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라진 ‘공무원연금개혁’, ‘국민연금’ 여야 야합만 남아

[연금개악] 5.2 합의 이후 본격화 된 연금전쟁...공무원연금 개악은 매몰

공무원연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연금정치가 점입가경이다. 5월 2일 새벽, 공무원연금 개혁관련 실무기구가 극적 합의안을 마련하면서부터다. 실무기구는 이날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끌어올리기 위한 사회적기구 구성안에 패키지로 합의했다. 공무원연금 합의안은 말 그대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삭감안이었다. 하지만 개악안은 반발이 채 일기도 전에 포화 속에 묻혀버렸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주도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논쟁이 모든 쟁점을 집어삼킨 탓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연금 50% 합의안에 비토를 놨고, 새누리당 내부와 보수언론의 반발이 이어졌다. 그리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라는 수치를 둘러싼 여야 논쟁이 공회전을 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의 여론전은 성공적이었다. 어느새 공무원연금 개악안은 기정사실화 됐다. 동시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합의도 일정 후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여당은 연금개악저지 투쟁 단위 중 가장 몸집이 컸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며 1타 3피의 효과를 거뒀다. '공적연금 사수'를 내걸고 1년여를 달려왔던 공무원노조는 이번 사태로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시달리게 됐다.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 [출처: 교육희망]

5.2 합의이후 불어 닥친 공무원노조 내부 갈등
공무원연금 개악안 쟁점은 매몰 돼


최근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갈등과 반목으로 연일 시끌시끌하다. 이미 논쟁의 수준을 넘어 공무원노조 지도부를 향한 욕설과 비아냥거림이 이어지고 있다. 지도부 비판 세력을 향해서는 ‘종파세력’, ‘빨갱이’ 등의 비방도 끊이질 않는다. 내홍은 5월 2일 새벽 실무기구 합의안에 노조 사무처장이 직권조인을 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사무처장은 노조 조합원 및 투쟁본부, 심지어 지도부와도 합의안 수용 여부를 논의하지 않았다.

실무기구의 극적 합의안은 사실상 ‘공무원연금 개악안’이었다. 기여율은 현행 7%에서 2020년까지 9%로 인상하고, 지급율은 현행 1.9%에서 2035년까지 1.7%로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다. 게다가 연금개시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단계적 연장하고, 기여금 납부 기간은 현행 33년에서 36년으로 연장, 그간 물가인상률을 반영했던 연금수급자 연금액인상은 5년간 동결, 유족연금은 현행 70%에서 60%로 인하키로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내부 반발이 일어났다. 지도부는 애초 ‘합의한 적 없다’고 밝히다가 곧바로 절차상 문제를 인정했다.

5월 2일 오전에 열린 긴급중집에서 이충재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사무처장의 독단적 결정이었으며 절차적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중집 장소로 모여든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합의 무효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당시 이충재 위원장은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퇴장했다. 그날 오후 노조 지도부 등은 곧바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조는 “노조는 공무원연금 수령액에 해당하는 지급률 1.70%는 물론 기여율 9.0%에 대해 어떠한 안을 낸 적도 없으며, 실무기구에 제출된 기타 안에 대해서도 합의한 적이 없다”며 “국회연금특위에서 여야의 야합정치에 의한 공무원연금 개악안이 통과될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는 손쓸 틈도 없이 국민연금 이슈에 매몰됐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패키지 합의를 반대하며 여론화 작업에 뛰어든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며 논란의 불씨를 만들었다. 여야의 대립이 이어졌고 결국 공무원연금 개악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사이에도 공무원노조는 블랙홀 같은 내부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4일 열린 중집 회의에서는 사퇴 의사를 밝힌 이충재 위원장의 권한 문제를 놓고 이견이 발생했다. 위원장은 ‘그날 발언은 거칠게 항의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다. 기회를 달라’며 사퇴를 번복했다. 12일 열린 중집에서도 똑같은 논쟁이 이어지며, 투쟁 계획조차 잡지 못한 채 회의가 파행됐다. 2명의 부위원장과 2명의 노조 상근자가 이번 사태에 반발해 사퇴 및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애초 ‘합의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던 노조 지도부는 사퇴압박이 고조되자 ‘조합원 총투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실무기구 합의안을 놓고 조합원들의 의중을 묻겠다는 의도다. 노조 관계자는 “정파그룹에서 위원장 탄핵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 위원장으로서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라며 “현장에서도 지도부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지도부로서 실무기구 합의안은 어느새 계륵 같은 존재가 돼 버린 셈이다. 노조는 오는 30일 비공개 대의원대회를 열고 조합원 총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짓게 된다. 만약 대의원 50%이상의 반대로 조합원 총투표가 부결되면 노조 지도부는 사퇴수순을 밟게 된다. 반대로 가결될 경우 노조는 투표 결과에 따라 합의안에 따른 인사정책 개선방안 협의기구 구성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50%이행은 곧 공무원연금 개악...딜레마에 갇힌 사람들

노동계와 시민사회진영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실무기구 합의를 둘러싼 단체들의 입장도 엇갈렸다. 실무기구 합의 하루 뒤인 5월 3일, 참여연대는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합의안에 대해 “노동운동이 전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참다운 조직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번 합의가 공적연금 개혁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현안에 대해 정치권, 정부, 노동계 등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한국판 사회적타협’의 최초 시도로 평가고자 한다”고 추켜올렸다. 논쟁 지점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문제로 옮겨 붙으면서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목소리도 시류에 휩쓸려갔다.

  26일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농성 기자회견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200여개의 시민사회로 이뤄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와 보건복지부장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내용은 온통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합의를 흔드는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논란이 일자 연금행동은 뒤늦게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입장 정리에 나섰다. 연금행동 관계자는 “합의 이후 (공무원의) 일정부분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절대 (합의안 수용은) 안 된다는 견해 등이 공존했다. 결국 지난 집행위 회의에서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50%합의라는 프레임을 뛰어넘어 공적연금 강화 기조에 집중하는 것이 공무원연금 법안통과를 중단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연금행동은 27일 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연금 법안은 사용자로서 국가책임은 회피하고 교사, 공무원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이해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공무원연금 법안 통과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도 실무기구 합의 이틀 뒤인 4일 성명을 내고 합의에 따른 국민연금 50% 상향 즉각 이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면서 국민연금을 50%로 인상하겠다고 자신들이 약속해놓고, 이제와 온갖 물타기와 왜곡, 부정으로 발뺌하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심각한 노후빈곤 해결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50% 상향을 즉각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해당 성명은 얼마 후 삭제됐다. 공무원연금 개악안과 국민연금 50% 상향안은 패키지 합의안이었다. 국민연금 상향 합의 이행을 요구하면, 공무원연금 개악을 인정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국민연금 50%합의 이행이 우리를 괴롭혔다. 이를 언급하면 공무원연금 개악을 기정사실화한 것처럼 물려 들어온다”고 토로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5월 14일 중집 회의를 열어 △여야 합의 거부 및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총력투쟁 △국민연금 상향 관련 민주노총 기본 입장에 근거해 적극 대응 등의 방침을 세웠다. 20일 열린 상집에서도 5월 2일 합의 폐기 및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용 민주화 등의 기조를 세웠다. 아울러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는 26일부터 국회 앞 2박 3일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농성 전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는 재정논리를 앞세운 공무원연금 개악안을 폐기하라”며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전면 재논의에 착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및 농성에는 민주노총 및 전교조 지도부가 참석했다. 공무원노조는 지도부가 빠진 채 일부 지역본부 등이 참여했다.

사회적 쟁점 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지속가능성 위한 체질개선이 우선”

얼마 전 만난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일이 이렇게 돼 안타깝다”는 심경을 전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 합의는 큰 결실임에도 의미가 퇴색돼 버렸다는 얘기였다. 사실 공무원노조는 과거 ‘공무원연금 투쟁’에만 갇혀 있던 연금 투쟁 방향성을 ‘공적연금 강화 투쟁’으로까지 확대시켰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더불어, 정부 일방에서 추진하는 공적 연금 후퇴문제를 사회적으로 의제화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계획대로 공적연금 문제가 이슈가 됐고, 이는 분명 성과로 남았다. 한 사회단체 활동가는 “공적연금 강화를 내걸긴 했지만, 전술적으로는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투쟁이었다. 사실 공적연금 강화와 관련해 내부에서 합의를 본 것이 거의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50%가 나왔고, 사회적인 쟁점이 됐다. 정부의 개악에 의해서만 이뤄지던 국민연금 제도형성 과정이 수면위로 올라왔다는 것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하지만 합의안 자체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합의는 공무원노조 개악과 국민연금을 맞바꾸기 위한 것이지만, 정작 공무원 당사자들은 합의 내용을 판단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한 연금연구자는 “합의안에 대해 조합원들이 사전에 교감, 합의한 바가 없어서 직권조인 문제제기가 나왔다. 합의되고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을 전제로 한 합의안 자체가 당사자들에게는 폭력이 된다”며 “문제제기를 하면 이기적인 사람들이고, 합의를 하면 희생을 각오한 고귀한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으로 가두는 것은 분명 조합원 분리전략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국민연금 50% 상향 합의는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애초 여야는 실무기구 합의안을 수용했지만, 청와대와 여당 내부의 반발로 지난 6일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이후 3주 가까이 여야가 협상을 벌였고, 26일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라는 문구를 명시하되, 사회적 기구에서 이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고 못박아 놓은 실무기구 합의안을 사실상 파기한 꼴이다. 결국 국민연금 상향 합의는 물 건너가고, 공무원연금 개악만 남은 셈이 됐다.

5월 2일 합의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딜레마에 빠져 전술적인 여론 활용 기회를 놓쳐버린 것 아니냐는 아쉬운 소리도 나온다. 그러다보니 연금 투쟁의 중심 동력이 손실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사회단체 관계자는 “두 마리 토끼를 가질 수 없다고 했을 때 투쟁 주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술을 짜야 했다. 개악저지를 중심으로 이를 관철해 내면, 국민연금 50% 상향 투쟁은 이후 자기 과제가 된다. 예전에는 노동계가 국민연금 상향 의제를 자기 운동의 과제로 삼은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민주노총으로서도 연금의제를 놓고 싸울만한 동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만약 공무원연금 개악이 통과돼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투쟁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투쟁 동력도 자연스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국민연금을 둘러싼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 상황이어서 향후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 것인지와 관련해 노동계와 시민사회진영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의 연금 재정안정화 프레임을 벗어나 사회적 지속성을 위한 체질개선이 급선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연금전문가는 “사회적 기구에서 소득대체율 50%의 타당성 검증에 들어가면, 핵심은 재정안정화 얘기가 될 것이고, 보험료율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연금 제도가 재정안정화 중심으로 가면 지속가능성은 끝난다. 청년층 가입유도를 위한 임금 및 고용정책의 변화, 가입 사각지대 해소, 출산률 제고 등을 통해 연금의 사회지속성이 담보되도록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단체 활동가 역시 “국민연금 문제는 비정규직 확산에 따른 고용안정화 문제와 임금 문제, 빈곤 문제와 모두 연결된다. 국민연금 강화를 연결고리로 여러 가지 노동 및 사회 의제들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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