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강제격리 당하는 이주민과 난민들

[INTERNATIONAL]‘글로벌 감염’을 넘어 ‘글로벌 연대’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한 뒤 인도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출처: https://countercurrents.org]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국경을 존중하고 여권을 검사하고 인종이나 성별이나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이것은 병리학적으로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감염병은 진공 속에서 나타나지 않고, 구체적인 사회경제체제 속에서 번져간다. 특정한 사회경제체제는 바이러스의 병리학을 넘어 분명한 정치적, 계급적, 인종적, 젠더적 결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중 다수는 흑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특별히 흑인 친화적인 특성을 가질 리 없는데도, 흑인 사망률은 흑인 인구 비중보다 2배나 더 높다.

인종과 계급의 교차 속에서 흑인들은 더 가난하고, 더 낙후한 시설과 공간에서 거주하며, 의료접근권도 떨어진다. 히스패닉들은 미등록 이민자들이 많아 병원에도 가지 못하며,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주민과 난민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짐작케 한다. 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불안정하고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높은 빈곤율과 산업재해율에 시달리는 반면 사회안전망에서는 배제된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단속, 구금, 강제추방의 위험에 몰려있고, 결혼 이주여성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이처럼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사회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은 감염병 확산에서도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고, 적당한 시간마다 물과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국내의 ‘화성외국인보호소’ 같은 외국인 집단수용시설에서는 그런 조건을 충족하며 생활하기 어렵다. 오랜 구금 생활로 면역 상태가 취약해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수용돼 있는 이런 곳에서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팬데믹이 촉발한 경제 위기로 이주민들은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이들은 방역 때문에 국경이 닫혀 오가지 못하는 처지에서 비자 발급 중단 등 강화된 이민정책에 직면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수백만의 이주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본국으로 귀환하려는 상당수의 이주외국인도 국경 폐쇄와 이동 통제로 고립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난민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중동의 시리아, 예멘,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가에서는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개입한 폭격과 전쟁이 계속돼 왔다. 그래서 학교, 병원 등 사회기반시설들이 파괴됐고 빈곤과 실업이 만연해졌다. 수많은 이재민, 피난민들이 열악한 공간에서 밀집 거주하고 있고, 기초적인 공중보건과 위생 관리도 부족하다. 영양실조와 기타 질병이 널리 퍼져있는 이런 지역은 바이러스에도 취약하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난민들이 손 자주 씻기, 물리적 거리두기 같은 수칙들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 중 하나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봉쇄와 감금 속에 200만 명이 살고 있다. 이 중에서 현재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고, 사용 가능한 인공호흡기는 수십 개에 불과하다.

  미국 농업 이주노동자들. 최근 트럼프 미국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이민 농업노동자의 임금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내 25만 명 이주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출처: DemocracyNow!]

이처럼 방역과 지원이 절실한 이주민과 난민들은 국적과 시민권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방역과 의료, 생계 지원에서도 대부분 배제된다. 일단 언어적 장벽 때문에 방역당국의 알림, 지침에 관한 정보로부터 소외된다. 가장 기초적인 방역 수단인 마스크부터도 문제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난 한국에서 이주민들은 가장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공적 마스크’조차 건강보험증과 외국인 등록증을 모두 소지한 사람에게만 구매 기회가 주어졌다.

이주민들은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과 여러 지방자치단체 들이 지급하는 긴급생계지원에서도 배제돼 있다. 서울시는 한국 국적자와 혼인 관계에 있거나 한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어야만 지원금을 준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비판을 받고 나서야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들 에게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영주권이 없는 이주민들이 배제돼 있다. 안산시가 지급하는 생활안정자금의 경우 외국인도 지급 대상에 포함됐지만, 미등록 이주민은 빠져있다. 이런 차별과 배제는 세계 곳곳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주민과 난민이 직면한 더욱 커다란 위협은 코로나 재앙 속에서 혐오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염병에 취약하고 생계도 위협받는 피해자들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퍼트린 가해자로 낙인찍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보수적 기성언론과 혐오에 기반한 우익 정치 세력이 여기에 앞장서고 있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아무 데나 가래침을 뱉고,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우파 언론들은 처음부터 ‘우한 폐렴’이라 불렀고, 지금도 ‘우한 코로나’라고 부르고 있다. 막연한 공포를 인종적 혐오와 반이민 선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서 수백만 명의 지지를 얻는 일도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기독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새벽당 등은 ‘왜 중국인 입국을 금지를 하지 않고 국민세금으로 불법이민자들을 지원하고 있느냐, 자국민이 우선이다’라는 주장으로 지지를 모으려 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는 “중국 바이러스”라며 인종주의를 부추겼고, 이것은 재선을 노리는 그의 핵심적 캠페인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의 길거리에서는 아시아계 시민들을 대상으로 욕설, 폭행, 린치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저평가돼온 돌봄, 요양, 가사, 간호, 청소 등의 노동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해 온 것이기도 하다.

  최근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들의 모습. [출처: DemocracyNow!]

자본주의는 삶과 생명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돼야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재생산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과소평가되고, 가장 적은 임금을 받으며, 가장 먼저 해고되고, 끊임없는 성희롱과 직접적 폭력에 직면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증권중개업자나 투자은행가들이 아닌, 간호사와 청소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가 우리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주와 이민을 통한 국제적 과정이라는 측면을 봐야 한다.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제3세계와 남반구에서 이주해 온 다인종 여성들이 북반구와 선진국에서 돌봄과 보살핌 노동을 책임지는 현상을 ‘국제적 돌봄 사슬’ 이라고 명명했다. 지금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비상사태 속 에서 사회적 ‘필수’ 유지 업무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여성이고 이민자들이고 다인종 노동자들이다. 트럼프 등의 혐오 선동과 추방 위협에 시달려 왔던 이들이다. 예컨대 코로나 확진으로 2주간 격리치료를 받았던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의 곁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던 2명의 간호사도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에게 보낼 것은 박수와 감사 인사만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적 존중과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정보제공, 마스크와 긴급생계지원 등에서도 이주민과 난민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이주민이 안심하고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과 강제추방을 중단하고, 수용시설에 구금된 이주민들을 석방하고, 더 나아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사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미 포르투갈 정부는 모든 이민자에게 시민권과 공공의료 접근권을 보장하며 가야 할 길을 보여줬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과 이주민, 수용소에 있는 난민들에게도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지역과 국가들이 부채를 갚느라 공중보건 위기 대응 능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부채탕감을 실시해야 한다. 국제적인 무기 거래의 중단과 군비축소를 통해 지원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이주민과 난민들과 제3세계 시민들이 안전해야 우리 모두가 안전할 수 있고, 세계가 함께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에 대한 다양한 전망 중에서 특히 불길한 것은 미국의 트럼프, 영국의 보리스 존슨, 브라질의 보우소나르, 인도의 모디 등 우익 민족주의 정부들이 제시하는 방향이다. 이들은 인종주의적 혐오와 반이민 정책을 선동하고 있다. 국경을 닫고 장벽을 쌓아 올리고 이민자, 외국인, 난민, 무슬림들을 미워하고 쫓아내자고 말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19와 경제적 불안정이 가져올 정치적 혼란과 위기는 그런 극우세력을 물리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논리가 아닌 사회정의와 연대의 원리로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재난 속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돌보려는 사람들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취약계층과 이주민, 난민뿐 아니라 코로나가 제3세계 슬럼가와 난민촌에서 확산될 때 벌어질 상황을 함께 걱정해야 한다. ‘글로벌 감염망’을 ‘글로벌 연대망’으로 변화시킬 모든 벽을 넘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https://nancen.org/2025

https://nancen.org/2027

https://www.timetomutiny.org/post/the-coming-social-collapse

https://www.jacobinmag.com/2020/04/global-pandemic- coronavirus-health-crisis
https://spectrejournal.com/seven-theses-on-social- reproduction-and-the-covid-19-pandemic

https://bangkok.ohchr.org/un-human-rights-of ce-urges-asia- paci c-states-to-release-detained-migrants-suspend-forced- returns-amid-covid-19-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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