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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보RSS" : [참세상] &amp; [인권오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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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인권오름이 함께하는 진보 RS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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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2-02-04T20:22+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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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보RSS" : [참세상] &amp; [인권오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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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9번 희망 뚜벅이 ‘유아’를 만나세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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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재능교육에서 쌍용자동차까지 지름길을 피해 이리저리 둘러 걸어다니는 희망 뚜벅이들에게는 고유번호가 있다. 희망 뚜벅이에 참여하면 꽃분홍 몸자보와 함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버튼을 받는다. 버튼에는 뚜벅이의 고유번호가 주어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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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뚜벅이 69번은 문화연대 활동가 신유아다. 신유아를 만나려면 절망의 눈물이 가득한 곳을 찾아가면 된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현장, 노동자가 쫓겨난 일터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신유아를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그는 무대 위에 서지 않는다. 늘 무대 뒤편에서 출연자를 챙기고 행사에 필요한 이러저러한 비품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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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idth:550;float:center;padding:10px;" align='center' ><TABLE style="border:1px #999 soli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TR><TD width="100%"><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4/54558/s1.jpg" width="550" height="367" class=ARTICLE_PHOTO></TD></TR><TR><TD width="550"><div style="padding:3px 3px 0 3px;font-size:12px; letter-spacing:-0.05em;font-family:'돋움', Dotum ;color:#fff;text-align: justify;line-height:150%; color:#fff;background-color:#999;border:1px #999 solid;"><!--▲&nbsp;&nbsp;-->  [출처: 오도엽]</div></TD></TR></TABLE></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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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희망버스의 시즌2인 희망 발걸음에도 신유아의 땀이 가득하다. 희망 뚜벅이 여섯째 날, 신유아가 바빠졌다. 저녁 행사로 예정되었던 불교계 주최 법회가 갑작스레 취소가 되었다. 긴급히 문화제를 준비해야 했다. 문화제까지 남은 시간은 채 다섯 시간이 안 된다. 뚜벅이들과 행진하는 신유아의 전화기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문화제에 함께 할 가수들에게 전화를 걸지만 일정이 비어있는 이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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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아가 꽃분홍 희망 뚜벅이를 입고 방송차 바로 뒤에서 걷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가시고 기운이 넘친다. 그의 발바닥은 땅에 닿지 않고 살풋살풋 떠다니는 것 같다. 어깨는 항상 들썩들썩 어깨춤을 춘다. <br>
<br>
희망 뚜벅이에는 이처럼 다양한 이들이 모여서 걸어간다. ‘삼순이 아빠’로 알려진 탤런트 맹봉학은 응원단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촬영 스케줄이 없으면 여지없이 뚜벅이와 함께 걷고 먹고 잔다. 시민들이 지나갈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나팔을 만들어“시민 여러분! 잠시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하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고 선전 작업을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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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은 쉼 없이 트위터를 통해 희망 뚜벅이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기타를 매고 달려온 가수 박준, 이씬이 있고, 몸짓패 ‘들꽃’도 있다. 희망 뚜벅이의 행진은 집회나 시위라기보다는 잔치판과 같다. 처음 온 이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열 걸음만 걸으면 ‘동지’가 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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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idth:550;float:center;padding:10px;" align='center' ><TABLE style="border:1px #999 soli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TR><TD width="100%"><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4/54558/s3.jpg" width="550" height="367" class=ARTICLE_PHOTO></TD></TR><TR><TD width="550"><div style="padding:3px 3px 0 3px;font-size:12px; letter-spacing:-0.05em;font-family:'돋움', Dotum ;color:#fff;text-align: justify;line-height:150%; color:#fff;background-color:#999;border:1px #999 solid;"><!--▲&nbsp;&nbsp;-->  [출처: 오도엽]</div></TD></TR></TABLE></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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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날 출발은 부평의 대우자동차판매다. 부평역, 동수역, 간석오거리를 거쳐 인청시청 앞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간석오거리에서 함께 전국철거민연합 시민들과 함께 인천시청 앞에서 도화동 철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연 뒤 남동구청을 향해 갔다. 그곳에는 부당한 해고에 맞서서 저항하고 있는 ‘남동구 도시관리공단’ 노동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석 주째 투쟁을 하고 있단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는 가사가 적힌 종이를 펼친 채 팔뚝질을 한다. 이들이 투쟁가를 외우기 전에 일터에서 행복하게 일했으면 참, 좋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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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터미널까지 행진 한 뚜벅이들은 지하철 선전전을 하며 숙소인 대우자동차판매로 돌아가 문화제를 진행 중이다. 69번 신유아의 호출을 받고 달려온 ‘노동비보이’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박수와 함성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을 춤추게 한다. 맞다. 투쟁은 웃으며 신나게 하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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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idth:550;float:center;padding:10px;" align='center' ><TABLE style="border:1px #999 soli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TR><TD width="100%"><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4/54558/s2.jpg" width="550" height="367" class=ARTICLE_PHOTO></TD></TR><TR><TD width="550"><div style="padding:3px 3px 0 3px;font-size:12px; letter-spacing:-0.05em;font-family:'돋움', Dotum ;color:#fff;text-align: justify;line-height:150%; color:#fff;background-color:#999;border:1px #999 solid;"><!--▲&nbsp;&nbsp;-->  [출처: 오도엽]</div></TD></TR></TABLE></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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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이 정말 아프다. 다행히 내일은 행진 대신 콜트악기 부평공장에서 정월대보름 행사를 한다. 오후 4시에 열린다. 많은 이들이 달집을 태우며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대보름달을 보며 기원했으면 바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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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바깥에는 진보신당 밥차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br>

]]>
			</description>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기사게시판</category>
			<pubDate>2012-02-04T20:22:51+09:00</pubDate>
			<dc:subject>69번 희망 뚜벅이 ‘유아’를 만나세요</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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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2-02-04T20:22:5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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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정진우 만한 정치는 없다</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id=54557</link>
			<description>
<![CDATA[
55년 만에 몰아친 2월 한파라 했다. 유럽에선 200명의 노숙자가 얼어 죽었다. 3일 오전 부산구치소에서 본 희망버스 구속자,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정진우 동지는 여전히 잘 웃는다. 심기일전의 각오로 지난달 30일 머리를 새파랗게 밀었는데, “이렇게 큰 추위가 올 줄 알았으면, 안 깎을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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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는 책 <25일>에서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산1공장 점거투쟁을 기록했다. 박점규는 책머리에 솔직하게 “이 글은 편파적”이라고 고백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듣고 썼다.’고 고백한다. <br>
<br>
이 책 ‘23일차(12월 7일)’ 기록엔 지쳐가는 점거 노동자들의 긴장이 묻어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버렸고, 농성장이 무너져 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상수는 ‘아직 싸우겠다는 조합원이 존재하는 한 싸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상수는 때로는 나약했지만 때로는 강했다.”<br>
<br>
이런 상황에서 밖은 어떻게 돌아갔던가. 홍영표, 권영길, 조승수 의원, 김영대 국참당 최고위원 등 야4당 의원들은 교섭지원단을 꾸리고 이경훈 지부장, 이상수 지회장, 강호돈 대표이사를 만나 각 입장을 확인하고 중재안을 비정규직지회에 제시했다. <br>
<br>
박점규는 ‘야4당의 중재안’을 “한마디로 ‘선 농성해제 후 교섭’이었다”고 기록한다. 회사와 야4당, 정규직 노조를 믿고 농성을 풀고 내려가서 교섭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국회의원 면담이 끝난 뒤 기다렸다는 듯이 현대차 정규직지부는 농성장을 방문해 “국회의원들의 중재까지 거부하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br>
<br>
이쯤 되면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어차피 정치는 거간질이다. 노동자들 스스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판에 어떤 정당이 이를 자기 싸움으로 여기겠나. 울산공장에서 한솥밥을 먹는 정규직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박점규는 이를 두고 “어떤 활동가도 용기 있게 점거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지 않았고 어떤 현장조직도 1공장에 올라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이 투쟁에서 정규직은 연대의 대상이었을 뿐 투쟁의 주체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br>
<br>
2010년 12월, 현대차 사내하청 싸움은 7년이란 길고 험한 세월을 지나왔다. 현대기아차 그룹 본사가 있는 양재동에선 수년째 동희오토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이 이어졌다. 낯설고 외진 서울 땅 구석에서 매일 재벌그룹이 동원한 용역깡패들에게 둘러싸여 린치 당하기를 수십 번. 천막은커녕 바닥에 깔았던 스티로폼마저 자주 뜯겼다. 한 줌의 대학생과 처지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20여 명이 모여 매일 저녁, 공연 하나 없는 야간문화제를 이어갔다. 사회자는 원맨쇼로 1시간 넘게 버텨야 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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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idth:550;float:center;padding:10px;" align='center' ><TABLE style="border:1px #999 soli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TR><TD width="100%"><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3/54557/t1.jpg" width="550" height="363" class=ARTICLE_PHOTO></TD></TR><TR><TD width="550"><div style="padding:3px 3px 0 3px;font-size:12px; letter-spacing:-0.05em;font-family:'돋움', Dotum ;color:#fff;text-align: justify;line-height:150%; color:#fff;background-color:#999;border:1px #999 solid;"><!--▲&nbsp;&nbsp;--> <!-- [출처: ]--></div></TD></TR></TABLE></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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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재동 거리에서 본 정진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라 하기엔 얼굴이 너무 하얬다. 진보신당 비정규노동국장이란 명함이 어색했다. 불과 1m 앞에 있는 용역깡패와 전경버스를 비켜서서 진행하는 기자회견은 늘 아슬아슬했지만 마이크를 잡은 정진우는 한 번도 쫄지 않았다. 나는 정당인 정진우가 양복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를 마징거Z가 나온다는 으리으리한 국회에서 본 적도 없다. 늘 거리에서 봤다.<br>
 <br>
정동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일상 속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던 정진우는 결국 희망버스에서 그 길을 찾았다. 차수를 거듭할수록 거점을 잡기 위해 부산 영도를 수십 번 돌았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부담도 컸지만 정진우는 늘 회의 때마다 넘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내놓은 회의 자료가 아무도 해독 못하는 난수표 수준이었던 게 흠이라면 흠일까. <br>
<br>
<미디어오늘>은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던 그를 인터뷰 하면서 “샛노랗게 염색한 스포츠 머리에 중절모를 삐딱하게 쓴 그 또한 희망버스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간 희망을 찾아다니는 듯 보였다”고 쓴 다음 중절모를 쓴 사진까지 실었다. 말도 안 되는 기사였지만 우린 웃을 수밖에 없었다. <br>
<br>
나이 마흔이 넘어 안경이 깨지고 팔이 비틀린 채 경찰에 잡혀가는 희망버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진보정당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갇힌 부산 주례동 부산구치소에서 60일밖에 남지 않은 총선과 진보신당의 앞길을 고뇌한다. 정보의 부족에 시달리는 그에게 “아무 생각 말고 쉬라”고 해보지만 소용없다. <br>
<br>
모두가 정치를 한다지만 정진우 만한 정치는 없다. 국민이 무엇에 갈증하는지를 중심에 놓고 움직이는 정진우는 우리 정치의 미래다. 사람들은 정진우와 송경동을 이상주의자라고 하겠지만 둘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싶었고, 그걸 몸으로 옮겼을 뿐이다.<br>

]]>
			</description>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기사게시판</category>
			<pubDate>2012-02-04T20:11:11+09:00</pubDate>
			<dc:subject>정진우 만한 정치는 없다</dc:subject>
			<dc:creator></dc:creator>
			<dc:date>2012-02-04T20:11:11+09:00</dc:date>
		</item>
		<item>
			<title>사랑은 형벌을 부른다</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id=54556</link>
			<description>
<![CDATA[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간의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병원에서 쓴 트윗 하나를 기억한다. “병원에서 연극치료를 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동작을 해보라 해서 팔을 활짝 벌려 흔들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을 해보라는데 ‘고맙습니다’하며 목이 메었습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 묻는데 ‘감옥에 있습니다’ 그 말을 미처 못 끝내고 울었습니다.”<br>
<br>
곽노현, 송경동, 정진우, 정봉주, 박정근까지. 최근 몇 달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로 감옥에 가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이 중 송경동, 정진우는 사람을 살린 이유로 감옥에 간 독특한 경우가 되었다. 동료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삶에 대한 기약 없이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과 그리고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희생하며 달려간 사람들이 전부 범죄자가 되었다. <br>
<br>
지난 1월 17일 송경동 시인과 박래군 활동가에 대한 첫 공판이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사가 읽은 공소장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희망버스라는 ‘불법 범죄행위’를 기획, 계획, 참가비를 받고, 주도했다는 것이다. <br>
<br>
홀로 싸우는 외로운 노동자를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한 것,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한 것, 담을 넘어 들어가 ‘사랑해요’라는 피켓을 든 것, 노래하고 춤춘 것, 크레인에 바람개비를 붙인 것, 팀을 짠 것, 기자회견을 한 것, ‘폭력경찰 물러나라’ 구호를 외친 것, 풍등을 날린 것, ‘너희는 고립되었다’라는 피켓을 들고 경찰청 앞에서 인간띠를 이은 것, 줄을 서서 CT85 모양으로 글자를 만들어 보인 것이 전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죄, 야간옥외집회금지법 위반, 건조물 침입죄 등을 차례로 지적했다. 마치 무시무시한 범죄행위를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계획한 것 같다. <br>
<br>
공판 중간에 두 피고인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송경동 시인은 ‘희망버스를 출발시킨 건 조남호 회장’이라며 부당한 정리해고로 사람들의 삶의 권리를 빼앗은 사회적 잘못을 지적했다. 이어서 경찰이 집회의 합법적 신고를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시위를 불법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지적했다. 그리고 “소수 기업인들의 무한 이익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조금 더 안전하고 평화로이 살 수 있기를...”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박래군 활동가는 자신이 희망버스에 계좌를 빌려준 것 외에 단순 참가밖에는 달리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송경동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 공판은 모두 진술, 두 사람의 발언과 변호사의 모두의견진술로 짧게 끝났다.<br>
 <br>
그리고 1월 31일 열린, 크레인 농성자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공판에서 검찰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혐의는 ‘업무방해와 회사 이미지 실추’이다. 혐의사실은 모두 인정되었다.(참고로 ‘피해자’인 한진중공업은 노사 합의 과정에서 김진숙에 대한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했다.) 김진숙 지도는 2003년 회사가 노동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아 협약을 어겨 두 사람이 죽음으로밖에 저항할 수 없었던 일, 또한 그간에도 노동자들이 해고로 자살을 택했던 일, 그리고 정리해고의 결과로 한 사업장에서 스무 명이 세상을 떠난 일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크레인 농성의 사유를 밝히는 최후진술을 하였다.<br>
<br>
결과가 어떻듯, 이 두 재판은 법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불법적인 범죄행위’는 김진숙으로 하여금 ‘고맙습니다’란 말을 수도 없이 하게 했고, 또 목이 메게 했을까. 어떻게 이 범죄행위는 막막한 생활 그리고 억울함에 우울증에 걸려 죽음까지 생각했던, 한 한진중공업 해고자의 아내가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되찾게 했을까. 결국 이 ‘범죄행위’는 삶에 대한 기약 없이 크레인 위에 오른 사람이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삶을 택하게 했고 결국 살아 내려오게 했다. 또한 열심히 일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 모두에게 힘이 없지만 해낼 수 있다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끔 했다. <br>
<br>
여기서 우리는 큰 수수께끼에 직면한다. 어째서 인권을 위해 뛰어다닌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옥에 갔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살리고자 한 사람들은 늘 탄압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법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을 가지고 감히 말하려 한다. 하나하나 짚어 가며 그 수수께끼를 풀어 보자. <br>
<br>
각자의 법은 그 법이 보호하는 가치들이 있다. 그 가치들은 때로는 상반되거나 상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법은 사람들이 밤에 조용히 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도 하고(야간시위금지), 차가 막히는 불편을 겪지 않게 해주기도 하고(일반교통방해죄), 사람의 개인 사유재산을 보호해주기도 한다(건조물 침입죄). 그리고 회사나 기업, 국가가 방해 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호해주기도 한다(업무방해죄). 물론, 이 업무의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br>
<br>
그리고 물론 인권이나 사람의 생명과 같은 큰 가치를 보호하는 법도 있다. 그것은 헌법이라고 한다. 사실 형법 재판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작은 가치를 보호하는 법을 가지고 큰 가치를 지키려 한 행위에 대해 얼마든지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의도와 결과가 선하다 해도 말이다. <br>
<br>
예를 들어, 어떤 집에서 누군가 부당한 폭력을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군가 살려 달라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사람을 구했다 한들, 그 사람은 기소 당하고 처벌받을 수 있다. 남의 집에 허락 없이 침입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적용되었던 ‘건조물 침입죄’다. <br>
<br>
사실상 법정은 피고인이 도덕적으로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단지 그 재판에서 검찰이 기소한 법률에 관해 판단하는 곳이다. 한 법대생의 말을 인용하면 재판이란 이렇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웬만해서는 검사를 이길 수 없다. 형사재판은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내용을 근거로 다투는 것이고 검사는 반드시 이길 만한 핵심증거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열 가지 증거 중 아홉 가지가 피고인에게 유리해도, 공소장의 쟁점을 만족시키는 검사의 증거 하나면 유죄 판결이 나기 때문이다.” 작은 법률들을 가지고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그래서 ‘아주 쉽다.<br>
<br>
결국 법정에서는 ‘불법’ 여부는 판가름해주어도 그들이 진정 옳은 일을 했는가, 아닌가는 판단해주지 않는 것이다. 판사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도덕적이었는가는 오히려 머리가 아닌 직관으로, 혹은 그저 현실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br>
<br>
이를테면, 부당한 일을 정당한 일처럼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싼 돈이 필요하다. 용역을 고용하는 데에도, 언론과 기자를 사는 일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직자들에 뒷돈을 대는 일에도. 그러나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아무 것도 갖지 않았다. 한진 조합원들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돈을 나누었고,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돈을 들여서 왔다. 사람들이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직관으로 알고, 마음으로 알기 때문이다. <br>
<br>
두 사람이 죽어야 겨우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었다는 현실, 그리고 어느 사업장에서 정리해고 결과로 스무 명이 죽어가도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 현실, 다시는 이와 똑같은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은 그냥 아는 것이지 법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br>
<br>
그리고 크레인과 그 아래 그곳에선 누구 하나 제 몸 챙기지 않고 같이 나누고 베풀고 갔다. 거기서 자기 이익을 위해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진숙은 죽은 동료가 목숨으로 지킨 협약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서, 다른 조합원들은 김진숙을 살려내기 위해서, 거기 있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조합원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위한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홀로 크레인 위에서 외롭게 싸우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서 갔다. 그래서 많은 돈으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한 푼 없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사랑이라고 한다.<br>
<br>
사랑이라는 이념을 좇은 사람들은 기소되었고, 혐의가 씌워지고, 감옥에 가고 법정에 섰다. 이들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권력은 늘 그렇게 해왔고 단지 역사만 처벌된 그들을 뒤늦게 높이 평가해왔을 뿐이다. 사랑이나 인권이라는 가치가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우리가 늘 놓치고 미끄러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다른 어떤 가치 때문이다. 그것은 경쟁과 승리다. <br>
<br>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버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싶어 하고, 기업이 확장되고 발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더 계급이 나누어지고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정당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복하자 하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은 대부분이 경쟁으로 인한 승리를 무엇보다 신봉하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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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은 경쟁과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모든 사람을 다 품자 하고, 가진 사람은 나누자 하고, 다친 사람은 품고 보듬고 함께 가자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경쟁과 취득과 소유를 방해한다. 계급을 깨고 더 가진 사람이 더 누려야 하는 그 시스템을 뒤흔든다. 따라서 사랑을 외치는 자는 형벌을 받는다. 인류역사상 가장 슬프게 처형당한 그 성자가 바로 그랬지 않는가.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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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법정에서 명시된, 업무 방해죄와 건조물 침입죄 모두 시장 경쟁 시스템과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우선시된다. 만약 그렇게 사람들이 절박하게 생존을, 인권을 위해 ‘업무방해’를 하고 ‘건조물 침입’을 하거나 ‘교통방해’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금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꼭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나 재판이 지금처럼 현 시스템이 가진 가치를 보호하려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99%의 국민의 인권,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 수호하는 가치다.<br>
<br>
때론 법적인 판단으로는 선하고 옳은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법이 경쟁 시스템만의 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조항, 헌법이 있다. 다음의 조항을 살펴보자.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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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6699>헌법 제 21조 <br>
1항 –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br>
2항 –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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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조<br>
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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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조 <br>
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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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조 <br>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br>
<br>
제 119조 <br>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font><br>
<br>
헌법은 경쟁사회가 미덕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민주국가라고는 명시해도 자본주의 국가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다. 중소기업과 농어민과 사회적 약자는 보호해도 대기업과 재벌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다. <br>
<br>
헌법은 다른 모든 법들의 기준이 되는 법이다. 헌법이 다른 법률들보다 상위에 위치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헌법이 잘 지켜지면 다른 법률을 어길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이 보장되고, 고용이 안정적이고, 정치가 국민의 뜻을 잘 따르고, 누구도 억울하지 않다면 사람들이 시위하러 거리로 나설 일이 없다. 밤에 자는 사람을 방해하거나, 교통을 방해하거나, 기물 점거나 건조물 침입을 할 일도 없다. 누군가 억울하게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다면 그를 도우러 남의 집 담을 넘을 일도 없다는 이야기다. <br>
<br>
위의 사유로 감옥에 간 사람들은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헌법의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이다. 이 점이 법정에서 부디 분명해지길 바란다. 더는 경쟁 시스템의 폐해로 인해 스무 명이 죽음을 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사람을 살릴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억울하다 말할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감히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를 품고 사랑할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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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법정에 말한다. 헌법을 지키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라.<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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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기사게시판</category>
			<pubDate>2012-02-04T20:06:06+09:00</pubDate>
			<dc:subject>사랑은 형벌을 부른다</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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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2-02-04T20:06:0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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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동조합을 지키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세종호텔 노조</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id=54555</link>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4/1328353012/w0.jpg' />세종호텔은 세종대 재단 소유의 수익사업체입니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사업에 일익을 담당해 온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지난해 9월부터 ‘부당전보 철회와 구조조정 저지, 민주노조 사수, 비정규직 정규직화, 외주화 반대’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br>
<br>
지난 1월 2일 세종호텔노동조합(이하 세종노조)은 노동조합(1975년 2월 설립) 역사상 처음으로 전면파업에 돌입해 호텔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하며 굳건히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br>
<br>
세종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탄압으로 일관하는 배후에는 세종대 재단으로 복귀하려는 부패비리 사학의 전형인 주명건 전 이사장이 있습니다. 주명건은 교비로 부동산 투기, 공사비 과다 산정, 교수채용 부정 등 2004년 교육부 감사를 통해 113억의 회계부정과 158건의 잘못을 지적받고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최초 제안자이며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약한 주명건을 재단에 복귀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br>
<br>
2009년 7월 세종호텔 회장으로 취임한 주명건은 무려 네 차례나 부서통폐합과 조직개편 등을 강행하며 야금야금 구조조정을 밀어 붙여 왔습니다. 주명건 회장의 이런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맞서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저항하고, 비리재단 복귀를 반대해 온 우리 세종노조를 복수노조를 악용해 와해시키고 온갖 불법·부당한 탄압을 자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입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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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width:550;float:center;padding:10px;" align='center' ><TABLE style="border:1px #999 soli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TR><TD width="100%"><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1/54555/w1.jpg" width="550" height="413" class=ARTICLE_PHOTO></TD></TR><TR><TD width="550"><div style="padding:3px 3px 0 3px;font-size:12px; letter-spacing:-0.05em;font-family:'돋움', Dotum ;color:#fff;text-align: justify;line-height:150%; color:#fff;background-color:#999;border:1px #999 solid;"><!--▲&nbsp;&nbsp;--> <!-- [출처: ]--></div></TD></TR></TABLE></DIV>
<br>
회사는 알량한 인사권을 내세우며 세종노조 핵심간부와 조합원들을 부당 전보하고 탄압했습니다. 11년 동안 호텔 프런트에서 일해 온 임신 5개월의 여성 노조간부를 식당 서빙업무로 부당 전보하더니, 지난 9월에는 노조 부위원장 등 조합원 4명을 또 다시 부당 전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0여 년간 교환업무를 담당해 왔던 여성 노조간부는 회사의 탄압에 못 이겨 회사를 떠나는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br>
<br>
이뿐만 아니라 회사는 2010년 단체협약을 통해 우리 세종노조와 합의한 ‘적정인원 충원’과 ‘1년 이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1년 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일방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높여 이로 인해 퇴사가 늘어났는데도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어깨 인대가 찢어지고 무릎에 물이 차는 등 환자가 속출할 정도로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br>
<br>
또한 1년 이상 근속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는 우리 세종노조와의 단체협약을 깡그리 무시한 채, 3년을 일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내린 비정규직 차별처우 판정의 책임마저도 세종호텔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까지 했습니다. 회사는 어떻게 해서든 정규직 전환을 회피해 일용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양산해 자신들의 호주머니만 채우려는 것입니다.<br>
<br>
급기야 회사는 지난해 7월 복수노조 시행을 악용해 친 사용자노조(세종연합노동조합) 설립을 사주하고,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사주를 받은 많은 상급자들이 부서 내의 직위를 이용해 하급 직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해 세종노조를 탈퇴시키고 세종연합노동조합 가입을 종용했습니다. 세종노조는 210명의 조합원에서 불과 70명의 조합원만이 남은 상황입니다.<br>
<br>
최근에는 회사가 일련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와해시키려했던 음모가 드러났습니다. 주명건 회장 등 경영진이 세종호텔을 사유화하고 직원들을 용역화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주)세종서비스’라는 자본금 1억짜리 용역회사를 설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br>
<br>
‘(주)세종서비스’는 객실과 식음료 영업장뿐 아니라 주차장, 룸메이드, 직원식당, 시설관리 등 세종호텔 전 부문을 ‘용역화’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특급호텔들이 기업주의 탐욕을 위해 외주화하거나 용역으로 전환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직원들을 내몰아 왔습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 세종호텔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유화 음모는 지난 2003년에도 추진되었다가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 중단된 전력도 있었습니다.<br>
<br>
우리 세종노조는 회사의 탄압에 맞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빼앗긴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권익과 노동조건 후퇴를 만회하고 민주노조의 전통을 지켜낼 것입니다. 세종노조의 투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세종호텔 노동자 모두를 위한 투쟁입니다. 비록 소수노조라는 한계는 있지만 더욱 단호한 투쟁을 통해 세종노조 조합원뿐 아니라 세종호텔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지켜낼 것입니다. 아무리 탄압이 거셀지라도 우리 세종노조는 굳건히 싸울 것입니다.<br>
<br>
민주 시민 여러분! 회사의 탄압과 횡포, 불의에 맞서 싸우는 세종노조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십시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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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기사게시판</category>
			<pubDate>2012-02-04T19:56:52+09:00</pubDate>
			<dc:subject>노동조합을 지키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세종호텔 노조</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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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2-02-04T19:56:5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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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죽음을 넘어 희망텐트촌 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id=54554</link>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9/y0.bmp' />쌍용자동차는 1998년 1월에 쌍용그룹에서 대우그룹으로 매각되었으나,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채권단에 의해 워크아웃이 단행되었습니다. 2002년에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실시하여 기업이 정상화되는 듯했지만 2003년 11월 채권단에 의해 공개입찰이 공고됩니다. 결국 2004년 10월, 8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탕감과 구조조정,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매년 3000억 원의 이익을 내는 알짜기업이 된 쌍용자동차는 5900억 원이라는 헐값에 상하이자동차로 매각되었습니다. 당시 헐값 매각과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정부는 매각을 강행하고 맙니다.<br>
<br>
중국 국유기업인 상하이자동차는 2004년 장기투자와 고용안정을 약속하며 쌍용자동차를 인수했으나 전혀 투자도 하지 않고, 쌍용자동차의 기술 확보에만 혈안이었습니다. 상하이자동차가 기술유출과 구조조정에 전력하자 쌍용자동차의 경영 상태는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2009년 1월 9일 상하이자동차가 서울중앙지법에 쌍용자동차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 신청에 따라 상하이자동차의 경영권 행사가 중지되었습니다. <br>
<br>
<DIV style="width:550;float:center;padding:10px;" align='center' ><TABLE style="border:1px #999 soli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TR><TD width="100%"><IMG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0/54554/y1.bmp" width="550" height="365" class=ARTICLE_PHOTO></TD></TR><TR><TD width="550"><div style="padding:3px 3px 0 3px;font-size:12px; letter-spacing:-0.05em;font-family:'돋움', Dotum ;color:#fff;text-align: justify;line-height:150%; color:#fff;background-color:#999;border:1px #999 solid;"><!--▲&nbsp;&nbsp;--> <!-- [출처: ]--></div></TD></TR></TABLE></DIV>
<br>
그 이후 쌍용자동차는 2009년 5월 8일 정리해고를 단행합니다. 노동조합은 이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서 77일간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산자와 죽은 자로 나뉘고 끝까지 함께하기를 바랐던 이들 중에서 떠나간 이들도 있으나, 공권력의 폭압에 맞서 77일간 공장을 지켰습니다. <br>
<br>
그러나 정리해고를 완전히 막지 못했습니다. 먼저 공장을 떠난 1700여명의 비정규직, 그리고 정규직 2,646명이 공장에서 밀려났습니다. 2009년 8월 6일 합의사항인 비정규직 19명에 대한 복직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무급휴직자의 복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가 가압류한 금액은 25억, 손해배상은 50억짜리 두 개, 경찰의 손해배상도 24억, 그리고 가압류도 7억 가까이 되며, 메리츠화재도 110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한 상태입니다. <br>
<br>
투쟁 이후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사망이 19명에 이르렀습니다. 뇌출혈, 심근경색, 자살로 인한 사망과 충격으로 인한 조합원 가족의 사망 등 계속 죽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농성에 참여한 조합원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br>
<br>
쌍용자동차는 이후 인도의 자동차회사인 마힌드라로 매각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시 마힌드라로의 매각이 결국 제2의 상하이자동차와 같은 상황을 낳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쌍용자동차를 팔아넘기는 데에 급급합니다.<br>
<br>
2010년 10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다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1000일 투쟁을 위한 재정마련을 위한 일일주점 ‘월동준비’를 시작했고, 비정규직 지회는 복직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며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소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죽음은 계속되었습니다. 20명 째의 죽음을 맞이하며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투쟁을 계획하고, 결국 공장 앞에 다시 섰습니다. <br>
<br>
12월 추운 겨울날 공장 앞에 희망텐트촌이 차려졌습니다. 그리고 12월 23일 1차 쌍용자동차 공장 포위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다시 1월 13일 2차 포위의 날이 열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다시 3차 포위의 날을 기다리고 준비합니다. 더 이상 죽지 않고,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반드시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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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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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사게시판</category>
			<pubDate>2012-02-04T19:52:23+09:00</pubDate>
			<dc:subject>죽음을 넘어 희망텐트촌 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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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2-02-04T19:52:2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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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상] 삼성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amp;id=192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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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삼성직업병 피해자인 한혜경 씨의 목소리를 통해 삼성문제를 알리고자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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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영상 속보 뉴스</category>
			<pubDate>2012-01-11T15:14:43+09:00</pubDate>
			<dc:subject>[영상] 삼성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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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2-01-11T15:14:4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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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상] 죽음의 공장 쌍용차를 희망으로 점거하자</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amp;id=1920</link>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12/list.jpg' />'쌍용차를 포위하라, 와락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23~24일 1000여 명이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 모였다. 거센 눈보라에도 모여든 이들의 연대의 힘은 쌍용차 공장 앞을 뜨겁게 달궜다. 2차와 3차를 거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쌍용차를 포위해 공장 밖의 그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희망텐트는 죽음의 공장 쌍용차를 희망으로 점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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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영상 속보 뉴스</category>
			<pubDate>2011-12-26T15:07:40+09:00</pubDate>
			<dc:subject>[영상] 죽음의 공장 쌍용차를 희망으로 점거하자</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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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1-12-26T15:07:40+09:00</dc:date>
		</item>
		<item>
			<title>[영상] 한미FTA 저지, 국회안에서 끌려가는 학생들</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amp;id=1919</link>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6/12.jpg' />2011년 10월 28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날 한미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가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국회 앞에서 열렸다.<br>
<br>
이날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한나라당에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시도를 중단하라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국회 진입 시도 과정에서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저지 했지만 상당수 참가자가 국회에 들어가 한미FTA 비준 저지를 외쳤다.<br>
<br>
특히 학생들은 경찰에 연행 되면서도 한나라당에게 한미FTA 비준을 중단하라며 격렬하게 저항했다.<br>
<br>

]]>
			</description>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영상 속보 뉴스</category>
			<pubDate>2011-10-28T19:18:45+09:00</pubDate>
			<dc:subject>[영상] 한미FTA 저지, 국회안에서 끌려가는 학생들</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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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1-10-28T19:18:45+09:00</dc:date>
		</item>
		<item>
			<title>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잠입하다</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amp;id=1918</link>
			<description>
<![CDATA[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강행되면서 구럼비 바위가 산산조각 나고 있다. <br>
<br>
영상촬영한 박성수(둥글이) 씨에 의하면 구럼비 바위에서 샘솟아 바다로 흐르던 용천수가 이젠 나오지 않고,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제주도민들이 물을 떠 기도했던 곳, 할망물도 고여버렸다. <br>
<br>
강정 주민 뿐만 아니라 평화운동가, 종교인, 문화재청과 야당까지 나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해군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br>
<br>

]]>
			</description>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영상 속보 뉴스</category>
			<pubDate>2011-09-26T17:26:19+09:00</pubDate>
			<dc:subject>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잠입하다</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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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2011-09-26T17:26:19+09:00</dc:date>
		</item>
		<item>
			<title>[추모 영상] 이소선, 짧은 여행의 기록</title>
			<link>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media_report&amp;id=1277</link>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wscham.net/data/media_report/1/12.jpg' />민주화 투사로, 한평생 노동자 민중의 벗으로 살아온 고 이소선 어머니를 추모하며, 지난 2007년 거제도 대우조선, 부산 한진중공업, 솥발산 열사묘역 등을 찾은 이소선 어머니의 짧은 여행 기록을 다시 상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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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category></category>
			<category>현장e야기</category>
			<pubDate>2011-09-03T23:50:27+09:00</pubDate>
			<dc:subject>[추모 영상] 이소선, 짧은 여행의 기록</dc:subject>
			<dc:creator></dc:creator>
			<dc:date>2011-09-03T23:50:27+09:00</dc:date>
		</item>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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