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와 통일

[양규헌 칼럼]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통일안보

길고 지루한 여름이 여운을 남기며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기운이 깊어진다. 찬란한 햇살과 더불어 하늘은 푸르고 높은데 답답한 마음은 나른한 현기증을 모아온다. 나라꼴이 엉망진창인데도 대통령 지지도가 연일 상한가를 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현기증조차 없다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긴 망각의 시간을 갈망하고 무의식 속에 행복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게다. 그럼에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지금, 어리석음이 현명함이라고 확신하며 참과 진리를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 앞에 갈등하는 대다수의 군중이 시간과 계절과 세월을 딛고 있다.

어두운 구한말이 재현 되는가

불특정 다수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한 미국의 테러 전쟁 선포로 부질없이 국력을 소진하고 있는 사이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국력을 신장시켜왔다. 그 틈새에서 일본은 평화 애호국가임을 표방하여 양다리 걸치기로 무역전쟁의 성과를 챙기며 세계에서 외환보유고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더 나아가 일본은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을 과시하며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승격됐다. 전쟁법안 강행의지를 드러내는 것은 제국주의로서의 위상을 높여 동북아에서 패권의 쐐기를 박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 또한 전승절을 통해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며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끼워 넣어 미국에게 태평양을 독식하지 말고 나눠 쓰자고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은 열병식을 통해, 미국에게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무기가 있으니 자극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는 상황과 배경에 차이는 있지만 구한말 시대가 어둡게 재현되고 있는 꼴이다.

무능외교의 극치를 달리던 박근혜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우려를 감안하면서도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과 열병식에 참가했다.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은 성과여부를 떠나 동북아 정세에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이견이 없다. 잔치집에 가서 대접을 잘 받았다는 자랑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그런데 잔치집에 차려놓은 음식만 맛있게 먹고 왔는지 아니면 한국의 안보, 외교 전략이 관철되었는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진핑과의 정상회담과 가공된 전쟁분위기 속에서 마련된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하여 56%를 달리고 있으니 정치적 성과는 단단히 챙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통일외교

한중 정상 간에 합의했다는 통일외교는 과대 포장일 뿐이다. 그 근거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방안을 당사자가 아닌 중국과 논의했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회담 후 중국과 한국의 발표내용이 일치하지 않은 것은 외교의 무능이거나, 결례이거나 과대포장일 수밖에 없다. 회담결과에 대해 중국의 보도는 ‘한민족이 주도하는 장기적인 통일(남과 북이 주체)’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보도는 ‘조속한 통일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의 발표는 주체가 있지만 한국의 발표엔 주어 없이 막연하게 ‘조속한 통일론’을 내세우며 내년에도 통일이 올 수 있다는 조속함만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의 주체가 남북이 분명한데, 중국과 충분히 통일 논의를 한다는 말은 한마디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중국 쪽에는 ‘충분한 통일논의’라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보며 전승절에 참여한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교역상황으로 봤을 때, 한국경제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데 있다. 경제위기를 해소하는 것은 외교적 성과를 뻥튀기해서 홍보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반도 문제나 통일과 관련한 정상회담을 근거로 자의적 해석이나 보여주기식 성과에 덧칠을 해대는 것은 외교적 신뢰를 떨어트리는 것이며 국격에 타격이 있을 뿐이다.

전승절 참석 직후, 박근혜 정권은 ‘중국도 북한편이 아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은 견고하다’, ‘따라서 북한은 고립되어 있다’고 발표했는데, 북한이 고립된 상태에서 누구와 누구의 통일인지 알 수가 없다.그리고 이런 발상은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북한을 흡수하거나 붕괴시켜 남한 주도의 승리로 이루는 통일이라면, 이런 통일은 가능할 수도 없다. 결국 박근혜 정권은 통일에 대한 철학이나 집념은 없고, 대통령 자신이 주장한 ‘통일대박론’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통일이라는 상품을 이용하여 새누리당 내부에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줄 세우기를 통해 내년 총선을 거치며 임기 말까지 헤게모니를 움켜잡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통일은 당사자 간의 교류협력이 우선이고, 주변국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받지 않는 것

중국과 정상회담 후, 보수언론들은 독일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운운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통일이 될 것처럼 위험한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은 긴장완화 외교에서 출발했다. 통일이라는 목표를 두고 민족내부에서 할 일과 주변국에서 해야 할 일들을 균형 있게 나눠서 진행했던 것이 동방정책이며 긴장완화정책(평화정책)이었다. 첫째, 독일민족 내(동,서독)의 주체들과 대화를 통해 상호가 인정하는 선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했다. 둘째, 브레즈네프, 빌리브란트, 레이건을 상대로 동독과 서독은 소련,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국들의 협력을 요구했다. 통일외교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봤을 때, 주변국들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 당사자 외(정치적으로는 당사자 포함)에 통일을 반기는 주변국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중국과 정상회담을 했다고 중국이 통일을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고, 중국의 이해와 한반도 통일이 어떤 관계인지가 관심일 것이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한반도 통일을 1%라도 희망한다면 정전협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평화협정이 오래전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급작스런 통일외교는 수직적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구체적 상은 물론 주어가 빠져있다는 사실에 공허함만 자리하게 한다. 누구랑 통일을 할 것이며 통일의 상이 무엇인가. 남과 북이 휴전인 정전협정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무엇인가. 남과 북이 교류하면 통일인가, 이산가족이 상봉하면 통일인가. 아니면 강압정책을 통해 북을 고립시키고 흡수하겠다는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방향과 목표와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통일외교를 통한 지지층 결속과 보수대단결을 향해 낡아빠진 통일깃발만 흔들어 댐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고 지지율 상승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통일은 남과 북의 노동자, 민중이 주도해야하며, 당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한다.

국제정치에서 고립 압박 봉쇄를 노골적으로 할 수는 없다. 평화통일이라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며, 지배 권력의 전유물로도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통일이라면 민족의 기형적 분단체계를 끝내고 노동자, 민중이 주도하는 통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의 정치상황으로 봤을 때, 이런 통일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통일을 상품화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 허접한 꼼수는 더더욱 아니다. 완성된 하나의 통일국가를 지향한다면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해가는 장기적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합의되는 것이 통일에 대한 기본방향이며 올바른 방식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한다.

‘남과 북의 평화통일을 중국과 뜻을 같이 했다’는 발표는 탁구경기를 하는데 게임 상대방은 제쳐두고 심판과 경기하기로 합의했다는 꼴이다. 통일의 대상은 남과 북인데 중국과 뜻을 함께 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은 말이 안 된다. 남과 북의 화해 협력보다 다른 나라에 의존하며 통일외교에 열을 올리는 속내에는 북의 급변사태에 대한 과도한 정세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을 고립시키든, 힘으로 밀어붙이든 남과 북의 싸움에서 한국이 승리했다고 치자. 그러면 통일이 될까. '전혀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흡수하거나 전쟁을 통한 무력적인 통일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러일 등이 이 과정에 개입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며 주변국들은 결국 그 대가로 특수효과를 누리는 것은 물론 지분을 확보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것이다. 여기에서 지분은 또 다른 구획과 관리범위를 정함으로써 형태는 다를 수 있어도 분단은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는 것이 현 시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이다. 따라서 긴장을 조성하며 통일을 얘기하는 행위는 기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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