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2주간의 구제금융 협상
지난 5일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예상치 못한 긴축 반대 목소리가 압승하면서 그리스 정세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듯 했다. 그러나 시리자가 “유로존 잔류”라는 자신의 기본전략을 고수해야 상황에서, 이 약점을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는 트로이카(IMF-유럽연합지도부-유럽중앙은행) 강경파들은 일말의 타협도 없이 시리자를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시리자는 6월말 협상이 중단될 때 트로이카가 요구했던 긴축안보다 더 강도가 높은 긴축안으로 양보하면서까지 3차 구제금융협상을 진행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결국 시리자는 여기에 더해 추가 양보안까지 한 번 더 내놓으면서 12일 합의를 이뤘다. 이로써 긴박했던 2주간의 국면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12일 협상타결은 3차 구제금융 협상을 개시할 것을 결정하는 것일 뿐 완전한 타결을 아니다. 아직 3차 구제금융 협상이 마무리되기까지 또 한 번의 고비가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협상과정에서 그리스 정부는 협상지도부의 긴축양보를 둘러싸고 내부의 심각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 10일 첫 번째 긴축양보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킬 때, 시리자내 일부 세력들이 반대를 했고, 그리고 이번 12일 두 번째 긴축양보를 두고 연정 파트너인 ‘독립그리스인당’은 구제금융협상안을 지지할 수 없다며, 국민통합정부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앞으로도 협상결과를 입법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더 큰 갈등을 겪을 것이라 예상된다.
국민투표 직후 시리자가 취했던 첫 번째 양보는 부채탕감 혹은 부채조정을 협상의제에 올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양보는 내부의 갈등을 표면화시킬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공공자산 매각, 민영화, 노동조건 유연화 등의 양보안은 이후 시리자 정권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은행위기의 발발과 자본통제
그럼 왜 시리자가 이런 양보협상에 매달리게 되었는지 짚어보자. 현재 그리스는 은행의 예금인출을 하루 60유로(7만 2천원)으로 제한하는 자본통제가 진행 중에 있다. 그래서 유동성 공급을 위한 긴급조치들이 나오지 않으면 그리스는 심각한 경제위기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앞으로 3차 구제금융 협상이 마무리되려면 또 한 번의 고비가 남아있기 때문에, 길게는 몇 주간 더 이런 은행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은행위기 상황에 빠진 이유는 유럽중앙은행이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 금액을 동결했기 때문이다. 화폐권력을 유럽지도부에 위임한 그리스가 이런 위기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건, 은행창구 문을 잠그는 것 외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은행들의 국채담보 할인율마저 높였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 은행들은 부족한 담보를 다른 것으로 메워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리스 은행들이 끌어올 자산은 마땅히 없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은행의 부채에 해당하는 예금을 아예 삭감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2013년 키프로스에서 은행이 파산할 때, 취했던 조치이다. 이때 고액예금자들의 60%가 손실을 입었다. 현재 그리스에서 탈세로 부정 축재한 자산가들은 이미 해외로 돈을 빼돌린 상태라, 실제 예금 손실을 보는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일 것이라 추정된다. 이런 우려 때문에 지난 6월말 예금자들이 돈을 미리 찾으려 몰려들면서 뱅크런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그리스 정부는 사태가 심각해지는 걸 막기 위해 자본통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자본통제를 언제까지나 계속할 순 없다. 사람들 손에 돈이 없다보니 경제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와 같은 전자결제도 마찬가지다. 인출자체가 제한되어 있어서 은행의 기본기능인 지급 결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관광수입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리스로서는 외국 관광객들의 통화결제가 제한받게 되면 심각한 손실을 입게 된다. 또한 에너지, 식량, 의약품을 외부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입대금 결제를 못하게 되면 몇 주 만에 심각한 내부동요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은행 위기 상황이 시리자 지도부를 협상타결에 목매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3차 구제금융 협상에 대한 분석과 전망
사실 구제금융 협상의 쟁점이 됐던 긴축조건들에 따져보면 이미 6월말에 상당부분 합의에 근접했었다. 문제는 부채탕감에 대한 부분인데, 이것은 이전 신민당(보수당) 정부에서 긴축조건을 충실히 이행하는 대가로 부채탕감을 구두로 약속받았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독일이 약속과 달리 부채탕감 문제에 대해 절대 어떤 양보도 수용할 수 없다고 하여, 치프라스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국민투표를 선언한 것이다.
실제 치프라스도 그리스 정부도 국민투표에서 자신들의 긴축반대 주장이 압승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여론조사 상황에서 아마도 질 수도 있음을 염려했을 텐데, 예상치 못한 압승으로 추가협상을 위한 동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6월까지 진행했던 협상프로그램을 종료시키고 새롭게 부채탕감 및 조정을 포함하는 3차 구제금융을 본격적인 협상의제로 올린 것이다. 여기까지는 의도했던 대로 나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유로존 이탈을 염려하는 과반 이상의 국민 동요와 은행위기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리자는 “유로존 잔류” 라는 기본전략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한편으론 트로이카 강경파들에겐 좋은 약점이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그리스가 유로존 이탈을 선택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을 비롯한 트로이카 강경파들은 그리스를 과감하게 내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흘렸던 것이다.
이제 앞으로 진행될 협상의 초점은 부채탕감에 있다. 그리스는 30% 부채탕감이 필요하다는 IMF 보고서를 근거로 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독일은 전혀 양보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다만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율을 낮추는 방법으로 부채조정을 할 여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스 내부를 흔들기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는 걸 봐야 알 수 있다.
아마도 트로이카 강경파들은 은행위기로 인한 그리스의 혼란을 관망하면서, 시간을 끌 것이라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리스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 자중지란에 빠지길 기대할 것이다. 이미 강한 압박을 통해 두 번째 양보안을 받아냄으로써 내부 분열이 벌어지도록 만들었다.
더 나아가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유로존의 혼란만을 가중시킨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대외적으로 입증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12월 스페인 총선에서 집권가능성이 높은 좌파연합 ‘포데모스’를 견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섣부른 선택'이 어떤 고통과 혼란을 가져오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스를 살아있는 '제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과연 그리스 정부가 앞으로 10여 일간 벌일 협상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다시 한 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부채탕감은 포기한 채, 추가 양보와 함께 상환만기를 연장과 이자율 인하로 마무리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비상플랜을 가동할지 말이다.(물론 만기연장과 이자율 인하도 부채탕감효과를 발휘한다. 그리스 정부의 초기 요구사항대로 시행되면 그리스는 부채 40-60%정도를 탕감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시리자는 이번 구제금융 협상이 “그리스 사회개혁의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일보후퇴가 아닌 내부분열 속에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는 위기 순간에 놓여 있기도 하다. 만약 일사불란하게 퇴각을 한다면, 이번의 일보후퇴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전술적 판단으로 평가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중지란만 일으켜 그리스 민중운동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
이 분열과 갈등이 또 하나의 ‘비극’이 될지, 아니면 민중운동의 성장통이 될지, 시리자는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 할 매우 중요한 순간에 서있다. 그리고 이 변화된 위급한 상황은 시리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존 전략들을 커다란 밑바탕 위에서 다시 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참세상연구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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