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현지 활동기…‘우리 다시 돌아가리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현지 활동 온라인 보고회

“70년 동안 아몬드 꽃만 폈다 졌다. 팔레스타인 리프타 마을만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실향민들이 이 곳을 보면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슬픈 마음으로 돌아왔다.” 수인 활동가가 지난 달 말 열린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 보고서에서 전한 말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팔연대) 활동가들이 ‘우리 다시 돌아가리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보고회를 열었다. 팔연대는 매년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을 진행한다. 올해는 지난 2월 한 달 동안 이뤄졌다. 보고회에선 뎡야핑, 자인, 수인 활동가 3인이 △구글 어스로 가 본 팔레스타인 △집을 찾아 걷는 길,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고 경계를 지나 △요르단 계곡 활동기라는 주제로 이스라엘 점령의 현실과 현지 운동을 증언했다.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현지 활동 온라인 보고회 화면캡처]

가장 먼저 발표한 뎡야핑 활동가가 구글 어스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위로 씌워진 이스라엘 점령이란 가림막을 걷어내고 현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가 전한 팔레스타인 현지 쟁점은 공교롭게도 구글 어스 그 자체부터 시작됐다. 구글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골란고원에 대해 고해상도 위성지도 파일을 제공하지 않는다. 구글사가 속한 미국이 1996년 이스라엘에 대해 저해상도 지도만 제공하도록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이스라엘이 로비한 결과다. 국내외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이 이를 문제시하면서 올해 관련법이 바뀌어 추후에는 고해상도 이미지 타일이 제공될 예정이다.

뎡야핑 활동가가 구글 어스를 통해 찾아본 지역은 ‘알꾸드스(예루살렘)’, 베둘레헴, 시리아 골란고원 등 귀에 익은 지명이 많았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지역 서사와 활동가가 들려준 실제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팔레스타인인들이 알꾸드스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에선 가옥 파괴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반복되고 있었다. 활동가들이 현지를 방문한 날만해도 예루살렘 2군데서 가옥이 파괴됐다. ‘수르 바헤르’ 마을은 서안지구 바로 옆 펜스 인근에 위치해 보안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사 중이던 8층짜리 건물은 3층까지만 남기고 그 위는 폭탄으로 한꺼번에 파괴했다. 점령군과 경찰들은 건물이 파괴되자 서로 환호하고 치하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뎡야핑 활동가는 이를 두고 “이 폭발로 이날 집을 잃은 사람은 72명이나 됐지만, 그들(이스라엘 점령군)에겐 단지 ‘미션 컴플리트디(임무 완료)’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설된 뒤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마을인 알꾸드스 내 리프타라는 지역도 이야기됐다. 이 지역은 자연공원으로 지정돼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유원지로 이용하고 있는 장소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다.

팔레스타인 기독교 공동체가 살았던 ‘이크리트’로도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을 다 쫓아내면서도 유독 이 마을 사람들에게만 다시 살 권리를 주겠다는 증서를 써줬지만 70년이 지나도록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 않다. 이크리트 주민들은 소송으로 대법원에서까지 이겼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교회를 점거하고 자신의 살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시리아 골란고원에서도 자신이 평화적으로 취득한 땅처럼 선전하고 있다. 이곳에 와 세계 여행 이스라엘 편을 촬영한 코난 오브라이언도 마치 이스라엘군이 시리아정부군과 반군으로부터 시리아인들을 지켜주는 것 같은 여행기를 제작해 이스라엘을 선전하기도 했다. 뎡야핑 활동가는 “탱크가 다니는 길이라고 알리는 표지판이 있을 만큼 골란고원이 평화롭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무슨 골란고원이 평화롭다는 것인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성지순례를 많이 가는 베들레헴도 이스라엘이 말하는 서사로 기억되지만,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기독교 도시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촌도 2군데나 있다. 베들레헴에 위치한 ‘바티르’라는 마을은 로마시절 유적지도 있을 만큼 역사가 깊은데, 이스라엘은 이곳에도 장벽을 설치하려고 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다행히 현지 주민들이 이를 막기 위해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하고 법적 투쟁도 하며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따오기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따오기로 보기| 랜선세계여행, 쫌쫌따리 팔레스타인>

집을 찾아 걷는 길, 팔레스타인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현지 활동 온라인 보고회 화면캡처]

수인 활동가는 이스라엘의 가옥 파괴 문제를 집중해 설명했다. 그는 △예루살렘 지역 리프다, 와디 알 홈무스 사례로 이스라엘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포기하고 떠나도록 하는지, △드 헤이샤와 발라타 난민촌에선 과연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고 있는지, △아까, 야파의 이야기를 통해선 도시 재활성화란 사업이 어떻게 주인 없이 강제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찬찬히 짚어주었다.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사는 바셀의 도전이나 바르달라에서의 사례를 통해서는 현지에서 겪은 체험을 토대로 점령에 도전하며 삶을 꾸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천을 들려주었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마을 리프타에선 1947년 극우 민병대 ‘스턴 갱’이 총기 난사를 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떠나기 시작해 현지는 텅빈 집들만 남게 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됐지만 이곳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물놀이하며 경치를 즐긴다.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는 방법 중 하나가 집을 부수는 것이다. 수인 활동가가 현지를 방문한 와디 알 홈무스에 있던 폐허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가옥을 철거한 대표 사례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적법하게 건설한 팔레스타인 건물에도 보안상의 이유라며 철거명령을 내리고 있고, 더구나 주민 자신의 비용으로 건물을 부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건물을 철거하고 그 비용을 청구한다.(관련 기사 링크)

팔레스타인 난민촌 드 헤이샤나 발라타에선 잦은 정전과 높은 인구 밀도 속에서 난민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1949년 설립된 드 헤이샤 난민촌은 1967년 약 4천 명이던 인구가 현재 약 4배 가까이 불어났지만,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그대로이다. 1950년대 말부터 판자촌 대신 난민들이 콘크리트 등을 이용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생활공간이 만들어졌지만 유엔 건물만 반듯할 뿐 공적인 지원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1950년에 지어진 발라타 난민촌 인구도 1967년 이전 1만여 명에서 현재는 2배 넘게 불어났지만 이곳 역시 공간은 그대로이다. 수인 활동가는 “각박할 것 같지만 그래도 다들 화분에 꽃과 나무를 키우며 길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굉장히 많다. 인티파다 등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구호들이 많았다. 발라타 난민촌은 길만 하나만 건너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나 관광버스와 비교됐다”라고 설명했다.

수인 활동가는 아까에선 이스라엘이 이곳에서 ‘주인 없는 도시 재활성화’를 어떻게 강제로 추진해왔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아까에는 아랍인 주민 다수가 살았던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32%일 뿐이며, 이전부터 살던 팔레스타인인은 15%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팔레스타인인들이 떠나가며 빈 집들이 생겼고, 이곳을 유대인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또 구시가지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미술관이나 극장, 기념품 가게로 돌변했다. 수인 활동가는 “이 역사를 몰랐다면 너무 멋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관광지 곳곳엔 오래 된 자물통으로 잠긴 집이 있었는데, 아마도 팔레스타인인 집주인은 그 열쇠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인 활동가는 이외에도 나블루스 올드 시티의 호텔 겸 카페 이야기를 전하며 이스라엘이 아니라 10년 이상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사람들과 벽돌 한 장 한 장 씩 쌓아서 지은 집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국경을 넘고 경계를 지나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현지 활동 온라인 보고회 화면캡처]

자인 활동가는 “팔레스타인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현지 활동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연구하며 활동해온 자인 활동가는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운동과 연대할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번 현지 활동에 참가했다. 그런 그는 “여성해방 없는 팔레스타인 해방은 없다”는 궐기운동(탈리아트)의 현재를 추적하며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이 운동의 이야기를 전했다.

탈리아트는 지난해 8월 발생한 페미사이드에 반발하며 생긴 운동으로, 당시 라말라, 예루살렘, 하이파, 베를린, 베이루트 등 12개 지역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지며 형성됐다. 이를 계기로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1년 동안 전국적 조직체를 결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현재까지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페미사이드를 비롯해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폭력, 점령에 의한 폭력, 몸에 대한 통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토론이 오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점령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팔레스타인 여성 해방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탈리아트 활동가들은 특히 토론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서 가부장제가 점령과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를 주목했다. 자인 활동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주된 정책 중 하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남성들이 여성을 보호하게 만드는 정책을 사용하게 한다. 여성이 나오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남성에게 그 여성을 제어하도록 만든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팔레스타인 남성에 의해 집에 돌아가든가 보호를 받게 만든다.

또 이스라엘은 가정폭력에 희생된 여성들도 사회적 안전망이 아니라 가정으로 다시 복귀시키려고 한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계속 부차적이고, 보호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진다. 여성들은 이외에도 팔레스타인 경제를 계속 복속하려는 이스라엘의 조치에 자기 경제권을 가지고 일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탈리아트 활동가들은 여성 해방을 추구하면서 서로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이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나가기 위해 계속 이야기하기를 중시하고 이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나아가 이들은 공통적 경험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을 다시 언어화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자인 활동가는 “우리도 탈리아트 운동처럼 동정이나 지원, 지지가 아니라 우리 공통의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고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며 지역 청년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해 발표했다”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뎡야핑 활동가는 ‘요르단 계곡 활동기’라는 주제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발표한 ‘중동평화안’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이는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의 대부분을 이스라엘 영토로 할당해 논란을 낳았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관련 기사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은 코로나19로 축소돼 활동가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해야 했다. 내년 활동은 코로나19로 진행되지 않는다. 활동가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모두 가명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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