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의 길 따르는 첫 번째 실천

[기고] 굴뚝농성 85일 8.23 스타케미칼 희망버스를 타자

황제를 상징하는 교황(敎皇)이라는 말보다 그저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라는 뜻인 교종(敎宗)이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하는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 출신의 79세 노(老)성직자, 교종 프란체스코가 5일간의 방문을 마치고 한국을 떠났다. 과거 한국을 방문했던 그 어떤 국가수반이나 종교 지도자가 이토록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을까? 우리는 과연 그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교종 프란체스코는 세월호 가족들을 도착하는 날부터 매일 만났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진심어린 위로와 따뜻한 미소로 치유를 선물했다. 눈물 섞인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달고 가족들이 900킬로미터를 메고 걸어온 십자가를 감사히 받았다.

100만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동 중 갑자기 차를 멈추고 내려서는 30일이 넘게 단식농성 중이던 유민이 아빠의 손을 잡고 축복하며 그의 편지를 받아 고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진도 팽목항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음을 미안해하며 실종자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새기는 자필 편지를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열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에도 위안부 할머니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족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초대 되었다. 언론도 국민도 잊은 듯했던 이들 이름을 교종 프란체스코가 불러 세상에 다시 나오게 했다.

그는 4박 5일 동안 자유, 평등, 평화, 화해, 정의를 이야기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환경 문제를 해결 하려면 마지막 한 사람의 목소리까지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가난한 이들과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호소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연설 중에서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라는 말은 나의 일상과 관계를 관통하는 소중한 좌우명이 되었다. 그는 답답하고 꽉 막힌 우리 국민들에게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선물이었다.

교종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이 한반도 남쪽 땅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떠났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그가 십 수년간 지속되어온 인권침해와 운영 비리에 대한 논란과 대규모 수용으로 장애인, 노숙인 등의 자립생활과 탈시설 사회복지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기업형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하여 장애 인권 운동 진영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을 찾아 같이 춤을 췄다면, 밀양 송전선로 경과지를 찾아 공권력의 폭력적인 행정대집행을 꾸짖었다면,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농성장을 찾아 기도 중인 수녀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다면,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고공농성 중인 굴뚝을 방문하여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소리쳤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지만 이 땅의 정치권력이 자본과 함께 저지르고, 부족한 시민의 힘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사안들의 해결을 교종 프란체스코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그가 떠났으니, 그가 우리에게 던져 준 숙제들의 마무리는 본래 그랬듯이 당연히 우리들 몫이다.

그가 다녀간 자리, 그가 잡았던 손, 그가 말한 ‘정의와 평화’, ‘연대와 사람중심’의 정신. 우리는 어떻게 그 자리를 메우고, 누가 대신 그 손을 잡고, 어떤 마음으로 그 정신을 쫓을 것인가? 더 무거운 책임과 더 진지한 고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교종 프란체스코를 따라 우리 곁에 왔던 카메라들과 세상의 관심은 또 차츰 멀어져 갈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세상과 사람들을 우리 곁에 붙잡아 두고 힘과 지혜를 모아 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같이 싸우면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다시 마음을 모아 연대하는 첫 번째 걸음으로 오는 8월 23일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로 출발하는 희망버스를 타고 차광호를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떨까? 20년간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중년의 노동자 차광호는 지난 5월 27일 새벽 3시 45미터 높이 굴뚝위에 단신으로 올랐다. 지난 1월 회사가 일방적으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해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스타케미칼은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로 지난해 1월 폐업하며 노동자 228명의 근로계약을 종료했다. 어용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위로금을 받고 퇴사했고 차광호와 함께 11명의 해고노동자들이 현장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2011년과 2012년 각각 156억 원과 160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폐업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 절차 진행 과정에서 이미 이는 노조 파괴를 위한 위장폐업이 아니냐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2012년 자산가치가 800억 원을 훨씬 넘는 한국합섬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인 399억 원의 헐값에 매입한 스타케미칼은 불과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폐업을 선언하며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고한 것이 의혹을 더 키웠다.

한국합섬을 인수할 때부터 공장 운영이 목적이 아니라, 공장과 부지 등의 분할 매각을 통해 거액의 이윤을 남기려는 목적을 가졌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현재 공장부지 땅값만 400억 원에 달하고, 설비, 전선 등을 매각하면 인수비용 보다 훨씬 큰 이윤이 남게 되는 것은 경제를 잘 모르는 나 같은 문외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측은 일방적으로 폐업을 결정과 희망퇴직을 밀어붙였지만 이를 거부한 28명은 전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날로 이들은 투쟁을 시작했으며 사측의 공장 분할매각을 저지하고 고용승계를 쟁취하려는 투쟁을 이어왔다.

그동안 지방선거 등에 묻혀 차광호의 고공농성과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널리 알려지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번 희망버스를 통해 스타케미칼 투쟁을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이끌어내야 한다.

스타케미칼로 향하는 ‘굴뚝희망버스’는 16개 권역별 광역시도에서 출발하여 23일 오후 2시 구미 금오산 복개천에 집결하여 행진한 후 오후 4시 스타케미칼로 굴뚝 농성장에 모이게 된다.

차광호는 굴뚝위에서 외로운 고공 농성을 하면서도 구미에 오지 않아도 좋으니,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투쟁에 노동자들이 제일 앞에 나서자고 제안하는 사람이다. 정세에 대한 판단과 연대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8월 23일이면 이제 그가 하늘로 올라간지 100일이 거의 다 된다. 더 늦기 전에 차광호를 만나러 가야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쌍용자동차와 스타케미칼 등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제주 강정과 밀양의 평화, 용산참사 진상규명, 위안부 할머님들의 한을 푸는 일. 최소한 이 문제들만이라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얻어내야 교종 프란체스코가 노구를 이끌고 한반도를 위로한 그 고마운 걸음에 대해 보답이 되지 않겠는가.

상처는 상처와 만나게 되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해고노동자들이고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이고 용산참사 유족들이다. 우리는 세상이 다 아는 힘없는 사람들이니, 모여서 함께 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8월 23일 스타케미칼로 가는 굴뚝희망버스를 타고 다시 우리 시대의 아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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