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 [사진/ 김용욱 기자] |
평일 저녁나절, 선배를 따라 아현동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사무실을 들른 <참세상> 전직 기자와 모 언론사 기자도 술자리를 같이하게 됐다. 십여 분을 걸어 도착한 아현동 포장마차 골목. 영업 개시 시간인데도 왠지 분위기가 한산하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이렇게 날이 좋을 때면 포장마차 앞 노상에 넘치게 들어차던 테이블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뻘쭘해진 일행은 한산해진 포장마차 앞을 어슬렁거리며 상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장사 안 하시나요?” 마침 포장마차 문을 열고 나오는 한 상인에게 묻자 안으로 들어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밖에서 먹고 싶은데요” 선배의 요청에 상인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 밖에서는 못 먹어요”
선배의 단골집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시대가 변했어”
예닐곱 명이 앉으면 꽉 들어차는 좁은 포장마차 안에 네 명의 손님이 따닥따닥 붙어 앉았다. 선배는 노상 술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인 할머니를 졸라댔다. “우리도 밖에서 드시게 하고 싶은데, 구청이 안 된다고 했어요” 징징거리던 기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노점에 대한 구청의 단속, 그리고 매일 불안에 떨며 장사를 해야 하는 상인들. 도심 곳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생존권 싸움. 강산이 세네 번씩 바뀌어도 전혀 변할 생각이 없는 노점 단속의 암울한 그림자가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에도 내려앉은 듯했다.
일흔을 앞둔 주인 할머니는 구청이 포장마차 거리를 없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가게를 둘러보니 한쪽 벽면에 경고장 같은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마포구청장의 직인이 찍힌 글 위에는 ‘도로를 보행자에게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경고장(계고장) 내용의 요지는 차량과 보행자 수가 늘어 지역 주민들의 불편과 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백 건 넘는 민원이 접수됐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마포구청은 이 지역 도로를 확장하고 인도를 개설할 계획이 있다는 점도 밝혔다.
주인 할머니는 이십 대 초반부터 음식 장사를 해 왔다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장사하다 몇 년 전, 이곳 아현동 포장마차로 들어왔다. 몇 년간 별 탈 없이 장사해 왔지만, 올겨울부터 구청의 단속이 시작됐다. 구청은 포장마차 앞 노상에 테이블을 놓지 말라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매일 20~30명이 민원을 계속 넣는대. 풍기문란이라나 어쩐다나. 별다른 사고는 없었어. 근데 술 먹고 시끄럽고, 보기도 안 좋다고 저쪽 아파트 사람들이 민원을 넣는 거야” 최근 포장마차 거리 인근에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난해 입주를 끝낸 아파트 주민들이 포장마차 거리에 대해 민원을 넣고 있는 듯했다. 포장마차 뒤쪽에 초등학교가 붙어있는 것도 민원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포장마차 영업시간은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다. 심지어 포장마차 거리뿐 아니라 아현역 인근에 있는 노점들도 철거 대상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너무도 많았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격이지” 주인 할머니는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포장마차 상인들은 근방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누구보다도 기뻐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 상권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름한 옛날식 포장마차 거리를 반기는 입주자들은 별로 없었다. 노상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놓지 못하게 되면서 손님도 많이 떨어져 나갔다.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팎으로 불야성을 이뤘던 포장마차 거리에 짙은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종종 길을 가던 행인들이 포장마차 안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고는 “이제 밖에서는 못 먹죠?”라며 발길을 돌렸다. 그럼에도 해물을 다듬고, 채소를 손질하는 주인 할머니의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 2014년 초여름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 [자료 사진] |
80년대 흐릿한 냄새와 추억, ‘벌집’ 같은 포장마차 거리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과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의 싸움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는 마치 ‘벌집’같다. 세평 남짓한 고만고만한 크기의 포장마차 열여섯 개가 촘촘히 늘어서 있다. 어찌 보면 한 몸뚱이로 연결된 장난감 기차 같기도 하다. 하나같이 조악한 경량 칸막이벽과 알루미늄 미닫이문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다. 알루미늄 유리문에는 ‘우동’, ‘잔치국수’ ‘석굴’ 등의 메뉴 이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새우와 소라, 굴, 해삼 등이 유리장 안에 진열돼 있다. 주문을 하면 주인은 그곳에서 막 해물을 꺼내 요리를 시작한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80년대의 흐릿한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다. 가리동봉 벌집촌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곳이지만, 벌집촌보다는 활기가 있다.
이 자리는 원래 개천이 흐르던 곳이다. 30여 년 전, 상인들은 개천 위에 나무를 대고 하꼬방(판잣집을) 지어 장사를 시작했다. 개천 복개공사 후에는 세금을 내며 장사를 이어갔다. 이곳에서 꼬박 청춘을 보냈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터전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아스라한 향수를 찾아 포장마차로 찾아드는 손님들도 안타까워하기는 매한가지다. 한 40대 여성 손님은 “여기가 추억의 명물로 남아 있는 거다. 나이를 먹으니 이런 장소가 너무 그립다. 철거되면 아현동이 너무 그리워질 것 같다”며 “다음에 오면 여기가 없어질 것 같아 오늘 많이 팔아 드리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50대 남성 손님도 “아현동 일대에서 봉제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재개발이 되면서 두 번이나 옮겨 다녔다. 마땅한 곳이 없어 여기를 떠나지 못하고 점점 나쁜 데로 옮겨 간다”며 “시골 사시는 어머니 생각 날 때 여기서 맥주 한잔 마시면 위안이 됐다. 여기가 없어지면 허전해질 것 같다”고 했다.
주인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빈 맥주병이 쌓여갔다. 해물 볶음을 시작으로 우동, 꼼장어, 해물모듬을 먹어치우고 계란말이 서비스 안주까지 받아들었다. 분위기가 오르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으로 나와보니 건너편에 구청 차량이 보였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 서넛은 포장마차 인근을 어슬렁거리며 상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구청 직원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로 오신 거냐’고 묻자 ‘그냥 다른 일이 있어 잠깐 들른 것’이라고 했다. 혹시 철거를 할 예정이냐고 다시 묻자 ‘그런 일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 구청 계고장으로 포장마차 거리는 어둠에 휩싸여 있다. [사진/ 김용욱 기자] |
옆집 주인 할머니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 우리 잡으러 온 거 아니래” 할머니는 포장마차 앞 의자를 내어줬다. 31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토박이였다. 무섭지 않으시냐고 묻자 “무섭긴 뭐가 무서워. 괜찮아”라며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가 금세 “18일에는 가게 안 나오려고 했어”라고 털어놓는다. “17일이 마지막 날이었잖아. 그래서 18일에는 무서워서 못 나오겠는 거야. 그런데 그냥 나왔어. 다른 사람들도 다 무서웠을 건데 나 혼자 내빼면 안 되잖아” 그 역시 갑작스레 닥친 불안이 무척이나 애석한 모양이었다. “아파트 들어오면 좋을 줄 알았어. 근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어. 여기서 장사한 지가 몇십 년이 넘는데...”
다음 날 구청에 연락해 보니, 구청의 입장은 확고했다. 아현동 포장마차를 철거할 계획이냐고 묻자 “전체적으로 없애려 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구청 관계자는 “작년부터 00아파트 입주가 시작됐고 지금은 다 끝난 상황이다. (입주민들이) 민원을 집어넣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철거 이후 상인들의 생존 대책은 아직 마련된 것이 없다. “근처에 아현 시장이 있지 않습니까. 그쪽으로 들어가서 장사하면 상관이 없는데...(상인들이) 시장으로 들어갈 돈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행정대집행 날짜 및 계획은 확정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늦은 밤, 포장마차를 나올 때까지 구청 직원들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한 상인은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매일 사람들로 북적이던 포장마차 거리가 차가운 긴장감에 휩싸였다. 낡고 허름한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는 사람들과, 과거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좋은 곳을...” 포장마차를 바라보던 선배는 삶의 공간 일부를 침범당한 사람처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어깨너머로 희끄무레한 브랜드 아파트가 안개덩이처럼 하늘에 뭉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