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무능 정부'가 또 다시 에이즈환자를 쫓아내다

[기고] 지역별 공공병원 확대하고 투자 늘려야

급박했던 나흘

6월 5일 오전 11시 30분경 환자의 가족이 “수간호사가 6월 9일까지 퇴원하라고 해요. 뭔 일이에요?”라고 전화를 주셨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일단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 오해가 있는 모양이라고 안심을 시켰지만, 나도 떨렸다. 올 것이 왔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있던 13명의 에이즈환자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이 넘게 장기입원해 있었다. 다른 종합병원에서는 그렇게 오래 입원할 수 없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에이즈결핵관리과)와 국립중앙의료원에 전화를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메르스 중앙거점병원’으로 지정이 되어서 6월 9일까지 약 300명의 입원환자가 모두 퇴원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에이즈환자들이 옮겨갈 수 있는 병원을 전국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와 통화가 된 건 5일 오후 2시경이었다. 금요일 오후인데 주말 빼고 이틀밖에 시간이 없어서 13명의 환자가 갈 병원을 구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다.

6월 6일에 배포된 복지부 보도자료에는 “메르스환자 치료에만 전념할 예정. 일부 불가피한 경우(에이즈 환자 등) 제외”라고 되어있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옮길 병원을 못 구하면 국립중앙의료원에 남을 수도 있단 의미인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6월 8일 월요일 다시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했다. “에이즈환자 제외”라고 보도되어 환자가족들이 혼란스러우니 상세히 안내해달라고 했더니 “그건 오보”란다. 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국립중앙의료원 간의 소통체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다 퇴원해야한다면 갈 병원이 확보되었는지 문의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다 확보되었다면서, 환자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왜 알려줘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해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 시각 13명의 에이즈환자가 갈 병원이 다 확보되지는 않았었다. 아직 5명의 환자가 갈 병원이 마련되지 않아 국립중앙의료원은 질병관리본부와 상의하고 있는 시점이었고, 쉼터를 알아보고 있었다. 쉼터는 이 환자들은 돌볼 수 있는 곳이 아닐 뿐만 아니라 쉼터도 이미 만원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전화를 건 환자 가족에게 ‘그 환자는 병원에서 퇴원 명령한 환자다. 병원을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퇴원명령? 지금까지 입원해 있다가 하루 만에 환자상태가 좋아졌단 말인가?

6월 9일 아침에 국립중앙의료원에 갔다. 다행히 13명이 갈 병원이 모두 정해졌다. 퇴원수속을 하고 3개월 치 약을 타오고 짐을 싸는 등 전원을 준비하는 간호사, 간병인, 환자가족들로 병실 복도가 북적북적했다.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등에 있는 4곳의 병원으로 갈 응급차들이 도착하는 대로 서로 배웅했다. 오랜 병원 생활의 결과물인 많은 짐속에 환자와 가족이 껴있는 모습이 흡사 피난민 같았다. 가족들은 간호사에게 “우리 다시 만나는 거지요? 다시 국립의료원에 돌아오는 거지요?"라고 재차 물었다. 와상환자를 응급차 침대로 옮겨 병실을 나서자 눈물을 글썽였다. 그 환자는 말을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뭔가를 느꼈나보다고 간병인들과 가족이 안타까워했다. 간병인들도 다음날 짐을 싸서 경상도, 충청도로 떠났다.

전날까지도 병원이 확정되지 않은 환자가 있던 상황이라 13명 모두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것에 안도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어렵사리 병원을 연계해주었지만 3명의 환자는 그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2명의 환자는 종합병원 입원비가 걱정되어 가족이 집으로 데려갔고, 다른 1명의 환자도 가족이 집으로 데려갔는데 이유는 모른다. 집에서 건강상태를 잘 유지할지, 낯선 병원으로 옮겨진 환자들도 무탈하게 지낼지 걱정이다. 그리고 13명의 환자들 중 상당수가 기초생활 수급권자이기 때문에 경상도, 충청도 등으로 가기 위한 10~40만원에 달하는 응급차 이용료도 큰 부담이었다. 환자들은 1인 가구이거나 고령의 부모, 언니, 매형, 배우자가 보호자역할을 하고 있는데 보호자들도 형편이 어렵다. 50대 배우자가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거나 70대 노모가 식당에서 반찬을 만들어주고 생계를 이어간다. 뿐만 아니라 외래진료를 받아왔던 천몇백 명의 HIV감염인들도 병원을 옮기고 약을 타와야하는데, 만성질환자에게 병원을 옮기는 일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메르스 사태를 방치한 정부를 비판하며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모습. [출처: 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병원에 떠맡겨진 환자들

13명의 환자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가야 하는 장기요양환자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요양원에는 갈 수 없다. 2013년 12월까지 에이즈환자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이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0년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S요양병원에 위탁하였는데, 그곳에서 에이즈환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사건이 발생하였고, 질병관리본부는 2013년 12월에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질병관리본부는 S요양병원에 입원해있던 수십 명의 에이즈환자를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경찰병원 등으로 전원 시켰을 뿐 에이즈환자가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을 마련하지 않았다. 장기요양이 필요한 에이즈환자를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떠맡겨놓은 것은 질병관리본부다. 전국에 1300여 개의 요양병원이 있지만 에이즈환자들이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은 하나도 없다. 에이즈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와 낙인 때문이다. 1300여 개의 요양병원 중 70여 개의 공공요양병원이 있지만 민간위탁형태로 운영되어 이곳에서도 에이즈환자를 거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장기입원 및 장기요양이 필요한 에이즈환자들에게 국립중앙의료원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진료거부를 당한 HIV감염인들이 찾는 곳도 국립중앙의료원이다. 2011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특수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감염인에게 인공관절 수술을 거부했고, 2014년 국립경찰병원에서 치과, 피부과 등의 진료를 거부한 바 있고, 2014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피가 튀는 것을 가릴 막'이 없다는 이유로 중이염수술을 거부하였으며, 최근까지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은 “포말이 튀게 되어 감염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분리된 공간(전용체어를 포함한 치료실)”이 있는 병원으로 가라며 치과 스케일링을 해주지 않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은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하고 있는 ‘의료기관 HIV감염인 상담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19개 종합병원에 포함되고, 국립경찰병원은 질병관리본부가 S요양병원에 있던 에이즈환자들을 전원시킨 곳이다. 이곳에서조차 진료거부를 하니 다른 병원들 상황이 어떻겠는가? 그나마 국립·시립 병원인 국립경찰병원과 보라매병원은 서울시와 안전행정부가 관리·감독기관이기 때문에 질의를 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 모든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복지부는 ‘의료법 14조(진료거부 금지)’를 위반하면 안 된다는 원칙적인 안내만 할 뿐이었다. 경험상 이 조항은 환자에게 무용지물이다.

한국은 1, 2, 3차 의료전달체계를 갖고 있고, 급성기-장기요양 치료가 구분이 되어있지만 이는 에이즈환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에이즈환자가 마음 편히 1차 의료기관(동네병원 등)을 이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다 보니 HIV감염인은 질병의 경중이나 급성기-장기요양 치료의 구분 없이 종합병원 진료에 의존하고 있고, 국립중앙의료원이 마지막 보루이다. 천몇백명의 HIV감염인이 국립중앙의료원에 몰리는 또 다른 이유는 저렴한 진료비 때문이다. 다른 종합병원에 비해 싸다.

설움 받는 환자는 에이즈환자만이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에는 저소득층 만성질환자들이 많이 다니고 있고, 홈리스도 있다. 거리, 시설, 쪽방 등지에서 살아가던 홈리스는 ‘노숙인 1종 의료 급여’ 또는 지자체 의료지원이 가능한데, 오직 복지부와 지자체가 정한 의료시설(절대 다수가 공공병원)만을 이용할 수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역시 지정 의료시설 중 하나이다. 급작스레 병원을 비우면서 일부 홈리스들은 타 병원 전원을 거부당하거나 아예 거리로 내쫓기는 일이 발생했다. 더욱이 노숙인 복지 기관으로의 연계조차 안 된 경우도 있어 퇴원 당한 홈리스들이 어디에서 질병과 설움에 고통당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홈리스에게 스스로 전원 갈 병원을 알아보라며 퇴원을 종용하거나 적극적 전원 대책을 펴지 않았고, 복지부는 문제없다고 말하고, 서울시는 뒤늦게 상황파악 중이기 때문이다. 6월 10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서울시는 “국립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노숙인 환자 16명 중 5명은 다른 병원에 입원했지만 11명은 퇴원했다. 퇴원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현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에이즈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국가직영 요양병원 설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전염병전문병원? 에이즈전문병원?

여하튼 갈 곳 없는 에이즈환자들은 정부정책에 따라 또 옮겨졌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옮겨진 종합병원에서 장기입원이 안되니 퇴원하라고 하면 S요양병원 사건부터 지금까지 방치된 에이즈환자들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고 더 있게 해달라고 애원할 일이 생길지? 옮겨진 종합병원에서 에이즈환자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줄지? 종합병원 입원비가 부담되어 퇴원하는 환자가 또 생기면 어떻게 할지?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이들은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돌아오는 것인지?

이 에이즈환자들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직영’요양병원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국가직영’을 요구하는 1차적인 이유는 에이즈환자 집단 전체가 요양병원 전체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에이즈환자 외에도 홈리스, 무연고자, 희귀난치성질환자, 만성감염병환자, 합병증이 많은 환자 등 요양병원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있는데 누구든지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필요하다. 70여 개의 시도립, 시군구립 요양병원이 있지만 민간위탁운영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관리·감독 밖에 있다. ‘국가직영’요양병원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제대로 된 요양병원’을 만들어서 표준모델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지역별로 메르스 대응을 할 공공병원이 충분치 않자 급기야 국립중앙의료원을 통째로 비워야하는 한국의 의료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전염병전문병원’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신종 전염병은 계속 될 것이고 이를 전문적으로 대처하자는 의미일 테다. 하지만 30여 년에 걸친 HIV감염인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병원과 병상이 넘쳐난다. 요양병원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병원들 중 공공병원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극히 낮다. 1300개가 넘는 요양병원들이 모두 에이즈환자들을 거부하자 복지부는 진료수가를 인상하여 입원을 유도하려했다. 그러자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는 “감염병 관리기관으로 지정받은 병원 및 종합병원에서 입원진료를 받거나 결핵병원과 같이 별도로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에이즈 전문병원 등”을 만들어서 국가가 책임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에이즈환자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이들 중에도 “에이즈전문병원이라도 만들어서” 건강권을 보장해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을 “전문”병원에 가두는 것은 “프로페셔널”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격리”를 시키는 것이다. 이는 특정 환자에 대한 낙인을 고착화시킨다. 또 이들을 배제하는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덮는 것이다. 국민 누구도 현재의 에이즈환자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 지역별로 공공병원을 늘리고,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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