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게이트에서, 김수행을 보내며

[기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은 누가 들려줄 것인가

마르크스가 잠들어 있는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원래 이런 곳에 오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지만, 오늘은 좀 각별하다. 때마침 찾은 런던, 그 중에서도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김수행을 추념하기에 제격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무덤을 처음 본 것은 비봉출판사 판 '자본론'을 통해서였다. 3권이었을 것이다. 옮긴이인 고 김수행 선생께서 무덤 앞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부록으로 있었다. 저 고색창연하고 그야말로 엄숙한 흑백의 궁서체만이 어울릴 듯한 마르크스의 거대한 두상이 얹힌 그 무덤이 천연색 이미지로 내 시각을 강타했을 때의 생경함이 지금도 나를 움찔하게 만든다. 더구나 비봉판 '자본론'은 컬러사진이랑은 도무지 어울리지를 않는다. 이 책을 구경이라도 해본 사람은 이게 무슨 뜻인지 짐작하리라.

‘WORKERS OF ALL LANDS, UNITE’. 역시 같은 사진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공산당 선언'의 저 유명한 문구가 금빛으로 각인된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을 땐, 왠지 모를 난처함마저 느껴졌다. 그 앞에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김수행, 그걸 보는 나의 불안함. 내가 그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다음, 아니, 분명 1996년 말 ‘노동법 개악’도 있고 난 뒤였다. 오늘날 한국 노동인구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정리해고로 죄없는 사람들을 영세 자영업자로 내모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바로 그 ‘사건’ 말이다. 노동자가, 그것도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한다고? 스무살 대학생이 봐도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는 노동이 지나치게 단결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노동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노조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이 땅에서. 헷갈린다.

나는 김수행의 권유와 배려로 영국 런던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마르크스의 기일을 맞아 함께 고생하던 친구들 몇과 그의 무덤을 찾았었다. 아마 2009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이 친구들과 함께 영어공부도 할 겸 영어판 '자본론'을 읽는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엔 마르크스의 '마' 자도 모르는 이도 있었다. 마르크스의 기일은 참 기억하기 쉽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 이때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같은 날 런던의 대학가 블룸즈버리에서 지젝(Slavoj Zizek) 등의 주도로 ‘공산주의 개념에 관하여(On the Idea of Communism)’라는 학술행사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공산주의 ‘개념’이라니!

마르크스는 언제나 공산주의를 ‘실천’의 문제로 여겼는데, 그의 기일에 연다는 행사가 공산주의 ‘개념’에 대한 검토라고? 하긴, 우리 돈으로 20만 원(100파운드) 가까운 액수의 입장료를 받는 행사가 공산주의 ‘실천’에 대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나 하고 아침에 이곳엘 잠깐 들렀다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선하다.

그로부터 6년 반. ‘21세기 세계대공황’의 그늘이 걷히기는커녕 점점 짙어져서일까? 마르크스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러나 말없는 무덤만 바라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진 않겠지. '자본론'을 읽어야 한다, 거리로 나와야 한다. 사실 이것은 김수행이 늘 하던 얘기였다. 가만 보니 그의 이웃도 늘었다. 마르크스의 묘 주변엔 전세계 각지의 마르크스주의 운동가들의 무덤이 즐비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유물론자가 굳이 여기에 묻혀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개운치만은 않다. 주욱 둘러보는데, 어라, 많이 보던 이름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ERIC HOBSBAWM, HISTORIAN, 1917-2012’. 1849년 런던으로 망명한 마르크스는 몇몇 곳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북런던 함스테드 지역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을 때까지 거기 살았다. 에릭 홉스봄은 바로 그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다가 2012년에 생을 마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다. 이 동네에 살았으니 여기 묻히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안도감-‘우리의 홉스봄은 그렇지 않아!’라는(?)-을 준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마르크스, 홉스봄, 김수행과 한 자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 마르크스주의자 아닌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준비해온 와인을 깐다.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선 아무 데서나 술을 마셨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술을 마시는 것뿐 아니라 표나게 가지고 다녀서도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비닐봉지를 주둥이까지 두른 채로 와인을 홀짝인다. 나는 김수행으로부터 홉스봄 얘길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문득, 영국의 홉스봄과 한국의 김수행, 통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말 이후 오직 패배만을 경험했으면서도 엄청난 낙관주의를 발휘해 팔순의 나이에 손주를 위해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를 쓴 홉스봄, 그리고 수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우리 젊은 친구들에겐 '곰돌이 할아버지'로 이름난 김수행.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데 진력하다가 행복하게 생을 마감한 두 사람을 어찌 다르다 하겠는가. 이제 그 일을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어려워도 우리는 끝내 제2, 제3의 김수행을 발굴해내고, 또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고 그에게 사회적 기대를 집중시키는 것은 더 이상 바람직한 방식이 아닐 테다. 변화된 상황, 역사적/기술적 발전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

와인을 가져온 것은 그것이 여기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오래 공부한 김수행이 와인을 좋아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김수행과 술을 마신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와의 술자리는 단순히 사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강의나 세미나의 뒤풀이로서, 학습의 연장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강의보다 그 뒤의 술자리를 더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그는 술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 자신의 강의에 대한 소감이나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기를 즐겼다.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 마르크스와 홉스봄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으리라.

나도 그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가 너무 그립다. 자본 간 경쟁을 통한 평균이윤의 형성에 관하여, 현대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하여, 금융의 역할과 의의에 관하여, 그와 함께 나누고픈 크고 작은 질문들과 토론거리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쟁여두고 있었는데, 적당할 때 그와 하나하나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문득 십 몇 년 전 대학원 수업 뒤 서울 봉천동에서 술에 잔뜩 취한 그를 댁까지 모셔드린 일이 생각난다.

그날따라 유난히 취해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고서 가다가 끝내 우리는 산본에 있는 그의 아파트 근처 잔디밭에 함께 널부러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소리내 웃었다. 그의 웃음이 너무도 그립다. 그와 함께 웃고 싶다. 취기가 오름과 함께 가슴도 울렁거린다. 아직 더 흘릴 눈물이 남았는가.

김수행이 번역한 '자본론'을 통해 경제학과 마르크스를 알았고, 심지어 마르크스의 무덤도 알았다. 단언컨대 이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언젠가 꼭 그와 함께 이곳에 오고 싶었다. 그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그가 살면서 그토록 애정했던 마르크스 앞에 가슴 뿌듯하게 내놓을 수 있는 제자가 되고 싶었다.


김수행. 그는 마르크스의 무덤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제고 꼭 그와 함께 이곳에 와서, 그 사진 속의 선생님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가 떠난 지금, 이 질문들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국가의 경제적 역할과 금융의 의의 변화에 대한 토론을 누구와 해야 할까? 조세, 비정규직, 청년실업, 여성노동, 생태위기, 제국주의,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과 그 위기,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역할 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에 대한 지혜를 누구한테서 구해야 할까? 이제 (그가 즐겨쓰던 표현으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은 누가 들려줄 것인가?

저 멀리서 그가 쉰 목소리로 응답하는 것 같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친구야. 이제 당신들끼리 잘 해보라꼬. 건투!’

잘 가세요 선생님. 곧 다시 만나요. 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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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투

    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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