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국가책임일자리’가 필요하다

[연속기고①] 국가책임일자리를 제안한다

구조적 위기 속에서 자력으로 살아남기를 강요받고 경쟁 논리에 매몰된 지금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않고, 무한경쟁의 궤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은 이제 일자리를 권리로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국가가 책임지고 양질의 일자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국가책임일자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때때로 심각하게 대두됐던 사회문제 중에 전혀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경우, 심각성을 잊어버린 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곤 하다. 한국사회에 이러한 현안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청년실업’은 유독 그 양상이 심각한 것 같다. 지난해엔 소위 ‘인국공 사태’를 기점으로 능력주의나 공정성 같은 단어들이 현 청년 세대를 표상하는 키워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실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경쟁의 수렁 속에 밀어 넣는 현재의 청년들이 능력주의의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해결 의지가 없어서일까? 정치권은 항상 청년실업 해소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시기와 부처를 가리지 않고 정부는 청년실업 해소 등을 골자로 한 각종 청년지원 정책들을 쏟아내고, 선거 때가 되면 각 정당의 수많은 청년 관련 공약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청년 중에 이런 넘쳐나는 정책과 공약에 진지하게 공감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정치권이 실효성 없는 정책들을 양산해낼 때마다 청년들은 경쟁을 통한 자기 생존의 법칙만 철저히 체득하고 신봉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것을 ‘공정성’이라고 부르든 ‘정치적 무관심’이라고 부르든 ‘보수화’라고 부르든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출처: 청와대]

요새 기성세대들이 청년세대를 개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기성세대의 청년세대 비판은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의 양상은 이전과 같은 단순한 ‘꼰대’적인 목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인국공과 의사파업에서 나타난 공정성의 화신으로서의 모습, 최근 보궐선거와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는 20대의 급격한 보수화 등이 그들의 우려 지점이라는 것에서 문제의식은 틀리지 않았고 적지 않은 청년들도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에 본질은 빠져있다. 즉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실업과 그에 수반한 경쟁체제에 관한 이야기는 빼놓고 세대에 대한 규탄만 남았을 뿐이다. 스펙 쌓기와 무한경쟁에 몰두하는 청년들이나 청년 정책들을 남발하는 정치권이나 청년세대를 비판하는 기성세대나 모두가 각자의 판단이나 행동이 있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인식 속에서 문제는 악화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최악의 고용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고용 관련 지표는 작성 이래 최악의 수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고, 가뜩이나 심각했던 청년실업은 기업의 신규채용 축소 등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고용 악화에 대한 대책으로 공공일자리 공급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저임금-비정규 일자리에 불과한 땜질 처방일 뿐이다. 오로지 단기적 수치만을 고려하기에 급급한 정부의 공공일자리 정책은 기존의 실효성 없는 실업 해소 정책을 반복하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공의 일자리에 대한 인식만 왜곡시키고 있다.

민간 영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 아래 막대한 공적자금이 민간자본에 투여되고 있지만, 일자리 190만 개라는 단순수치 외에 양질의 일자리 보장에 관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정작 그 내용은 데이터·에너지 자본 등 신산업 육성책으로 각종 규제 완화와 저임금 단기 일자리 창출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이 역시 청년실업 해소와는 무관한 자본을 위한 정책을 일자리 정책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고용 참사 속에서 청년들에게 필요한 요구는 무엇일까? 일부 청년층 사이에서는 일각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기본자산제 등이 고용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공감을 얻는 듯하다. 그러나 기본소득·기본자산제의 내용인 단순 생계보장, 시장 의존성과 탈노동적 성격은 고용 위기의 대안이 되기 힘들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울 위험군과 자살 생각을 경험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고용 급감과 관계의 단절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20·30대 여성과 학생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고용 감소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이 청년층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생계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탈노동 사회를 지향하는 생계소득 보장으로는 지금의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구조적 위기 속에서 자력으로 살아남기를 강요받고 경쟁 논리에 매몰된 지금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않고, 무한경쟁의 궤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은 이제 일자리를 권리로써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국가가 책임지고 양질의 일자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국가책임일자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일자리를 국가가 권리로 보장한다는 내용이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주장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미 정부가 일자리를 권리로써 보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대중적으로 이루어지고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현시기 대량실업의 해결은 더 이상 개인의 노력에 그 책임이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책임이 개인의 책임으로 치환되며 청년층의 사고에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 능력주의 담론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그 문제점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 기후위기, 돌봄·가사·의료산업 문제, 플랫폼노동을 비롯한 각종 불안정노동의 문제들은 청년과 일자리라는 범주와 무관하지 않다. 국가책임일자리를 통한 생태적 산업재편 및 생태일자리 사회화, 돌봄·가사·의료산업 사회화, 완전고용 및 불안정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질 때 코로나19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자리는 청년 개인의 능력이 아닌 자본의 책임을 통해 국가가 권리로써 보장해야 한다. 국가책임일자리가 실현될 때, 비로소 일하고 싶은 청년들의 목소리는 능력주의·공정성 등으로 점철된 가시 돋친 태도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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