒤 한꺼번에 출산하며 한 철에 귀소한 연어도 떼지어 알을 낳고 습할 때 잘 자라는 버섯도 일제히 홀씨를 날립니다. 반면에 인간은 밤을 낮 삼아 살기도 하고 열 시간도 넘게 시간을 거슬러 비행하며 성장촉진제 같은 여러 가지 호르몬에 더욱더 젖어들고 있습니다.

결혼 전의 월경통도 결혼을 하거나 출산 뒤에는 대개 저절로 없어집니다만 출산을 멈추고 40대가 되면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자궁근종과 같은 기질성 병변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혼전에 일차성, 기능성 월경통을 치료하면 이러한 이차성, 기질성 병변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때맞게 고르고, 아픔 없이 순조로운 달거리는 삶의 질은 물론이요 임신, 출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달거리를 고르게 하는 데에는 사물탕인 당귀, 천궁, 작약, 지황을 기본으로 하여 씁니다. 기가 울체하여 가스가 차면서 아프면 향부자, 오약, 목향 등을 더하고 혈이 울체되어 찌르듯이 아프면 우슬, 도인, 홍화 등을 더합니다. 피가 더워 주기가 짧아지면 황금, 황련, 목단피 등을 더하고 피가 차서 주기가 길어지면 계피, 건강, 쑥 등을 더합니다. 기가 허약하여 혈도 부족하면 인삼, 백출, 복령, 감초로 된 사군자탕을 합하니 팔물탕이 되고 다시 황기와 계피를 더하면 십전대보탕인데 양기는 낳고 음혈은 기른다는 양생음장(陽生陰長)의 뜻을 갖추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는 곧 관계입니다. 무생물과 생물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생물과 생물도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벌이 사라진다면 당장 멸종될 식물이 얼마이겠습니까? 산호가 없어진다면 터전을 잃을 바다 생물은 누구이겠습니까? 인간도 자연에서 낳고 자연으로 낫는다고 하는 한의학, 소박하지 않습니까? 위대하지 않습니까? 마당이나 길 한켠에서 흔히 자라는 익모초가 여성 질환에 널리 쓰이는 이유입니다.

위 문제에 대한 정답은 이웃사촌인 악어가 아니고 고래랍니다. 퇴화한 고래 다리뼈의 흔적에 증거가 남아 있다네요. 그런데 한의학은 오랜 경험의 집합인 민간요법일 뿐일까요, 아니면 이론과 체계를 갖춘 하나의 학문일까요? 현대의학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과거의 유물일 뿐일까요, 아니면 미래에도 그 가치가 인정되거나 더욱 커져야 하는 유산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