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끝났고 위기는 다가온다. 무엇을 할 것인가?

[99%의 경제]


이번 경제위기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다른 때와는 달리 경기침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원래 경기침체는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한창 경기가 좋고 투기 열풍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여 원히!’를 외치고 있는데, 어느 날 주요 기업이 부도나거나, 국가의 달러가 메말라 외환위기가 닥치거나, 주식시장이 붕괴되거나, 은행이 문을 닫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래서 위기 직전까지도 과열경기가 평생 갈 것처럼 투기에 몰입한다. 1929년 대공황 전야에도 뉴욕 증시 전망은 장밋빛으로 가득했고,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모든 신용평가기관들은 (금융위기의 진원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이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고 거품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을 부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조차 과반 이상이 조만간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기구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둘째, 위기의 전조인 붐(boom)이 높지 않다. 호황의 최고점에서 급락해 공황으로 치닫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지만, 지금은 호황의 정점인 붐의 높이가 별로 크지 않다. 경기 사이클 상 호황이 크지 않고 올라가는듯하다가 비실비실 주저앉는다. 호황이 약한 만큼 사이클 주기도 길어졌다. 미국과 한국경제의 경기 사이클이 최장기간을 갱신하는 것도 그만큼 회복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 최고점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호황국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모든 지표가 이미 최고점을 찍었고 현재 후퇴국면에 있으며 적어도 경기침체의 초입에 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약한 회복국면과 작은 호황은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회복하고 활력을 갖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이 위기는 병 자체(과잉생산, 과잉자본) 보다 후유증(양적완화와 경쟁심화)이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즉, 과잉자본을 청산해야 할 상황에서 양적완화로 경기를 떠받치며, 한계자본을 청산하지 못해 경쟁조건을 더 악화시킨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등 지난 10년 가까이 양적완화를 진행한 기축통화국 뿐 아니라, 양적완화로 흘러넘친 자금이 신흥시장국으로 흘러들어가 이곳의 위기까지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당뇨병 환자에게 운동과 식이조절이 아니라 아플 때 잘 먹어야 한다며 더 먹으라고 과식하게 했으니 합병증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이번 위기는 아무 조짐도 없이 고요해 보이지만 바짝 달아오른 기름에 물이 닿아 폭탄 터지듯 튀어 오르는 그런 위기가 아니다. (유명한 경제 비유로 표현하면) 냄비 안에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마냥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제 살이 익어 가는지 모른 채 최후를 맞는 그런 위기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성장은 끝났다

이 위기가 심각한 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주기적 공황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라는 생산양식의 구조적 위기와 맞물려 찾아오고 있다. 단적으로 세계 경제성장률(GDP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전쟁이나 대공황과 같은 또 다른 구조위기 시기를 제외하고)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져 현재 1%대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2000년대 이후 중국 등의 신흥국 성장률이 높아 세계의 경제성장률의 하락세가 둔화됐지만 신자유주의 체제가 파산한 2008년 이후부터는 대세 하락하고 있다. 현재는 세계경제성장을 이끌 동력도, 국가도, 혁신(?)도 안 보인다. 중국의 성장도 줄어들고 있고 BRICS라 불린 주요 신흥국의 성장도 정체 상태다. 세계 2위의 인구대국 인도가 성장하고 있지만 여러 조건에서 중국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아프리카의 경우 일부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지역 전체적으로 초과이윤의 수탈이 계속 확대되고 있어 성장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2019년도 세계경제성장률이 3.9% 상승할 것이라 전망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후 발표할 때마다 성장률을 계속 하락시키더니, 지난 10월에는 3%라고 전망했다.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을 1년 사이에 1% 포인트 가까이 떨어뜨려 전망치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2020년 경제상황은 다소 호전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근거가 희박한 희망적 상황을 조건으로 하고 있어 언제 다시 예측치를 떨어뜨릴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의 활력이 이처럼 줄어든 것은 (과잉생산과 과잉자본으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고 경쟁의 심화로 인해 국제무역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필요한 수요보다 더 많은 물자들이 공급되고 각 업종별로 로벌 차원의 경쟁이 확대되고 있다. 산업전환에 따라 연관 업종에서 구산업과 신산업의 경쟁 또한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함께 2008년 이후 경제위기 대응으로 진행된 양적완화로 지구상에 화폐자본이 넘쳐 난다. 이들 간의 경쟁은 이자율을 하락시키고 산업자본의 예비적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각국 성장률과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국제무역의 증가세도 꺾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10월, 2019년도 세계 상품 교역량이 지난해보다 1.2% 증가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WTO는 4월에 교역량 증가폭을 2.6%로 전망했으나 6개월 만에 전망치를 절반 이상 대폭 하향 조정했다.


한국경제의 성장률도 80년대 초중반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다. 그나마 2%대를 유지하던 성장률은 선진국 수준인 1%대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이제부터는 잘해야 2%대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그야말로 ‘한국의 성장은 끝났다’고 말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왔다. 현재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노력 중이다.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민간 부문의 부진이 계속돼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대응

세계적으로 자본의 대응은 이제 자기 살기에 바빠졌다. 미중간 무역전쟁은 국민경제 차원의 대자본간 경쟁으로 볼 수 있으며, 일부의 과잉자본을 청산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자국(대자본)의 교역조건 강화와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한 과잉자본의 국지적 청산, 경제혁신, 그리고 (위기확대 시) 양적완화로 대응전략을 짜고 있다.

알다시피 실물부문에서 주류의 경제위기 대응은 산업전환이고 구조조정이다. 구산업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속도감 있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과 스타트업 등 혁신기업 양성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제적인 구조조정은 벌써부터 진행되고 있다. 해운과 조선업 등 어느 정도 구조조정을 마친 업종도 있지만, 로벌 불황과 함께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은 시시각각 무게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 자동차 등의 전방사업으로 불리는 철강업계의 불황도 심각해지고 있어 조만간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과잉경쟁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항공업계도 아시아나 인수를 필두로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건설경기 부진에 따른 건설업, LG디스플레이, 이마트, CJ, 포스코 등 대기업(계열사)들의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금융부문에서는 주요 증권사, 보험사, 지방은행의 구조조정이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전망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노동자의 희생 즉,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력 가치를 낮춰 노동비용을 줄이거나 노동강도를 더 강화하는 등의 노동력 착취를 전제로 하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과 그 이전의 모든 구조조정이 말해주듯 구조조정의 핵심은 단순한 산업의 스마트화나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인력 구조조정, 즉 노동자의 대규모 해고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수십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과정이었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통합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대량해고도 예고돼 있다.


혁신의 동력과 목적 : 노동력 가치 저하와 독점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으로 얘기되는 혁신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혁신할수록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력 가치를 줄인다. 사실상 혁신의 이득은 바로 노동력을 줄이거나 새롭게 쥐어짜 착취를 강화하는 것으로만 나타난다. 최근 ‘타다’ 사태의 핵심은 혁신기업 활동에 대한 제도적 후진성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불법파견과 같이 노동자의 임금을 쥐어짜고 고용구조와 노동권을 후퇴시킨 다는 것이다. 플랫폼 모빌리티라는 단어만 혁신적으로 들릴 뿐, 배달앱 호출노동자와 똑같이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에 기반한 일종의 스웻샵(sweat shop)이며 긱(gig) 경제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최근에 위워크 같은 유니콘 기업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이 기업들의 혁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그러다 위워크처럼 어처구니없이 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을 독점적으로 장악해 독점이윤을 누리는 것이 바로 혁신의 종착점이다. 아마존이 ‘키바’ 로봇 시스템을 도입해 노동력 비용을 줄이고, 빅데이터를 이용해 예측배송 시스템을 장착하고, 드론배송, 무인상점 등을 위해 매년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다시 쏟아 부어도 아마존으로 들어오는 투자금은 마르지 않는다. 영업이익율이 5% 안팎인(2018년 기준) 아마존의 주식가치는 세계 최대다. 각종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탈이 혁신에 감동한 나머지 자금을 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유통시장의 독점이윤이 엄청나기 때문에 영업이익율이 낮아도, 심지어 테슬라처럼 매년 마이너스를 기록해도 기업 가치는 하늘을 찌르고 서로 돈을 대지 못해 아우성이다.

위메프와 쿠팡이 1조 원 가까운 적자에도 계속 자본을 쏟아 넣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닌, 유통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치킨게임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덕분에 로켓배송, 당일배송으로 더 빨리, 새벽에도 상품을 받지만 밤에 잠도 못자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이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노동자들이 생활임금 이상 받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혁신 또한 시장독점이 목표이며, 이는 야간노동, 강화노동을 동력삼아 실현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하고 이에 뒤질세라 SK하이닉스가 122조 원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와 2위를 수성하고 시스템 반도체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그 정도 투자하지 않으면 독점이윤을 유지하기 어렵고 새롭게 창출할 수도 없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이런 대규모 투자를 계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 세계 반도체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2025년까지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며 1조 위안(약 17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즉, 시장의 독점력과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다.

그런데 이 같은 독점이윤이 삼성과 SK 재벌일가, 그리고 대주주의 배를 불릴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별반 소득이 없다. 100여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몇 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떠들어대지만 반도체 경기 상황과 생산조건에 따라 언제든 투자를 철회할 수 있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할 수 있다. 독점이윤의 확대에 따라 그나마 법인세를 더 낼 수 있는데, 이것도 각종 세제혜택으로 실효세율이 중소기업만도 못하다. 특히 해외공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이중과세라는 명목으로 국내에서 징수되지 않기 때문에 수익을 특정 해외공장으로 돌려 세금을 낮추는 방법도 있다. 그만큼 법인세도 상대적으로 덜 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을 하고 투자를 확대한다 해도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노동력 착취와 시장 독점으로 챙기는 독점이윤 이외에 추가로 더 성장하는 부분이 없다. 갈수록 노동조건은 악화해, 소위 혁신기업으로 생기는 일자리는 원하청 수준(정규직-비정규직)의 고용관계 악화가 아니라, 고용관계 자체가 불명확한 특수고용과 유사한 고용형태로 확대된다. 결국 로또 당첨보다 확률이 더 적은 100만 구독자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남는 시간에 긱(gig) 노동을 하고, 그나마 모은 돈으로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에 투자해 스마트한 한탕을 노리는 것이 현재 10대와 20대의 일반적인 삶일 수 있다.



어디로 가야하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두 가지 길 밖에 없어 보인다. 물려받을 자산이 있거나, 현재 자산이 어느 정도 충분한 사람이라면 그냥 이대로 가면 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전환이 위기 이후 더 가속화해 일자리가 줄고 노동조건이 악화한다고 한들, 어차피 부동산 가격은 오를 것이기 때문에 그걸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도저도 없는 사람이라면, 국민경제에도 도움도 안 되고, 법인세도 남들보다도 적게 내고, 덩치에 비해 고용을 늘리지도 못하면서 재벌 총수일가의 기업지배에 수십조 원을 낭비하고 있는 재벌을 사회화할 수 있는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민간 기업이 결코 해결하지 못하는 일자리 문제를 혁신성장을 통해 창출한다는 형용모순적인 신기루에 갇히지 말고, 국가주도의 적극적 일자리 창출 전략을 구사하도록 매를 들어야 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사고하는 그린뉴딜과 같은 공공형 일자리 창출 뿐 아니라 재벌의 사회화와 시장형 국유기업의 관리와 통제, 즉 산업의 사회화를 통한 일자리 사회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위기 대응이 노동자들을 희생하고 자영업자들을 수탈하면서, 자산가의 자산을 지키고 자본가의 자본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노동중심, (사용)가치 중심의 구조개혁 없이 양적완화로 자산가와 자본가를 구제하는 한,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홍석만(참세상연구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의견을 낸

    다른 개인이나 단체들을 보면 예전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한국이라는 곳은 사대주의라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언제나 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온 것이 맞습니다. 저도 어떤 사람한테 "어쩔 수 없이" 큰 나라들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다른 단체들을 보면 "뾰족한 수"가 없어요. 자본과 국가를 비난할 지언정. 그리고 자본을 너무 짧게 인식하는 것도 오류라고 봅니다. 자본은 공황과 전쟁을 통해서도 계속 살아남고 성장해왔으니까요. 요즘 몇 년은 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논리를 펴는 보수당을 보고 독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한 측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