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4년, “노조파괴 어디까지 해 봤니?”

기업노조 앞세운 노조파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지난 2011년 7월 1일 도입된 복수노조법이 올해로 4년을 맞았다. 노동계의 오랜 요구였던 복수노조 제도는 과연 민주노조 건설 확대라는 노동계의 염원을 실현했을까. 안타깝게도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복수노조법은 ‘민주노조 파괴’라는 이율배반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복수노조 시행 초기, 전쟁같이 몰아치던 민주노조 파괴 공작은 나름 탄탄해 보였던 주요 노조들을 단번에 소수노조로 전락시켰다. 조합원 다수가 기업노조로 떠나버린 민주노조의 허망한 공간은 시간이 흘러도 쉽사리 채워지지 않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던 주요 사업장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민주노조 파괴 매뉴얼은 억압적 노무관리의 만능키가 됐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복수노조 시행 4년 만에 사업주들은 너도나도 매뉴얼을 집어 들었다. 사업장에 새로운 노동조합이 건설될 때마다 친기업 성향의 노조도 덩달아 깃발을 올렸다. 기업노조를 앞세운 사업주는 마치 경연하듯 다양한 노조탄압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복수노조 4년, “노조파괴 어디까지 해 봤니?”

최근 발생한 갑을오토텍 폭력사태는 기업노조를 앞세운 사측의 노조파괴 공작이었다. 회사는 지난해 말, 전체 기능직 인원 중 10%가 넘는 60여 명의 직원을 신규 채용했다. 그리고 신입 직원 중 53명은 입사한지 서너 달 만에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를 집단 탈퇴하고, 3월 12일자로 설립된 사측 주도의 기업노조에 가입했다. 신입 직원들의 기업노조행은 철저히 사전에 기획된 시나리오였다. 신입직원 중 일부는 갑을상사그룹 계열사인 동국실업 사측 관리자들이었다. 2명은 아예 동국실업 노사교섭에 사측 관계자로 참여한 전력도 있었다. 심지어 신입사원들 중에는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의 인물들도 포진해 있었다. 신입사원들의 연령은 평균 40대 후반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신입직원으로 위장취업한 뒤, 기업노조에 가입해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신입직원으로 채용된 사측관리자와 전직 경찰 및 특전사들의 연봉은 정식 직급체계하의 신입사원 연봉보다 1~2천만 원 가량이 높았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기업노조를 유지하고 금속노조 파괴를 위한 ‘수당’이라며 비판했다. 예상대로 이들의 임무는 막중했다. 기업노조 측 신입 채용자들은 지난 4월 30일, 금속노조 간부들의 출입을 막겠다며 공장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폭력사태를 유발했다. 금속노조 간부 및 조합원 10여 명이 부상을 당했고, 이 중 한명은 뇌 골절 및 뇌출혈, 귀뼈 골절로 병원에 후송됐다.

사측 관계자들을 기업노조에 가입시켜 규모를 불린 뒤, 기존 노조를 탄압하는 식의 노조파괴 공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으로 알려진 유성기업의 경우 2011년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한 뒤, 같은 해 복수노조법이 시행되자마자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이탈이 크지 않았고, 결국 회사는 과반수 노조를 차지하기 위해 사무직들을 기업노조에 대거 투입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관계자는 “현장만 보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과반노조이지만, 회사가 사무직들을 기업노조에 가입시키면서 과반노조를 획득하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 인지컨트롤안산 공장 역시 회사가 애초부터 노조 설립에 대비해 왔던 곳이다. 2009년 금속노조 소속 지회가 투쟁에 돌입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한 후 연구직, 사무직 등을 기업노조에 대거 투입했다. 이곳은 생산직보다 연구직, 사무직의 인원이 많은 구조여서 조합원 이탈이 없었음에도 기존 노조는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AVO카본코리아의 경우, 기업노조가 규약을 개정해 조합원 가입 범위를 차장까지 확대시켰다. 금속노조 조합원이 늘어날 것에 대한 회사 측의 대비책이었다. 특히 AVO카본코리아 사측과 기업노조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는 달리,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단체협약을 작성했다. 금속노조 소속 지회가 통상임금 투쟁을 벌이자 사측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5천만 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와 노조 간부 고소고발에 나섰다.

2012년 노조파괴의 그림자...그때 그 노조들은?

지난 2012년 7월, (구)만도의 직장폐쇄와 복수노조 설립을 전후로 구 만도사업장에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작동됐다. 굵직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던 노조들은 줄줄이 깨져나갔다. 노조파괴 사건으로 사회가 들썩인지 벌써 3년.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노조 재건을 이뤄냈을까.

충북 청원군 부용공단에 위치한 보쉬전장은 악질 노무법인으로 유명한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파괴 수순을 밟은 곳이다. 보쉬전장은 2011년 11월부터 10개월 간, 창조컨설팅에 총 8억4천여 만 원을 송금하며 노조파괴에 열을 올렸다. 22일에는 회사 내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복수노조 설립 하루 전에는 금속노조 소속 보쉬전장 지회장을 해고했다. 금속노조에 남아 있으면 정리해고, 성과급 차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합원 이탈이 시작됐다. 현재 390명 가량의 노동자 중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 소속 조합원은 60명 가량이다.

노조파괴 이후, 현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물량이 90%이상 외주화되면서 일거리가 줄었고, 잔업특근도 사라졌다. 고용불안은 심화됐다. 급기야 최근에는 회사의 신규법인 설립으로 하반기 대규모 고용불안이 예고되고 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관계자는 “회사가 최근에 신규법인을 만들어 대구에 공장부지를 얻었다. 현재 보쉬전장 공장에서 가동 중인 설비를 대구공장에 넣겠다는 계획이다. 매출의 3분의 1정도가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설비를 철수할 계획이라, 심각한 고용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도의 경우, 사측 노무관리 직원들이 일거리가 없다는 웃픈 이야기도 나온다. 만도는 2012년 7월 27일 공격적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이 이뤄졌다. 그리고 불과 3일 만에 기업노조가 만들어졌다. 보름 만에 기존 금속노조 조합원 80%이상이 기업노조로 이탈했다. 3년이 지난 현재 기업노조 조합원은 약 2천 여 명, 그리고 금속노조 소속 만도지부 조합원은 약 80명 선이다. 노조 관계자는 “아예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소수 있다. 기업노조로 가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 준 사람들도 있다. 금속노조에 있었다는 이유로 심사를 해 가입을 봉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재편된 현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업노조 조합원에게만 특별 격려금을 지급하는 등 차별을 뒀다. 개별교섭을 노조 간 차별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복수노조법 시행에 따른 교섭창구단일화 문제는 제도 초기부터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었다. 하지만 사측 입장에서는 굳이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쳐 과반수인 교섭대표노조와 교섭을 하는 것보다는, 개별교섭을 진행하는 편이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기업노조와는 집중교섭을 통해 손쉬운 합의를 이끌어내는 반면, 기존 노조와의 교섭은 회피하는 방식이다. 개별교섭을 하는 노동조합은 차별을 받더라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한 시정신청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신생노조 설립될 때마다 족족 ‘친기업’ 노조 설립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법이 시행된 후, 약 한달 간 사용자의 지배개입에 따른 복수노조 설립이 줄을 이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당시 한 달 동안 전국에서 322개의 노조가 설립신고서를 제출했고, 이중 한국노총에서 분화한 노조는 37.3%(120개), 민주노총에서 분화한 노조는 27.9%(90개)로 집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에서 분화된 노조 90개 중 66%(33개소)는 사용자의 지배개입에 따라 설립됐거나 친사용자 성향을 보였다. 지난해 발표한 고용노동부의 노조 조직현황 자료에 따르면, ‘복수노조 제도 시행 이후 (노조수의) 대폭적인 증가 추세는 제도 시행 초기에 집중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수노조를 이용한 노조파괴는 ‘매뉴얼화’가 되며, 지금껏 신생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단 금속 제조업 뿐 아니라 서비스, 공공, 보건, 대학 등 산업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복수노조를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 시설관리 및 청소 업무 노동자들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 노조 대부분도 친 회사 성향의 복수노조의 등장으로 몸살을 앓았다. 서경지부 관계자는 “현재 지부집단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15개 사업장 중 복수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카이스트 정도”라며 “대학 사업장에는 전체적으로 복수노조가 만들어졌고, 신규사업장이 조직이 되면 곧바로 친회사 성향의 복수노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대학 사업장에서 조직된 복수노조의 약 70~80%가량은 한국노총 소속의 한국철도사회산업노동조합(철사노)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철사노에서 청소미화 쪽으로 노조 조직화 확장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와 철산노 소속 노조와의 갈등은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초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를 상급단체로 둔 고려수요양병원지부가 설립되자, 곧바로 철사노 소속의 제2노조가 출현했다. 제2노조는 단기간에 과반수 노조로 자리매김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얻었다.

이후 병원과 제2노조는 소수노조인 고려수요양병원지부를 교섭 과정에서 배제했다. 노조 측은 “병원은 복수노조 출현을 앞세워 대화 요구를 거부했고, 철사노에게도 몇 차례 교섭대표노동조합으로서 공정대표 의무 이행 등을 위해 대화를 요구했지만 계속 거부됐다”고 밝혔다. 현재 병원 측은 노조 소식지를 배포하고 피켓 시위를 했다며 기존노조 간부 3명을 상대로 각 3천만 원씩 총 9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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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짜없다

    자본은 사생결단으로 덤비는데,
    노동이 유연함 합리적 단계적 인 방법으로 싸워 어떻게 이기나요. 복수노조 옳은 거 잖아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인데, 현상과 사실관계만 나열하지 말고, 왜 노동자들이 사는 길을 못찾고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는지?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이야기 합시다.

  • 조합원

    나쁜 거 같아요..

  • 마랑

    더 큰 문제는 스스로가 친기업노조(어용노조)임 조차 모른다는게 문제입니다. 사측은 복수노조를 이용해 노노분열 양극화 현상을 원하죠. 자신들 또한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른채

  • 민주노조사수

    본인들이 어용 인지도 인식 못하고 잘하고 있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꼬라지보면 참~중립이라면서
    중립이 무슨뜻인지도 모르는 참 희한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