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봉기에 무력한 인간, 혁명의 지도를 다시 그리자

[새책] 심광현·유진화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서평

심광현 선생이 얼마 전 모 회의에서 새 책이 나올 거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심광현 선생으로부터 서평 부탁을 이메일로 받고 나서 메일을 읽지 않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나서야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아마도 이 방대한 책에 대한 서평을 필자에게 부탁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심광현 선생의 책 제목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희망읽기, 2020)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말대로 8년여에 걸친 작업의 결과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 시절 계간지 <문화과학>이 창간된 1991년부터 이루어진 사고의 중첩의 최종판인 것처럼 보였다. 선생의 저작을 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1999년에 나온 『문화사회를 위하여』를 위시하여 『프랙탈』, 『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흥한민국』,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등의 저작에 대한 선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왜 지금 나올 책 제목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일 수밖에 없는지 일반인들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지본론』만 하더라도 그 책의 분량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6배 이상이라고 하지만 심광현 선생이 그동안 지었던 책의 분량 또한 그에 버금가거나 초과할 듯하다. 따라서 당초부터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에 대한 서평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원고지 10매 내외로 소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서평 부탁에 대하여 필자가 과문하다거나 하면서 핑계를 대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응했을 뿐이니 독자들의 양해를 구할 뿐이다.

  심광현·유진화 저, <희망읽기> 발행

지나고 보니 선생이 『지배양식과 주체형식』(백의 1994)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본서는 그 연장선 위에 있을 듯하다. 부제가 ‘주체양식과 생산양식의 변증법’으로 되어 있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문화과학사 2014)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이 계열에 씨줄로 연결된 책들을 보면 선생이 끊임없이 ‘이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나올 책에서는 그 공백들이 촘촘하게 메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형식이 주체양식으로 더 나아가 개인구성체로 변화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선생의 본서에는 <문화과학>에서 제기했던 ‘생태적인 문화사회’ 담론이 날줄로 배선되어 있고 이 또한 자유로운(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개인들의 연합론으로 변화 발전해 있다. 결론적으로 본서는 각각 많은 노드들(본서에 나오는 많은 철학자 혹은 이론가들)이 배치된 채 씨줄과 날줄이 조우하면서 생산양식 - 주체양식 - 통치양식 - 생활양식의 네트워크에 의한 미래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을 종합적으로 드러낸 책이다.

{개인, 사회, 자연}의 집합 구성에서 한국 사회는 그동안 이 삼자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사회구성체 논의는 집합의 두 원소를 배제한 채 이루어진 것뿐이었다. 그래서 선생은 사회구성체에 다소 낯설 수 있는 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개념을 구성하여 종합하려고 한 것이다. 개인구성체 또한 선생이 <문화과학>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할 때 강조하던 ‘자기통치성의 철학’과 맥락이 닿아 있다. 이것을 선생은 인지과학적인 논의와 연결된 1부만이 아니라 2, 3부에서도 반복적 차이 방식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선생이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한 핵심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만 갇힌 채 인간혁명을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이제껏 실패하고 만 변혁/혁명이론에 대한 반성이고 그 반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기왕의 생산양식론에 통치양식, 주체양식과 생활양식(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개념들을 네트워크화여 대안사회론의 전모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의 전문과 서론에서 지적되듯이 오늘날 인류가 꿈꾸었던 혁명은 인간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실현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압할 수는 있겠으나 ‘자본주의의 독’에 맞서 결연히 일어난 ‘자연의 봉기’ 앞에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인간주체는 무력하기만 했다.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차를 정지시킨 것은 인간도 이념도 아니었다. 인류가 노동의 문제, 페미니즘의 문제, 생태문제 앞에서, 착취/수탈과 억압과 차별을 목도하면서도 변혁의 일격을 가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이 먼저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생의 말대로 인류는 아직 성인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혁명적 봉기가 실패하고 자본주의와 종교가 강화되면 다시 새로운 혁명적 봉기가 일어났지만 인류는 악순환에 갇힌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20세기에 일어난 인간혁명 없는 사회혁명에 그 원인이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과학적 방법인 하향법에 익숙해 상향법에 전혀 주목하지 못한 탓이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선생이 말하고 있듯이 1부, 3부가 하향의 구조를 취한다면 2부는 생활양식,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간혁명이 사회혁명으로 상승 조우하는 상향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방법과 경제학을 필두로 하는 사회과학의 방법이 동일하게 하향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마르크스의 주장을 전면 수정 발전시킨 것이다. 마르크스가 초기에 주목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인간혁명론으로 발전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서술방식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한 걸음씩 나가는 상향법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상향법 식으로 2부부터 읽으면 좋다. 비교적 단순하고 쉬우며 스토리텔링처럼 몸으로 즉각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부터 읽는 것이 책 읽기 요령 아니던가. 게다가 이 책만이 아니라 선생의 다른 책들에서도 나타나는 많은 다이어그램들에 주목하면 좋을 듯하다. 가령 본서 630 쪽에 나오는 다이어그램은 상향과 하향을 아우르는 선생의 종합적 사고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본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며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서평을 마치자. 본서에 문명 전환을 위한 과제가 제시되어 있지만, 과연 인류는 문명 전환을 위한 항해에 나설 수 있는가? 그리하여 과연 인류는 성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 자본의 창세기가 시작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자본은 윤회 전생해 오던 중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났다. 당신은 혁명의 지도를 찾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리고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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