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투표를 못하는 것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그림투표용지 도입, 수어통역과 자막 제공 의무화 등 요구

21대 총선의 사전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장애인 단체가 모든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 보장을 촉구했다.


6개의 장애인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장애인 참정권 대응팀)’은 10일 오전 10시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선거 때마다 소중한 한 표를 장애인도 평등하게 행사하도록 선거관리위원회에 요구하고 있다”며 “선거마다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개선 방향을 제시해왔다. 이제는 나라에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제도를 정비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투표소는 고령자·장애인·임산부 등 ‘이동약자’의 접근 편의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참정권 대응팀에 따르면 아직 접근이 불가능한 투표소는 전국 투표소의 20%에 달했다.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해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 때문이었다.

장애인 참정권 대응팀은 선거관리위원회에 21대 총선 관련 △그림투표용지 도입 △발달장애인 등의 유권자를 위한 알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선거 전 과정에서의 수어통역과 자막제공 의무화 △모든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투표소 선정 △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등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조치 이행을 촉구한 바 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조화영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는 투표할 때마다 겪었던 불편함을 전했다. 그는 “(투표소가 건물의) 몇 동인지, 투표소 방향 표시가 제대로 안 돼 있어 들어가는 입구도 헷갈린다. 우왕좌왕하다 출입구를 겨우 찾으면,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당황스러웠다. 투표용지를 받고도 당이 너무 많아 내가 원하는 당이 몇 번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조 활동가는 “투표용지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공보물의) 정책들도 어려운 말을 없애고 알기 쉽게 쓰여 있었으면 좋겠다. 또 (후보) 사진이 들어가는 투표용지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전투표소 수어통역사 배치 요구’도 몇 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 참정권 대응팀에 따르면 서울시 사전투표소의 수어통역사 배치 인원은 25명에 불과했으며, 세종시의 경우에는 단 한명도 배치돼지 않았다.

청각장애인 이종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의원은 2년 전 지방선거 투표를 위해 투표소를 방문했으나, 수어통역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종은 씨는 “투표소에는 수어통역사가 없었다. 안내문도 준비돼있지 않았다. 공무원이 대기하라고 해서 기다리니, 5분 후에 다른 투표소에 있는 수어통역사와 겨우 연결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 직후에 약속이 있었지만, 투표를 하는데 20분이나 소요됐다.

아울러 그는 “회사일로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수어로 된 투표 방법) 영상을 볼 시간이 없다”며 “왜 우리는 투표하기 전에 별도의 시간을 들여 투표하는 절차와 방법을 공부해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상 선관위의 공보 안내물을 점자 형태로 제작하도록 돼있으나, 점자가 묵자의 3배에 분량에 달한다는 이유로 선거정보의 전체 내용은 전달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거소투표를 할 때 시각장애인은 보조용구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정당과 후보의) 번호만 알 수 있지, 당 이름 혹은 후보 이름을 알 수 없다”며 “홍보물을 보면 된다고 하지만 외워 가지 않는 이상 번호만으로는 내가 투표하고자 하는 당, 후보를 찾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곽남희 활동가는 “코로나로 인해 비닐장갑을 껴야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비닐장갑을 낄 시) 점자를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시각장애인은) 비닐장갑을 벗고 투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주최 측에 따르면 경찰은 사전투표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을 들어 ‘투표소 100m 이내에서 소란을 피운 행위’라며 선거법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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