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 원대 활동비, 인권활동가의 인권은 어디에?

부담스러운 지출 주거비>의료비>식비...기본적인 생계 어려워

“불안한 건 당장은 경제적인 문제들이죠. 최근에는 칼럼 쓰는 것이니 이런저런 경제적인 거랑 병행하면서 하루에 5시간 미만을 계속 자면서 시간을 쥐어짜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과연 유지가 가능할까? 내 몸과 돈이?” (인권활동가 A)

“20대 때는 사실은 뭣도 모르고 하고 싶었고, 젊었고, 건강했고, 우리 부모님도 젊었고 지금 제가 30대 접어들면서 올해 서른둘이 됐는데, 부모님이 이제 아파서 병원 다니시고 아빠가 일을 그만두셨고, 나도 아파서 계속 병원 신세를 많이 지면서 병원비가 너무 힘든 거죠. 그런 일이 생기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까 사실 10년 뒤를 장담할 수가 없어요.” (인권활동가 B)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서 보장받아야 할까. 인권의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삶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그러한 마음은 종종 생계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꺾인다.

인권재단‘사람’이 29일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들의 활동비(임금)와 생활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평균적으로 이들은 평균 연령 34세, 활동 기간 8년의 중견 활동가였지만, 활동비는 대체로 최저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인권재단‘사람’은 총 41개 단체의 76명 유급활동가(상임활동가 65명, 반상임활동가 11명)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와 함께 10명의 활동가에 대해선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조사에 응한 응답자들의 평균 나이는 34세였다. 30대 응답자가 37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20대가 20명으로 26.6%, 40대가 17명으로 22.4%였다. 조사에 응한 인권활동가의 평균 활동 기간은 8년 3개월이었으며, 10년 이상~20년 이하 활동했다고 답한 이도 29%에 달했다. 또한 인권활동가들의 많은 수가 부양가족이 없고 자녀가 없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서울이나 경기권에 거주하고 있었다.

  인권단체 상임활동가의 월 기본급. 이들은 평균적으로 활동 기간 8년에 나이는 34세, 하지만 활동비는 월 ‘107만 원’에 그쳤다.

연령과 경력을 고려했을 때,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활동비는 열악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임활동가의 기본급은 월평균 107만 원으로, 2015년 최저임금인 117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월 1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13.8%에 달했고, ‘100만 원’을 받는다고 답한 이가 18.5%, 100~117만 원이 43.1%, 120~130만 원이 21.5%로 나타났다. 반상임활동가의 경우엔 월평균 54만 원의 기본급을 받고 있었다.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활동을 위해 대부분의 인권단체가 개인후원에 기대어 단체운영을 하는 상황에서, 인권단체의 재정 상황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는 소속 활동가들의 낮은 활동비로도 이어지고 있다.

인권활동가들은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 항목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23.7%인 18명이 ‘주거비’라고 답했으며 다음으로 의료비(11.8%)와 식비(10.5%) 순이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63.2%가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별도의 일을 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현재의 활동비가 ‘적정하다’라고 답한 이는 전체 응답자의 17.1%인 13명에 불과했으며 응답자의 2/3가 넘는 78.9%인 60명이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인권활동가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활동비는 평균 166만 원가량이었다.

이외에도 활동가 10명 중 8명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4대 보험 가입률은 전체 응답자의 57.9%에 그쳤다. '활동가들의 관계를 고용주-노동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인권단체 내 분위기가 이러한 수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인권활동가가 말하는 인권활동가 지원책. 이들은 안정적 활동을 위한 생활비 보전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입으로 불안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10년 후에도 인권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다고 답했다('할 수 있는 한 지속하고 싶다' 44명, '반드시 지속할 것이다' 7명).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명감과 일에 대한 보람이 이들 활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면, 하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한 22명 중 절반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의 수입’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활동비가 활동 지속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인권활동가들이 희망하는 지원책에 대한 방향에도 선명히 드러났다. 설문응답자의 42.1%인 32명이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생활비 보전을 위한 지원책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고 답했다. 뒤이어 ‘안식년 제도와 같은 유급재충전의 시간 확보를 위한 지원’과 ‘개인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보조’가 따랐다.

설문을 진행한 인권재단‘사람’은 인권활동가 지원을 위해서는 사회적 기금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공익활동가들을 위한 공적지원 서비스를 확대해나가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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