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때까지 저항하고 연대하기 위하여

[기고]밀양, 청도, 홍천 주민과 함께하는 '72시간 송년회'

12월 15일 밀양과 청도 주민들이 홍천으로 온다. 저항과 연대의 약속 '72시간 송년회'를 한다. 밀양과 청도, 홍천 주민들의 삶은 닮았다. 밀양 어르신들은 6.11행정 대집행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겪었다. 마을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이제는 속절없이 송전을 앞둔 거대한 철탑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청도 삼평리 공사 출입구 현장 앞에 앉아 있는 할매들은 어떤 심사일까. 공사는 진행되고, 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홍천 주민들은 어떤가? 홍천 동막리 골프장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하던 업체가 골프장을 짓고 있고, 주민들은 토지강제수용을 당한 채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최문순 도지사가 취소한다고 했던 구만리 골프장은 최근 공사를 재개하면서 취소가 백지화 됐다. 고통 속에 지친 모습도, 오랜 싸움도, 권력과 자본의 칼날에 무참히 부서지는 삶도 너무나 닮았다.

강원도 내 강릉, 원주, 홍천지역 골프장 피해 마을 10여 곳과 강원지역 시민사회‧노동‧정당 등 50여 단체는 2010년 12월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응을 해 왔다.

생물다양성협약(CBD) 한국시민네트워크의 산림(사막화)분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 가운데 골프장 개발로 훼손된 숲 면적이 여의도(290ha)의 약 20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축구장 면적(0.714ha)으로 따지면 7,986개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KGBA)가 지난 1월 1일 기준으로 집계한 전국골프장현황에 의하면, 전국엔 545개소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거나 공사 중, 인허가 추진 중이다. 강원도에도 2014년 말 90여 개의 골프장이 자리하면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골프장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 지역 8개 마을 주민들은 7년에서 11년째 골프장 반대투쟁을 해 왔다. 그중 강릉지역 한 곳은 골프장 대신 대체사업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홍천의 2개 마을은 골프장이 취소됐다. 강원도청에서 406일 노숙, 강릉시청에서 479일, 홍천군청에서 204일의 노숙투쟁을 통해 얻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최문순 도정과 박근혜 정부는 산지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골프장을 개발하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마을들은 힘겹게 골프장을 막아내려 싸우고 있다.

골프장 싸움은 시대의 요청이요, 부름이었다. 주민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문제는 이 싸움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환경운동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면 활동 좀 한다는 활동가들이 “골프장 싸움, 어려운 싸움이고, 해봐야 백전백패”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이 일부 이해는 간다. 작금의 골프장 사업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기막힌 과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녹색의 산림을 훼손하기 위해 법대로 안 되니까 산지관리법을 개정하고, 산림청과 환경청이 이를 묵인하거나 도와주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관련 규정 개정에 있다. 특히 환경정책기본법, 환경영향평가법, 각종 평가서 용역업체 선정방법 등이 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법적 투쟁은 권력과 줄이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그들을 심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을 바꾸는 그들과는 싸움이 안 된다. 개발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기 이익이 먼저라는 경제논리와 상생이다.

그런데 이들의 논리가 시민사회단체 속에도 존재한다. 그것을 입증하는 말이 바로 ‘골프장 싸움 백전백패’다. 모름지기 시민사회단체라면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근거는 시민정신이다. 정의의 승리를 믿는 시민은 현존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질문의 실천 행위를 아예 포기하고 현존하는 것에 맞장구만 치려 한다. 그들은 그 대가로 체제 안에서의 ‘편안함’을 선물로 받고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 질문해야 할 때 질문하지 않는 것은 비굴할 뿐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은 질문의 능력을 저버리는 죄다.

‘골프장 싸움 백전백패’라는 말은 심각한 패배주의자의 고백이요, 불의를 인정하는 사이비 시민단체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민은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득권자를 향하여, 힘 있는 자들을 향하여 책임을 다하라고 외쳐야 한다. 정부를 거북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참된 시민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골프장 싸움 백전백패’라고 말하는 순간 개발자들이 주장하는 경제논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힘이 없기에 진다는 허술한 논리, 힘이 있어야 이긴다는 논리에 빠지는 것이다. 장막 뒤에서 술수만 부리는 오늘날의 공무원들과 사업주의 거짓된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골프장 싸움이 백전백패’라면 싸우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싸워야 한다. 운동의 간판을 걸고 사이비 작당을 하는 단체는 각성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힘의 싸움이 아니다. 힘에 겨운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두렵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들은 전사들이다. 나는 믿는다. 골프장 싸움은 옳은 것이기에 반드시 이긴다.

어떻게 이기는 것일까? 자기 이익을 챙기는 강고한 이데올로기의 종이 된 자들을 거부하고, 허물어 버림으로 이기는 것이다. 온갖 잇속을 챙기는 모든 불편한 행위를 거부함으로 이기는 것이다. 설사 지역공동체의 결속이 깨지더라도 ‘화합’이라는 거짓논리를 거부함으로 이기는 것이다. 불편하고 위협받는 상황에서 발언함으로 이기는 것이다.

생명이 죽어가는 현실 앞에서 농토가 강제수용당하고, 식수와 농업용수가 고갈되고, 친환경농업과 유기농업이 말살되는 현실을 고발함으로 이기는 것이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무참하게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 이미 이긴 것이다. 공무원의 밀실행정을 적발하고 고발함으로 이기는 것이다. 살해위협과 매수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세금만 납부하고 정책에 순응하며 법을 지킨다고 해서 시민이라 할 수 있는가? 시민은 모름지기 시민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과 경제논리를 거부하고 시민이기를 고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믿음이고 승리다. 세상의 논리를 거부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내가 살아생전 골프장이 취소되는 걸 볼 수 있을까?”라고 물으시는 할머니는 11년째 골프장을 반대하고 있지만, 최근 골프장 공사가 재개되면서 힘겨워하고 있다. [출처: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실제로는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가 ‘골프장 싸움 백전백패’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일 수 있다. 예전의 운동처럼 ‘정의’의 논리로 통하지 않는 오늘날의 ‘맘몬(mammonism)’ 논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의 자격을 가지고 당당하게 불의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골프장 반대대책위 의로운 전사들은 진정한 시민정신을 가지고 있다. 성서는 이렇게 말했다.『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 5:9).

밀양도, 청도도, 홍천의 골프장 주민도 싸움을 끝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아픔과 고난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다. 당연히 여러분들도 와서 힘 받고 힘주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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