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말의 시대

주류 경제학은 국내 불평등과 국가 간 경쟁을 설명하지 못한다

로스앤젤레스 항구, 출처: 원문 페이지

최근 공개된 훌륭한 아티클 「전쟁과 국제정치」(War and International Politics)에서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현재 다극체제 세계에 적용되는 현실주의 국제 관계 이론을 간결하게 정리했다그는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국제 시스템의 구조에서 찾았다국제 체계는 무정부 상태이며국내 정치에서 국가가 가지는 권력 독점을 누리는 단일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그래서 규칙을 강제할 주체도 없다그는 전쟁이 끝나고 강대국 정치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던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순진함을 비판했다.(비슷한 순진함은 칼 폴라니(Karl Polanyi)도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조롱했다.미어샤이머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배경으로많은 자유주의 사상가가 역사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꿈을 품을 수 있었던 유일 초강대국 시기에 지적 성숙을 경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미어샤이머는 경제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을 덧붙였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가 근본적으로 협조적인 시스템이라고 가정하고 그 안에서 경제적 경쟁을 촉진하는 데 집중한다왜냐하면 이들은 무정부 상태의 국제 체계 속에서전쟁이 항상 가능한 현실 속에서 국가들이 생존을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해 거의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그 결과 안보 경쟁세력 균형과 같은 개념은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데는 필수적이지만 기존 경제학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게다가 경제학자들은 국가의 상대적 이익이 아닌 절대적 이익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세력 균형 자체를 무시하게 된다.”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국제 경제 관계를 의미 있게 논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때로는 측은할 정도로미국 지도부에게 경제학 입문 101’을 가르치려는 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그러나 정작 트럼프 행정부 1기와 2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모두가 추진한 정책은 미국 소비자나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중국의 부상을 늦추고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현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 무능은 극단적으로 환원적인 방법론에서 비롯되었다한 개인의 복지는 그 사람의 절대 소득에만 의존한다는 가정이다이런 전제 아래에서는 왜 어떤 나라(이 경우 미국)가 자국 시민의 복지를 줄이면서까지 관세 전쟁과 기타 수단을 통해 세계 전체(중국과 제3국 포함)의 복지를 함께 줄이려 드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주류 경제학자가 보기엔 손해만 발생하는 마이너스섬 정책심지어 의도적으로 둘 다 망하게 하려는’ 루즈-루즈 정책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그것이 말이 된다단순주의적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왜냐하면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론은 상대성 개념을 고려하지 못하는 결함 있고 낡은 도구이기 때문이다우리는 개인으로서더 나아가 국가와 엘리트 집단으로서타인보다 더 부유하거나 강하다는 사실에서 쾌감과 효용을 느낀다만약 경제학자들이 효용 함수에 상대성을 하나의 항으로 추가했다면즉 개인의 소득이 타인보다 얼마나 높은가국가의 부가 타국보다 얼마나 많은가를 고려했다면그들은 훨씬 의미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대신 그들은 사소한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었다권력이란 단순히 내 복지가 좋은 게 아니라너보다 내 복지가 더 좋은 것을 의미한다내 절대 소득이 과거보다 낮아졌더라도너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면(그리고 그 격차가 내게 유리하다면), 나는 그 상황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정확히 그런 루즈-루즈 정책을 펼치고 있다미국 정치 엘리트의 시각에서 국가 안보중국에 부과한 비용(성장률 둔화기술 개발 지연 등)이 미국이 감수한 비용보다 더 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최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스티븐 G. 브룩스(Stephen G. Brooks)와 벤 A. 배이글(Ben A. Vagle)의 글에 따르면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실시한 여러 시나리오 분석에서 거의 모든 경우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결론을 중국의 한 싱크탱크도 내렸다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보도(「트럼프 vs. 중국의 재대결에 베이징이 대비 중」, 2024년 5월 2일 자, 8)에 따르면중국의 GDP 손실은 미국보다 세 배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이런 정책이 실제로 그런 결과를 낳을지는 의문이다그래서 진지한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의 논의는 이 루즈-루즈 정책이 미국의 상대적 위치를 개선할지아니면 악화시킬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예를 들어미국이 중국으로 가는 첨단 기술 이전 통로를 차단하려 한 시도가 오히려 중국이 자국 내 기술 개발에 더 집중하게 했고그 결과 미국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기술 격차가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더 빨리 좁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또한 압박을 받은 중국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거나내수를 더욱 진지하게 확대하려 들 수도 있다이런 주제들은 정당하고 의미 있는 논의 대상이다그러나 그 출발점은 루즈-루즈 정책이라는 사실 자체여야 한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외부적 관점에서 보거나혹은 대중에게 내세우는 정책 목표(“미국 노동자의 위치 개선”, “미국으로 일자리 되찾기”)로 평가했을 때 성과를 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정책의 진짜 목적이 미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익과 무관하며오히려 그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중국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이 목표라고는 말하지 않는다대신 일부 미국 유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결과적으로논평가들은 정책의 진짜 목표가 아닌엉뚱한 부분을 비판하고 있다그래서 그들의 비판은 어설퍼 보인다이들은 초보적인 경제학 수업을 가르치듯 정부를 질책하면서 지배 엘리트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려 한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들 자신의 방법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드러내는 꼴이 된다.

이런 극단적 환원주의 접근은 신자유주의 경제학만의 문제가 아니다미어샤이머가 지적한 경제학의 한계에 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그것이 주류 경제학이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문제의 핵심은 같다개인의 효용 함수에 유일한 요소가 소득 수준’ 하나뿐이며상대적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하면, ‘불평등이라는 문제는 경제학의 주요 주제가 될 수 없다불평등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주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불평등을 본문이 아닌 각주나 부록에서 다루었다여기에 더해 경제학이 사회 계급의 존재마저 무시하면 불평등은 이중으로 소외된다나는 『불평등의 비전들』(Visions of Inequality) 7장에서 이것이 단순한 예외 현상이 아니라 주류 경제학 방법론에 깊이 뿌리박힌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했다주류 경제학이 인간 본성을 환원적으로 바라보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불평등이나 국제 경제에서 강대국 간의 갈등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거의 아무런 의미 있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출처] Nothing (meaningful) to say - by Branko Milanovic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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