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난민 삶과는 먼 터키-EU 갈등…“국경을 열라”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레스보스섬 주민들, 이제는 극우와도

[출처: 비비씨 영상 화면캡처]

맨발에 한쪽은 운동화, 한쪽은 슬리퍼를 신은 아이가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고 있다. 손에 든 것은 나뭇가지나 돌멩이뿐이라도 서로 어울려 노는 난민 아이들을 보면 마냥 천진해 보인다. 하지만 비비씨에 따르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위치한 모리아 난민센터에서만, 지난 3개월 간(지난 12월 기준) 난민 어린이의 자기 학대 사례가 20건이나 발생했다. 자살을 시도한 사례도 2건에 달했다. 어떤 아이들은 벽에 머리를 계속 박기도 하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칼로 자신을 베기 시작한다. 그냥 죽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고향에서 내전과 박해로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은 마음을 회복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하루하루 생존하기도 버겁다.

최근 터키 정부와 EU(유럽연합)가 국경 개방 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며 수용시설 난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 2015-16년 유럽에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몰려들자 EU는 난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터키와 난민협정을 체결했다. EU는 터키에 이주민을 차단하는 대가로 60억 유로를 지원하고 터키인에게 ‘무비자 입국권리’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터키는 4백만 이상의 난민을 수용했지만 EU는 약속한 금액의 절반도 집행되지 않았으며 무비자 입국도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터키 정부가 지난달 28일 기존 난민협정 이행 중단하고 난민들에게 유럽으로 향하는 국경을 개방하며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터키 정부가 국경을 개방하자 난민들이 에게해나 육지 국경을 통해 그리스로 진입하면서 상황이 고조됐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에 진입하는 난민들의 여건은 더없이 악화한 상황이었다.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난민 다수는 에게해 지역에 있는 5개 난민수용시설 중 하나에 수용되는데, 그 중 하나로 수용가능인원 3천 명인 모리아 난민센터에만 현재 약 1만 명이 살고 있다. 최대 4년이나 수용된 난민들도 상당수이다. 다수가 흙 위에 세운 텐트에서 생활하며, 쓰레기 더미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공기 중에 흙과 하수 냄새가 확연히 풍긴다. 난민과 주민과의 충돌도 늘었다. 전 유럽 지역에선 극우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역주민과 극우는 합세해 구호요원이나 기자들을 공격한다. 지역에선 밀수꾼과 구호단체가 짬짬이 해 난민들을 갈취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지만 매일 지역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모리아 난민센터 [출처: DW]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레스보스섬 주민들, 이제는 극우와

현재 그리스 레스보스 섬 등 난민센터가 위치한 지역 상황은 5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난민들이 하루에 수천 명 씩 도착하기 시작한 2015-16년, 당시 좌파 치프라스 그리스 정부는 부족하더라도 난민 환대 정책을 폈다. 주민들도 마을에 도착하는 난민들에게 음식이나 담요를 건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레스보스 섬 주민들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주민들은 종종 극우와 같이 집회를 한다.

주민들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건 그리스 정부의 탓이 크다. 지난해 7월 집권한 그리스 보수 신민당 정부는 과밀한 난민 시설 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시설을 육지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전 대상지역 지자체가 반대하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지지체들의 반대는 시위를 하거나 도로를 폐쇄할 만큼 완강했다. 신민당 정부는 지지율을 의식해 육지 대신 레스보스와 치오스 섬에 제대로된 지원 조치도 없이 새로운 유치장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섬 주민들이 이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리스 정부는 섬 경계를 위해 아테네에서 특수경찰을 파견했고 성난 지역주민들이 특수경찰 숙소에 몰려 들어가 경찰들을 구타하고 집기를 부수며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출처: DemocracyNow!]

지역주민들은 난민에 대한 반대보다 이 섬 자체가 난민시설로 바뀌고 또 아무도 관심을 쓰지 않는 곳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현재 정부는 난민시설을 방치해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가 난민을 경제적 목적으로 들어온 불법입국자라며 난민 정책을 후퇴시켜온 것도 난민에 대한 이들의 시각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더구나 그리스 정부는 난민 지위 신청 접수를 중단했다. 매일 독일 등 전 유럽에서 몰려드는 극우도 이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갈등 관계에 있던 터키 정부도 그리스와의 국경에서 이주민을 이용해 계속 도발하며 국가주의적인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현재 새로운 난민들이 국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쏘며 해산시키고 있다. 터키 정부는 난민들이 그리스로 진입하도록 반대 쪽에서 최루가스를 쏜다. 터키는 오는 26일 예정된 EU 정상회의에 맞춰 난민협정을 체결하고자 한다. EU에서도 새로운 위기를 두고 토론이 재개됐다. 하지만 이 협약이 실제로 난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다. 레스보스 섬에선 최근 한 유엔 난민센터가 불에 탔고, 잇따라 스위스 구호단체가 운영해온 난민시설도 화재에 휩싸였다. <알자지라>에 한 난민은 “사람들이 여기(수용시설)에서 질식하고 있다. 나는 살며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동할 수 있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터키가 국경을 개방한 지 약 1주일 만에 보트를 타고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난민은 1,700명으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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