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이 장악한 시골 땅, 식량 위기가 온다

[유하네 농담農談] 농부들이 살 수 없는 논과 밭

겨울이 선사한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봄

봄입니다. 설렙니다. 움찔움찔 땅이 움직입니다.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던 땅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연둣빛 풀들이 올라옵니다. 유하네도 움츠렸던 몸을 펴고 봄 햇살을 맞이합니다. 겨울이 선사한 하얀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올해는 대추나무밭 위쪽을 갈아 고추를 심고, 작년에 가을배추를 심었던 곳에 감자를 심자.” “지난해 만들어 놓은 언덕 위 두둑에는 블루베리 나무를 사다가 심고 그 뒤에는 산딸기를 심어보는 게 어때?” “좋아. 그럼 밭 안쪽 한편에는 표고버섯 종균을 심은 나무를 세우고 그 반대편은 달래밭을 만들자.” “집 앞 밭에는 검은콩, 아주까리 밤콩, 재팥, 흰팥을 심고 한쪽에는 청양고추를 심어보자.” “위쪽 대추나무밭에는 살구나무, 밤나무, 호두나무를 심고 밭 경계 언덕에는 두릅나무를 심자.” “대추나무 사이사이에는 참깨며 들깨를 심는 거야.” “옥수수는 어디에 심지?” “저기 언덕 개망초를 베고 거기에 옥수수를 심자.” “집 앞 밭에는 열무랑 총각무, 봄 무를 뿌리는 거야.” “당근은 감자 옆에 심고.” “5월에는 양파가 나가고, 6월에는 하지감자랑 마늘이 나가고, 7월에는 첫 번째 옥수수가 나가고, 8월에는 당근이 나가는 거야.”

   유하, 세하가 가져온 봄 [출처: 이꽃맘]

“나도 뭔가 심고 싶은데….” 열띤 토론으로 밭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엄마, 아빠 곁에서 유하가 한마디 합니다. “유하야, 유하 방 앞에 체리나무 아래를 유하 꽃밭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 “좋아!” 절로 난 꽃다지를 화분에 옮겨 심던 유하가 신나게 체리나무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풀부터 다 뽑고 땅을 예쁘게 정리해서 꽃씨를 뿌려볼까?” 밭 정리를 먼저 해야 한다는 말에 유하는 “나중에 할래”하며 휙 돌아서 자전거를 타러 갑니다. “이구…그럼 그렇지.” 유하 파파가 웃습니다.

“매년 새봄마다 새롭게 계획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농부의 최고 장점인 것 같아.” 유하 엄마의 농부예찬론이 시작되자 “그럼! 이런 직업이 없지”라며 유하 파파가 맞장구를 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그걸 수년, 수십 년 반복한다고 생각해봐. 몸은 익숙해서 편할지 몰라도 정신은 병들어 갈 거야.” “맞아. 쳇바퀴를 벗어날 수가 없잖아. 농부가 되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이렇게 재밌고 좋은데 왜 젊은 사람들이 농부를 하지 않지? 어디 농부 할 사람 없나?” 결론은 젊은 사람들을 농부로 꼬실(?)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늙어가는 마을에 젊은 사람 하나라도 들어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에 매일 하는 고민입니다.

농부가 살 수 없는 농지

유하네가 처음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5년 동안 포천 계곡에서 시골 생활을 경험했던 유하네는 농부가 되기로 하고 땅을 알아보려 다녔습니다. 부모님이며 형제자매들이 서울 근방에 있으니 너무 멀리 가면 만나기가 어려워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날씨가 따뜻하고 땅값도 싸 농사짓기에 좋지만 유하와 세하를 자주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고향으로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시골에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유하네는 막막했습니다. 경기도 외곽부터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아니면 돈 있는 사람들을 유치하기 위해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논도 밭도 대지로 전환해 집을 지으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습니다. 땅값은 유하네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어처구니없이 높은 가격에 경기도는 포기해야 했습니다. 인터넷 부동산을 아무리 뒤져도 유하네가 가진 예산으로 살 수 있는 땅은 없었습니다.

찾다 찾다 유하 엄마가 농활을 갔던 원주를 떠올렸습니다. 원주공항과 공군부대에서 매일 전투기가 날고, 탄약고가 주변에 있어 기존의 집을 증‧개축하는 것이 아니면 새집을 지을 수 없는 땅. 개발이 불가능해서 바로 몇백 미터 앞 땅보다 저렴한 땅. 유하네가 자리를 잡은 지금의 땅입니다. 이곳도 집을 마음대로 지을 수 있고 개발이 가능했다면 유하네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도 젊은 농부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땅을 구하기 어려워 농사를 포기하거나, 어렵게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는데 땅 주인이 외지인에게 땅을 팔아넘겨 쫓겨난 경험담이 넘쳐납니다.

외지인들이 장악한 시골 땅들

요즘 텔레비전만 틀면 LH 직원들이 어디에 땅을 샀다느니, 어느 시청 공무원이 땅을 샀는데 개발이 됐다느니 등의 땅 얘기로 들썩들썩합니다. 유하네 마을도 절반 이상의 땅이 외지인의 것입니다. 원주민의 땅도 원주민이 나이가 들면 외지에 사는 자식에게 상속하니 외지인의 땅이 돼버립니다.

  논과 밭은 농민에게! [출처: 이꽃맘]

참깨와 들깨 심을 땅 200평만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빌릴 만한 땅을 알아보지만, 외지인들은 농부에게 땅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웃돈을 얹어 팔아먹을 생각에 나무 장사에게 잠시 땅을 빌려줍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나무 장사는 나무를 심어놓고는 풀이 나면 안 된다고 제초제를 뿌립니다. 유하네 바로 위에 밭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우리 밭은 유기농 인증까지 받은 밭이니 농약이 넘어오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지만 일 년에 몇 번 와 약을 치고 가면 그만인 나무 장사에게 유하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논도, 밭도 사라지는 시골, 우리 모두 위기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논에 흙을 붓습니다. 유하네 마을 입구에 있던 논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정부의 정책도 논보다 이윤이 더 많이 나는 밭을 추천하니 낮은 쌀값에 농부들도 논을 포기합니다. “논을 이렇게 자꾸 없애면 도대체 쌀은 어디서 키우라는 거야?” 한숨이 푹 하고 터져 나옵니다. 중국산 쌀에 미국산 쌀까지 들어오니 국산 쌀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날 것 같아.” 시골에서 사라지는 논을 보며 유하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마트에는 항상 쌀이 쌓여있으니 도시인들은 느낄 수 없는 위기입니다.

어느 논은 눈 깜짝할 새에 흙이 부어져 석축이 쌓이고 농막이 들어섭니다. 도시인들이 별장을 갖는 방법입니다. 외지인들은 논을 산 뒤 농사를 짓는 척하려고 진흙에 띄엄띄엄 나무를 심습니다. 어느 논에는 돈이 되는 축사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마을에 축사 반대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농사짓기 어려워진 늙은 농부들은 살기 위해 밭을 외지인에게 팔아넘깁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금치가 파랗게 자라던 밭에는 커다란 국수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사라진 논만큼 쌀이 사라지고, 사라진 밭만큼 시금치, 양파, 당근이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울 아버지 살아생전에 작은 땅이라도 있었으면.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 소중하고 소중한 우리 땅은 어디에.” 유하 엄마가 아빠에게 배워 자주 부르던 노래입니다. 땅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논과 밭은 땅을 지키고 농사를 지을 농부에게. 집은 집이 없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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