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지금 ‘우리’가 위험하다

[기고] 이 소리없는 아우성은 누가 들어야 하는가

긴급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 벌써 4시간째 누워 있다. 해고자 복직, 정리해고제 폐지를 외치며 1월 7일부터 시작한 오체투지다.

2009년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고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진압과 100여명에 이르는 구속, 그리고 이어진 47억의 손배와 26명의 죽음이었다. 그리곤 다시 지난 12월 13일 이창근과 김정욱 두 해고노동자가 다시 70m 굴뚝을 올라야 했다. 해고자를 복직 시키면 13일 출시 예정인 쌍용차의 신차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춤이라도 추고, 무료로 광고모델로 하겠다는 이효리 씨, 국경을 넘어 지지글을 보내준 스피박과 지젝 등의 해외 인사들도 있었지만 아직도 회사는 아무런 답이 없다. 대통령이 되면 맨 처음으로 쌍용차 국정조사를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 또한 아무런 답이 없다.

오히려 고법에서 충분한 검토 후 내린 해고 무효 판정을 대법이 나서 뒤집었다. 쌍용차의 해고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의 최소한의 꿈조차 짓뭉개버리는 사법 살인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다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저 고공으로 내몰았다. 그것은 한국사회 노동자들의 운명을 다시 까마득한 벼랑 끝으로 미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긴급하다. 국회 앞에서도, 대법원 앞에서도 오체투지 행진은 간간히 작은 마찰은 있었지만 너무나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행진신고도 인도로 냈다 한다. 횡단보도 잠시 지나는 것 외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사대문 안보다 더 번잡하고 길도 넓은 강남에서는 경찰들이 오히려 나서서 신호조작을 해주면서까지 행진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명동성당을 넘어 오면서부터 강경 탄압이 이어졌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들려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5분이면 건너 갈 횡단보도 하나 건너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횡단보도인 명동 롯데백화점 사거리에서는 무려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체투지단은 항의의 표현으로 찬 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먼저 대한문에 도착한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은 5시간이 넘게 나머지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자신도 일어날 수 없다고 대한문에 엎드려 있었다. 저체온증이 와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이 나오고, 무자비한 경찰들의 폭력에 머리가 깨지고 목이 졸린 사람이 또 병원으로 실려갔다. 기륭전자 오석순 조합원의 처절한 항의는 차마 말할 수조차 없다.

오늘은 어제의 항의가 있었기에 괜찮으리라 했다. 무자비한 경찰의 폭력과 이에 맞서 끝내 오체투지를 하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광화문 사거리가 아비규환이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건널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종합청사 앞까지 1시간도 채 안 걸릴 거리를 가는데 무려 5시간이 걸렸다. 함께 지키겠다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서영섭 신부님이, 장동훈 신부님이, 나승구 신부님이, 수녀님들이, 조계종 노동위의 도철 스님이, 천주교 예수회의 조현철 신부님이, 백기완 선생님이, 박재동 선생님이, 자유언론실천연합 현상윤 상임이사님이,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님 등 여러 목사님들이, 이완기 민주언론실천연합 의장님 등 무수한 사회 각계 분들이 어제부터 나서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불통의 정부와 청와대, 공권력에 막힌 오체투지단의 노동자 시민들이 현재 4시간 가까이 영하 10도 가까운 이 겨울 밤, 찬 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꼼짝을 않고 있다. 경찰들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유가족분들이 가져다 준 소량의 깔개과 덮개마저 무법으로 막았다. 깔개 하나 덮개 하나를 얻기 위해 연대시민들이 몇 번이나 경찰들과 소용돌이가 되어 얽히고 있다. 최소한의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그렇다. 한국사회 노동자들과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최소한의 인권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전 노동문제 종합대책이란 것을 내놓았다. 내용은 정리해고는 더 쉽고 간편하게 하고, 비정규직 사용기간은 두 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1000만에 육박한 비정규직들은 어떤 권리도 없이 의무만 있는 현대판 노예에 다름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공포에 모든 인간성을 반납하며 살아야만 하는 야만의 시대다.

긴급하다. 조금 전 네 시간 가까이 누워 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입장을 발표했다. 이런 불법 탄압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갈 수는 없다고 정부와 국회와 청와대에서 답이 오기 전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평택 쌍용차 굴뚝 현장을 지키던 해고자들도 지금 이 시각 모두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그 빈자리는 본인들 역시 정리해고자로 싸울 때 도와주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지켜주러 온 한진중공업 사람들이 지켜주겠다고 했다 한다.

5일동안 자신의 일처럼 오체투지를 함께 해왔던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도, 민주노조 파괴에 맞서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도, 본인들 역시 240여일째 동료 차광호를 굴뚝 위에 두고 있는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1차에 이어 2차 내내 함께 하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을 이끌고 있는 알바연대 청년노동자들이, 그리고 이제 막 직선제 로 당선된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님이,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님이,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님이, 신부님, 스님, 목사님, 교수님, 화가, 교사, 학생들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함께 지키겠다고 한다. 그런 인간애가 눈물겹다.

지금도 경찰은 어떤 방한물품 반입도 무법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사람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사람들을 덮어주고는 오돌오돌 떨어야 하기도 했다. 아, 이곳이 1980년 광주 도청 앞인가. 아, 이곳이 1987년 명동성당 들머리인가. 모든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파괴당하는 이 동토의 한 복판에서 온몸으로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복받쳐 몇 번이나 눈물을 삼킨다. 당신들이 이 시대의 희망으로, 진정으로 4.16 참사 이후 달라져야 하는 한국사회를 온몸으로 구출해 나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평형수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긴급하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칠흙같은 밤 오가는 사람들도 없는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중간 공터 사이에서 어떤 비명소리가 날지 아무도 모른다. 경찰들은 밤이 깊기를 바라며 민가를 노려보는 굶주린 늑대나 하이에나나 살쾡이들처럼 눈이 번뜻이고 음산하다. 아, 이 음산한 밤을 또 무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오체투지단의 사람들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살을 에고, 뼈마디 끝까지 파고드는 바람과 추위도,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 경찰 경고방송에도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저녁밥도 거부하고 무슨 무덤처럼 누워만 있는다. 이 소리없는 아우성이 저들은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런 이들의 피눈물을 외면한 신차 티볼리를 누가 탈 수 있을까.

이 밤 누군가라도 함께 나와 지켜주면 정말 좋겠다. 출근 때문에, 일 때문에 나올 수 없더라도, 이 밤 우리 사회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주고, 주변에 알려주면 좋겠다. 쌍용차에 이제 그만 문제를 풀어라고 함께 촉구해주면 좋겠다. 대주주인 마힌드라사가 결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주면 좋겠다. 이런 아픔을 겪고도 정리해고제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겠다는 이 정신없는, 이 불의한 박근혜 대통령, 정부, 국회를 단죄해 주면 좋겠다.

만약 계속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가능한 새벽이라도, 아침에라도 들려주면 좋겠다.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비극과 아픔의 상징인 쌍용자동차 문제 이젠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들을, 논의를 다시 시작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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