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도 못 받는 부모세대를 봉양해야 할 미래세대

[기고] 공무원 연금 축소와 미래 세대

거리거리마다 새누리당이 내건 ‘공무원 연금개혁, 지금 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원망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찬란하게 햇살을 받고 있다. 참 만감이 교차하게 만드는 ‘말씀’이다.

공무원 연금을 거의 적금 수준으로 줄이는 게 ‘개혁’인가? 개혁이라는 말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공적연금을 축소하는 것, 사회 복지제도의 큰 축 하나를 없애는 것을 개혁이라고 강변해도 되는 것인가?

그 현수막 문장의 미래세대 버전은 ‘기성세대님들 저희들에게 과다하게 부담주지 마시고 연금을 포기하세요!’가 될 것이다. 자녀 세대를 시켜 부모 세대를 치는, 삼국지의 ‘차도살인지계’를 떠올리게 하는 참으로 기막힌 술수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공공연하게 온 나라를 휘저어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이런 선동을 해도 되는 걸까? 국민 통합을 내세우면서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장관급 기구까지 만들더니 이렇게 세대갈등까지 만들다니...

이 정부는 탄생과정에서부터 NLL대화록을 터뜨리고,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 요구 등 고비마다 국민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대립하게 만들어 정치적 곤경을 헤쳐 나왔다. ‘정윤회의 국정 농단’ 의혹이 들끓는 시점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나왔다. 그 빤한 수가 또 ‘공무원 연금’ 판에도 나타난 것이다.

과연 공무원연금 축소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공무원 연금을 축소하면 미래세대가 연금 없는 부모님들을 봉양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미래세대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거다.

그렇다면 과연 공무원 연금의 재원 부족 원인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공무원 연금 기금은 공무원들이 매달 3~40만 원씩 급여에서 떼어낸 금액에 그 액수만큼 정부가 부담한 재원을 더하여 적립한 것으로, 사기업에서 사용자가 100% 부담하는 퇴직금과도 다르다. 연금은 공무원들 자신이 적립한 금액과 정부가 연차적으로 지급한 퇴직금을 합한 것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사기업의 퇴직금을 대신하는 게 연금인 것이다.

IMF 위기 때에 정부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 11만 3천여 명을 퇴임시키면서 퇴직수당 등으로 5조원이 넘는 기금을 가져다 지출하고서 이를 보전해 주지 않았다. 이렇게 기금을 전용한 금액을 현재가로 환산하면 대략 3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기금을 동원해 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원인이 이렇다고 할 때 부족하게 된 기금 재원은 정부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 이른바 ‘사자방’에 대한 부정축재를 환수하여 보전하든지, IMF사태 당시 연금 기금의 투입으로 막대한 혜택을 입었던 대기업들에 대한 증세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시킬 일이 전혀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하자. 그나마 조금 괜찮다고 생각하는 공무원 직종마저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일인가? 미래 세대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가 보편적인 사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공무원 연금 축소는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로 갈 것인지, 미국 모델의 신자유주의로 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공무원 연금이 축소되면 국민연금인들 온전하겠는가?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사보험 시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자는 게 이번 공무원 연금 축소의 본질이다.

1987년 처음으로 교사가 되었을 때 교육공무원들의 보수는 사기업에 비하여 참으로 형편이 없었다.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라도 갖게 되면 ‘교사가 무슨 돈이 있냐?’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한 보상은 후불 임금, 연금이었다. 그걸 이제 와서 못 주겠다면서 공무원들을 자기들 생각만 하고 미래세대는 안중에도 없는 집단으로 몰아세우다니...

100만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의 노후를 훔치는,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이 엄청난 사단을 어찌할 것인가? 정녕 이 정부는 공무원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파업에 나서라고 강요하는 것인가? 교묘한 선동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다고 일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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