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위기의 진실

[미디어 관련법 진단](5) - 방송법

언론장악 5대 주역, ‘반언론, 반의회, 반민주’?

미디어행동은 홍준표, 고흥길, 정병국, 나경원, 진성호 등 한나라당 의원 5명을 ‘언론장악 5대 주역’으로 선정했다.

5대 주역은 △한나라당의 ‘언론장악 7대악법’을 총괄하는 정병국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장 △대표적 악법인 ‘방송법 개정안’과 ‘사이버모욕죄’ 등을 대표발의한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재벌과 특정 족벌신문사의 하수인과 다름없는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조선일보 출신으로 자신의 출신 수구족벌신문에게 방송을 선물하려는 진성호 한나라당 문방위 위원 △‘언론장악 7대 악법’ 등 ‘MB악법’의 날치기를 진두지휘하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이다.

미디어행동은 23일 오전 10시30분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호명하며 “한나라당의 반언론.반의회.반민주적 독주의 핵심 행동대원이며 주축”으로 규정했다.

미디어행동은 여기서 ‘반언론.반의회.반민주적 독주’라고 했는데, 수사적 표현이지만 엄밀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속을 잘 드러내기보다 포장해놨다는 느낌이 앞선다.

대의제 정치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은 국민의 대표가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심대하게 위반하지 않았는데 ‘반의회’라고 규정하면 온당할까.

거꾸로 보면 한나라당은 2004년 언론대책특위 때 만든 미디어 관련법을 여대야소 국면에서 관철하지 못했다가 대선,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제서야 실현을 눈앞에 두게 됐다. 공공성에 반하고 ‘산업’ 논리의 미디어정책을 밀어부친다고 해 그 자체가 ‘반의회’인 건 아니다.

가령 민주당이 17대 국회에서 비정규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단상을 막아섰지만 법안 통과를 ‘반의회’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대한민국 의회는 단지 노동자의 이해를 고려하기보다 비정규법안의 통과를 바라는 자본가의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했을 뿐이다.

‘5대 주역’에 대해 “한나라당의 반언론.반의회.반민주적 독주의 핵심 행동대원이며 주축” 대신 “한나라당의 친자본 언론 독주의 핵심 행동대원이며 주축”이라고 했다면 정확할 뿐아니라 훨씬 호소력이 있지 않았을까. 풀어쓰자면 ‘보수체제 유지와 이윤을 위해 미디어가 갖는 원초적 가치조차 시장에 내다놓는 5대 주역’ 정도.

방송법 개정안, 신문과 자본의 방송 소유 진입장벽 사실상 철폐

방송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나경원 의원은 입법 취지로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이 융합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국제적 시장개방 조류에 대응하여 우리 방송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디어산업 발전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핵심은 현행법의 1인 지분 소유 제한과 대기업, 신문.뉴스통신 및 외국자본의 종합편성 또는 보도전문 컨텐츠 사업에 대한 겸영 또는 주식.지분 소유금지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상파의 20%,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PP의 49%까지 신문과 자본의 방송사업 참여가 가능해진다. 종편.보도 PP의 20%까지는 외국자본의 진출도 가능하다. 이밖에 지배주주 1인 소유제한이 30%에서 49%로까지 상향되고,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매체에 대한 동일한 소유 제한 규정을 받게 된다. 방송심의 규정을 위반하면 제재조치에 과징금도 부과된다.

언론보도 기능의 대미 종속 심화, 정치보은 조중동 방송 탄생, 지역방송 궤멸

언론보도 기능의 대미 종속 심화, 정치보은 조중동 방송 탄생, 지역방송 궤멸.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방송법 개정안이 초래할 사태를 세 가지로 압축했다.

외국자본의 진출을 가장 치명적인 요소로 바라봤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외자에 종편.보도 PP 20% 허용은 사실상 한국의 언론보도 기능의 대미 종속 심화 영역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중앙, CJ와 폭스의 컨소시엄 구성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고, 소유 지분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여론이 미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계속해서 양문석 사무총장은 “아무리 뒤져봐도 ‘조중동TV 삼성방송’이라는 기본 컨셉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다”며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정치적 보은을 아주 열렬히 충실하게 진행하는 게 소유 규제 완화 법안”이라고 말했다.

지역과 지역방송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일차적 치명타가 지역.종교방송이 될 텐데, 지역방송은 사실상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론의 다양성과 한국 공공성의 핵심 하위 개념인 지역성 말살 위기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종편 채널 하나가 새로 등장하면, 지상파 방송의 광고매출액은 최소 16%에서 최대 37%까지 삭감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체 광고 매출액을 2조3천억 원 규모로 볼 때 2천3백억 원에서 7천억 원 사이, 어림 잡아 5천억 원의 손실이 생긴다고 치면, SBS를 제외한 지역 민방 10개의 연간 총예산에 맞먹는 액수다. 수도권 지상파는 경쟁력을 갖춰 비껴갈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방송은 구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게 된다.

방송법 개정 근거 두 가지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법을 추진하며 제시하는 근거는 크게 신방 겸영이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과 미디어그룹이 필요하다는 것 두 가지. 양문석 사무총장은 두 가지 모두 설득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OECD 국가 대부분의 나라들이 여론 독과점을 견제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며 “한국처럼 화끈하게 신방 겸영을 허용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미 종편.보도 PP를 제외하면 모든 영역이 다 풀린 상황. CJ나 조선, 중앙 등은 이미 자체 PP를 서너 개에서 많게는 열댓 개나 갖고 있다.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역량의 문제이지 현행 법제가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니라는 진단이다.

세계적 미디어그룹으로 폭스. CNN, 소니픽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그룹들은 보도와 영화에 집중하며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결정적인 것은 10억 명 규모의 영어권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중국어권을 17-19억 명, 아랍어권을 17억 명 규모로 본다면 한국어권은 7천만 명에 불과한데, 일단 언어적 측면에서 세계적 미디어그룹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영어로 할 거면 외국 가서 하지 왜 한국에서 열어주며 미디어그룹 운운하는지 기본적으로 논리적 모순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계속해서 “더군다나 종편.보도에 있어 보도가 핵심인데 이 영역을 열어서 미디어그룹을 탄생시킨다는 게 말이 되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대의제적 질서와 공영방송의 위기

‘언론장악 7대악법’에 ‘언론장악 5대 주역’을 호명하며, 미디어운동 주체들이 방송장악 저지에 일촉즉발 온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사수하려는 공영방송은 무엇이고, 그 공영방송의 가치란 무엇일까.

사회구성원의 미디어 참여의 권리 실현과 사회 진보의 열망에 비추어 볼 때 지금까지 공영방송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녹록치 않았다.

가령 황우석 사태 때 YTN 제작자들이 보여준 보도 태도는 조선일보를 뺨치는 수준이었다. 참여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할 때 KBS는 기계적 중립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시민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인 촛불 현장으로 달려가 생중계를 하거나 그 내용을 분석하고 보도하는 공영방송의 카메라는 없었다. 아주 특별한 계기, 몇몇 주체들만이 주어진 대의제적 질서를 뛰어넘는 의제에 접근하며 컨텐츠 생산에 임했을 뿐이다.

돌아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공영방송은 대의제적 질서의 발전,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하며 공론장의 기능을 해왔다. 공영방송의 주체들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확대 과정에 일방향적이고 계몽적인 방식으로 시민사회에 개입하며 사회 여론을 이끌어왔다. 그들은 방송사라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독점, 가공하는 위치를 유지했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가 부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가끔씩 방송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다고 천명하곤 하지만, 이는 대의제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주문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은 단 한 번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적이 없었다.

현실에서 공영방송은 권력과 자본과 끊임없이 관계 맺기를 강제 당한다. 낙하산이라 해서 시시때때 논란을 부르지만, 낙하산이 대의제적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언론장악 7대악법’이 제아무리 악법이라 해도 일단 의회에서 통과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실체적 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영방송은 권력으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자본의 직접적인 영향으로부터는 보호받아왔다. 그런 공영방송이 지금 자본의 이해를 대리하는 ‘5대 주역’의 공세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미디어 소유 재편은 상당한 이윤을 가져다주겠지만,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은 필시 그 이윤의 크기 이상으로 반비례하며 후퇴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 공영방송의 위기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고 말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이 정도로는 ‘반언론적, 반의회적, 반민주적’ 같은 수사적 표현이 진실을 심대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 혐의를 거둘 수 없다.

위기의 실체

공영방송이 대의제적 질서에서 벗어난다면, 벗어나는 순간 지금과 같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공영방송을 규정하는 잣대들, 즉 법적 위상이나 소유지배 구조, 재원 조달 방식, 공적 서비스 기능 등을 고려할 때, 체제와 질서를 뛰어넘는 방송으로의 탈바꿈 시도는 그 자체로 변혁의 성격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의제적 질서에 순응하는 대가로 얻어지는 안락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 비판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온 공영방송 주체들이 있다. 가령 ‘PD수첩’ 제작자들이나 광우병, GMO, NAFTA 등의 진실을 찾아 제작해온 주체들,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모순을 고발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달해온 주체들, 방송의 최소한의 독립성조차 정치적으로 장악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시도에 맞서 싸워온 주체들이 그들이다. ‘언론장악 7대악법’과 ‘5대 주역’의 일순위 표적이 된다는 것은 안타깝고 고단한 일이지만 기꺼운 면도 없지 않다.

차마 잊어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참여정부와 조중동과 YTN의 합작품이라 할 황우석 사태 보도가 그렇다. 공영방송이 시민사회의 이해의 품을 떠났을 때, 그 주체들이 진실을 알려내는 데 실패했을 때, 미디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혹한 퇴행의 길을 걷게 되는 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YTN 당사자들에 대한 양문석 사무총장의 평가는 관대했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대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쳤던, 그런 사안에 앞장섰던 부분에 대해 YTN은 냉혹하게 평가받아야 하지만, 올해 구본홍 낙하산 사장과 싸우는 과정에 구성원들의 자기 반성이 반영되어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황우석 보도 사례 뿐 아니라 지금까지 공영방송은 기본적으로 반노동자적, 반환경적이었고, 친자본적, 친정권적인 프레임 위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지난 시기 공영방송이 국가 사회적 의제를 던진 사례로 2002년 서해교전, 2005년 황우석 진실 보도, 2006-7년 광우병 진실 보도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조중동이 가진 의제설정능력, 인터넷이 가진 의제해석능력, 지상파가 가진 의제확산능력. 이같은 매체 간 긴장이 유지되는 가운데서도 공영방송이 앞의 세 가지 사례에서만큼은 획기적으로 의제설정을 해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조중동-인터넷-지상파의 의제에 대한 긴장 관계가 해체되면 어떻게 될까. ‘언론장악 7대악법’에 따라, 조중동과 지상파가 연합하고 인터넷이 통제되는 일정한 시점이 됐을 때, 공영방송 또는 사유화된 방송 공간에 재편된 주체들은 과연 어떤 컨텐츠 생산을 통해 어떤 국가 사회적 의제를 던질 수 있을까.

그러므로 위기는 정권의 방송장악과 자본의 방송 진출 그 자체, 공영방송의 사유화 재편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공영방송의 공공적 역할을 생각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며 컨텐츠를 생산해왔던 제작 주체들, 그리고 이들과 교감해온 인터넷 공간과 시민사회와 독립미디어 주체들의 실존... 이들 네트워크의 위기에 그 실체적 진실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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