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비용 ‘낭비’로 취급하는 사회

[기고] 세월호 이후, 인간 존엄 지키고 공동체 회복해야

우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기업이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경쟁을 통해 일부만 살아남는 것이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자본의 이윤논리를 설파하는 기업과 정부의 탐욕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304명의 목숨을 제대로 기억하는 길이다.


정부와 기업은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선박연령은 2008년과 2009년 5년씩 연장되면서 30년까지 허용됐다. 청해진해운은 18년 된 세월호를 일본에서 수입해 개조했다. 배의 용적톤수와 정원을 늘렸다. 그런데도 민영화된 관리업체인 한국선급은 선박검사기준을 통과했다고 인정했다. 사고 당일 세월호는 화물을 두 배 가까이 실었고 평형수는 두 배 줄였다. 정부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이후 해경은 모든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해 인명구조를 하기는커녕 구경만 하거나 ‘언딘’이라는 특정업체에 독점적 구호를 맡기고, 민간감수부들의 구호활동에 전혀 협력하지 않았다.

선박회사와 정부, 구조업체 모두가 돈만을 위해 일했다. 결국 사고가 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살려야 할 목숨들을 잃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회에서는 안전에 대한 비용은 비효율적이거나 낭비로 취급된다.

재발방지 대책?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큰 사고가 나면 다들 호들갑을 떤다. 방송에서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단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히고 참사는 반복된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노후선박 교체, 선체 및 운항관리 점검, 과적 방지, 승무원 안전교육 강화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오히려 관리감독은 외주화되고 노후선박과 과적은 증가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로 이어졌다. 94년과 95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부실공사 대책이 세워졌지만 그 대책은 오히려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으로 바뀌었다. 씨랜드에서는 잘못된 건축물 인허가가 문제였는데, 춘천 인하대봉사단 참사와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에서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1인승무제의 위험성이 지적되었는데도 1인승무제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참사가 일어나면 그때뿐, 재발방지 대책은 말로만 떠들고 정부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책임자도 처벌되지 않는다

이전 참사에서 최고책임자가 처벌된 경우는 삼풍백화점밖에 없었다. 기업의 최고책임자들이나 허가를 담당한 고위 공무원들은 수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기관사와 관제사가 금고형을 받았고, 시신훼손 등 증거인멸의 주범인 대구지하철 공사 사장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태안해병대 캠프도 직접 당사자인 교관들만 처벌을 받았을 뿐, 여행사나 캠프 운영 담당자 등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들은 지금도 이름만 바꿔 계속 영업한다.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도 모든 책임을 선원들에게만 한정했다. 각종 인허가를 담당하면서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공무원도 하위직 공무원만 책임을 질뿐이며, 그나마 집행유예로 나온 경우가 허다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으니 기업과 정부는 안전시설을 제대로 하기보다 사고가 나도 당장의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규제완화로 지금도 위험을 만든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장성요양병원 화재와 고양터미널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큰 사고를 경험하고도 정부나 기업은 사람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도 안전규제완화가 지속되고 사회는 계속 위험하다. 철도 정비업무는 비정규직이 담당하고, 비용을 낮춘다는 이유로 자격기준을 계속 낮추고 있다.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회사의 정보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되는데, 노후화된 시설 때문에 불산 누출사고 등 지역주민에게 심각한 위험을 끼쳤다. 원자력발전소도 노후화되어 위험이 높아지는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미 노후화된 고리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노골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하는 정부 정책의 결과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안전을 산업으로 만들겠다?

정부는 안전규제를 푸는 것에 더해서 안전산업을 만들겠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선급 등 안전관리를 다루는 민간회사들이 돈만 밝히고 제대로 안전관리를 하지 않은 책임이 큰데, 정부가 담당해야 할 안전관리를 산업화하겠다는 것이다. 언딘은 어떠했는가? 구조책임을 맡은 민간회사 언딘은 구조업체가 아니라면서 책임에서 모두 발뺌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돈이 되는지 아닌지가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업무는 절대로 ‘산업’으로 만들면 안 된다. 안전산업이 발달하면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인 ‘시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 업무’는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국가는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것이고, 돈을 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시민의 안전이 결정될 것이다. 미국 카트리나 재해 당시 시신 수습 일을 맡은 업체들이 오히려 빠른 수습을 막았던 사례처럼, 안전을 산업화하면 안전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돌아가고, 정부는 이에 분노한 시민들을 통제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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