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칼럼] 창작자 매장시키는 문화적 테러리즘 없어져야

마광수(연세대 교수, 국문학)

예술과 외설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애써 예술과 외설을 구분 지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인류의 예술사는 언제나 외설시비로 얼룩졌다. 이 글에서 나는 예술과 외설 문제를 다뤄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자면 ‘외설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따질 때 우리가 먼저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넘어가야 할 일은 “외설이 왜 나쁘나, 또는 왜 죄가 되냐”라는 문제가 될 것이다. 소설과 영화, 연극, 미술 등에서의 외설(음란)이란 쉽게 말해서 그것을 읽거나 보는 사람들에게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 자체를 과연 부도덕한 일, 또는 법적으로 규제해야 마땅한 죄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의 논의부터 예술과 외설의 변별성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는 없다. 흔히 말하듯 성(性)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 중의 하나요, 인간이 마땅히 쾌락으로 누릴 자유를 갖고 있는 행복추구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약국에 가면 성적 흥분을 야기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약품들이 정부의 허가 하에 제조되어 정력 강화제 등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고, 성 전문병원에 가면 불감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제작된 에로틱한 내용의 비디오들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설적인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는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성(性)은 그 성격상 당연히 외설성 또는 음란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문제가 끊임없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성을 죄의식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육체비하주의 또는 정신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이 사회 상층부에서 보수 기득권자들의 기득권 유지 내지는 민중지배의 수단 역할을 하며, 일반대중을 옥죄는 메커니즘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도대체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흔히 얘기되는 상투적 구별법은 성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은 예술이고, 추악하게 묘사한 것은 외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법은 당장 자가당착적 모순을 불러일으킨다. 성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소재라 할지라도, 그것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고 추악하게 그렸다면 곧 예술이 아니라는 식의 단정이 따라오게 되기 때문이다.

성 역시 인생의 일부이니만큼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때로는 추악하고 모순된, 그리고 동물적 욕망만이 지배하는 양상을 띨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읽는 이에 따라 구역질이 날 수도 있고, 혐오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무조건 다 외설로 몰아붙인다면 예술은 영원히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포장물로 머물 수밖에 없다.

내가 겪은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가장 희화적으로 느껴던 것은, 1992년 10월 말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전격 구속될 때 “포르노 전용 극장을 만들자”라는 칼럼이 모 일간신문에 그것도 당시 공연윤리위원장의 기고문으로 게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1994년 7월 <즐거운 사라> 사건 항소심 재판이 항소기각으로 끝난 직후, 영화 <엠마누엘 부인>이 개봉되었다는 사실이다. <엠마누엘 부인>은 여성의 동성애와 자위행위, 그리고 변칙적 성희를 통한 자유를 예찬한 작품으로서 얼마든지 외설시비에 휘말려들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영화였다.

외설이라는 죄목만 갖다 대면 창작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선별적 시범 케이스식 문화적 테러리즘은 이젠 정말 없어져야 한다. 이런 후진적 현상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양비론적 태도와 성 알레르기 증세의 극복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른바 외설적 표현이라는 것도 결국 성에 대한 담론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부디 명심해야 한다. (후략)

(마광수 저, <문학과 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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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는 ‘성性인권운동/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진행 중입니다.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유교적 성문화에 침윤된 한국사회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진보적 성담론의 공론화로 변혁의 한 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사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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