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기고] 쌍용차 해고자 원직복직, 정리해고제 폐지 오체투지에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제 폐지를 위한 오체투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뻗는다. 땅에 붙어 눈으로 바닥을 살짝 훑어본다. 내 배에는 담배꽁초가 깔려 있고, 오른편에는 토사물이, 근처에는 개똥의 잔해가 보인다. 역함을 느낀다. 몸이 많이 아프다. 발과 무릎, 어깨 어느 한 군데도 성하지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평온했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북소리는 들릴 듯 말듯하여, 옆에서 목청 큰 사람이 소리내어 외친다. “일어납니다!” 그리고 북이 한 번 더 울리면 우리들은 천천히 걸어간다.

“절!” 우리들은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 엎드렸다. 자동차들이 여기저기서 클락션을 울려댔다. 어떤 사람은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화를 냈다.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는 혼란이 일고, 머릿속에서는 생각들이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서는 그들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존재함을 느꼈고, 머릿속에서는 이것이 개인의 탓인지 구조의 탓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충돌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분노라는 감정에만 집중을 하자니 왠지 겁이 났다. 아마, 예전에 드라마나 책에서 옳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이 변절 또는 타락(?)하는 것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그런 겁이 났던 것 같다.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분노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것이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처럼 내가 추해져 있을 때에는 노동자 민중을 위하는 세력에 의해서 쫓겨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옳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바꾸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면,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나는 충분히 분노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민이 느껴진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불쌍해서였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는 그들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인데, 그러한 문제를 앞장서서 드러내고 해결하겠다며 모두를 위해 거리를 기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붓는 모습들은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게 너무 팍팍해서 그런 행동을 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낸 이 체제에 대해 많은 분노를 느꼈다. 그럼에도 그들의 행동은 잘못이다.

하지만 잘못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 큰 잘못은 이윤이 우선인 신자유주의 체제가 저질렀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빨리빨리 어디론가를 향해 이동하는 것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등 모든 노동유연화 조치가 적극적으로 시행된 것도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인간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폐지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체제를 어떻게 폐지해야 하는가? 답은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국민들이 이 체제의 생존에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체제의 생존이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것임을 알려야만 한다.

쌍용차 노동자와 콜트콜텍, 유성, 스타케미칼, 기륭전자 노동자들 등이 앞장서서 진행한 2차 오체투지 행진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겉으로는 무릎을 굽히고, 엎드리는 등의 모습을 보여 무기력해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 위에 있는 두 노동자와 함께,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있는 한 노동자와 함께 하늘에서, 땅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법 제도 철폐를 위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비타협적 행진이었다.

우리의 비타협적 행진에 밀려, 새정치연합은 황급히 대표단 면담을 들고 왔고, 새누리당사는 철통같던 경찰벽을 풀고 당사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경찰들의 제지를 뚫고 대법원 앞 8차로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 롯데백화점 사거리에서 경찰병력에 의해 5시간이 고착되어서도 우리는 오체투지로만 길을 갈 것이라고 일어서지 않던 사람들. 끝내 오체투지로 대한문까지 가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가장 평화로운 행진을 깨기 위해 달려든 늑대같은 경찰들과 몇 번이고 얽히던 광화문 네거리, 세종문화회관 앞 횡단보도, 그리고 하룻밤을 엎드린 채로 세워버리던 정부종합청사 앞의 감동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우리들의 결의와 진정성이 2015년 새해엔 새로운 사회의 희망을 만드는 작은 계기들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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