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앞둔 비정규직 노동자, "우리의 자리 찾겠습니다"

한국GM 군산공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 날,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A씨가 딸과 나눈 메시지 [출처: 참소리]

“아빠! 나 오늘 시험본 거 국어 백점, 수학 아깝게 95점, 사회 백점! 받았어”

6월 30일, 하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한국GM(이하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A(40)씨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보낸 SNS 메시지다.

“아빠가 비정규직이고 회사에서 잘릴 것 같아 싸우고 있다고 딸에게 말해줬어요. 긴 말은 안하지만 집에도 못 들어가는 아빠한테 종종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요. 어제도 ‘아빠! 잘 자’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긴 말은 안하지만 딸의 힘내라는 그 말 한마디가 힘이 되죠.”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 날 받은 칭찬을 바라는 딸에게 A씨는 군산공장 앞 천막 농성장에서 “와우! 우리 00 잘했네. 아빠가 00 용돈주께(용돈 줄게) 맛있는 거 사머거(사먹어)♥”라고 답장을 한다.

  6월 30일, 한국지엠 군산공장에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 예고 통보를 받았다. 오는 7월 31일 해고를 예고한 하청업체들은 원청인 한국지엠과 도급계약이 종료되어 더는 고용을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을 통보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군산공장 앞에 설치한 '우리도 일하고 싶다'는 내용의 현수막 [출처: 참소리]

이 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해고를 앞둔 노동자는 더욱 그렇다. A씨는 이렇게 천막을 치고 투쟁하는 것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투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빠로서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있잖아요. 책임이죠. 이 싸움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예측할 수 없지만 후회는 없어요”

A씨는 다부지게 각오를 말하면서도 비정규직이 거리로 내몰리는 현실을 원망했다.

“지난 1년 동안 1,000여 명의 동료들이 공장에서 쫓겨났습니다. 한국지엠은 물량이 없다고 하는데, 힘없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에요”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천막 농성장 [출처: 참소리]

“날벼락과도 같은 해고 통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장난’이라는 말에 힘이 실린다. 옆에 앉아 있던 동료 B(36)씨도 말을 거들었다. 올해로 10년차 비정규 노동자 B씨는 26살에 입사하여 2011년 가정을 꾸렸다. B씨에게 군산공장은 자기 삶의 일부였다.

그는 지난 4월 하청업체들이 요구했던 유·무급 휴직 동의서에 날인했다.

“사직과 동의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어요. 회사를 떠나기 싫어서 동의서에 사인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너 나가’라는 말을 듣고 나가기 싫었어요. 열심히 일했잖아요. 공장 안에서 동료들도 일을 하고 있는데, 나갈 수 없었어요”

그렇게 휴직 동의서에 날인했던 당시, B씨는 3개월 후 해고통보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청업체가 폐업을 할 것이라는 말도 없었다. B씨는 “동의서를 쓴 것은 다시 일하고 싶다는 표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비록 휴직 동의서에 정확한 복귀 시점은 없지만, 그래도 회사를 믿었다. 그리고 한국지엠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이라고 불리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노조 동료들처럼 자신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송에서 이겨서 당당하게 한국지엠 군산공장서 일하고 싶었던 마음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어떤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듣지 못하고, 하청업체로부터 ‘7월 31일 부로 귀하와 근로관계가 종료됨을 예고합니다’는 해고 예고 통보서 한 장만 받아봤다. ‘장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A씨의 말에 동감하는 이유다.

“한국지엠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군산공장에서 만드는 차가 크루즈와 올랜도예요. 전 세계 각국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크루즈는 상당히 많이 팔리는 차종입니다. 그런데 GM은 이 물량을 군산에 제대로 주지 않아요. 물량이 없기에 일자리를 줄인다? 말 그대로 노동자가 죄가 있다면 회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한 죄밖에 없잖아요. 생산 속도가 빠르면 빠른 대로 힘들게 일했고, 느리면 느린 만큼 또 일했어요. 자기들 이익은 취하고 이제 쫓아내는 것이 말이 되나요?”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은 해고예고통보서 [출처: 참소리]

그러나 이 말이 현실인 세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현실 앞에 무기력하고, 부품 취급을 받을 따름이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군산시도 이 장난과도 같은 현실에 덩달아 반응했다.

“올해 초, 한국지엠이 1교대를 발표하면서 신차 생산 발표를 할 때, 군산시는 ‘1교대 합의를 축하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곳곳에 부착했어요. 그리고 하루 지나고 회수했습니다. 1교대 합의 이후, 쫓겨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500명 이상이 된다는 보도가 나니까 회수한 거에요. 사실 1차 하청이 500여 명이지, 2차·3차까지 보면 그 이상입니다. 비정규직은 회사에서 쫓겨나는데, 군산시는 환영을 한 거예요. 우리도 세금내고 사는 시민인데, 군산시는 우리의 해고를 환영한 셈이 됐어요. 어이없는 상황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필요 없는 것 아니에요. 우리의 자리 찾겠습니다”

현재 이 문제에 공식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곳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다. 지난 4월 창립한 노조의 조합원은 불과 8명. 그러나 이런 사정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수노조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천막에서 하루를 보내 학교에서 시험을 잘 봤다는 딸을 안아 줄 수 없는 A씨와 한국지엠과 회사의 장난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B씨도 이 소수노조 조합원으로 투쟁에 나섰다.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선전전 모습 [출처: 군산비정규직지회]

A씨는 “비정규직이 나간 공정에 직업훈련소 실습생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공정에서 실습을 하던 이들이에요.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가 필요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자리를 찾아야죠”라고 말했다.

노조는 이번에 해고 통보를 받은 198명의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군산공장 동문 앞 천막 투쟁과 매일 오전·오후·저녁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말

문주현 기자는 참소리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참소리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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