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했던 몸들 너머

[레인보우]


감옥이 금지하는 몸

“감옥은 어떤 몸을 허용할지 안 할지를 결정합니다.” 브라질의 흑인남녀트랜스젠더전국포럼 공동창립자 알레산드라 라모스는 이렇게 말한다.1)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우리가 여기 있다(Invisible Men)>는 브라질 트랜스젠더 남성 수감자들의 인권 실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남성/여성이라는 성별이분법과 교도관이나 경찰(혹은 국가)과 수감자라는 권력 구도가 결합될 때 트랜스젠더 수감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잘 보여준다. 경찰은 체포할 때부터 남녀를 따로 줄 세우고 각각에게 다른 종류의 폭력을 행사한다. 교도소 체제는 등록된 성별에 따라 남녀를 나누어 수감하며 교도관은 트랜스젠더 수감자가 자신의 성별을 어느 쪽으로 말하는지에 따라 (역시 각각의 경우에 다른 종류의) 폭력을 가한다. 수염이나 머리카락의 길이와 같은 특정한 표현들, 호르몬 요법과 같은 의료적 조치들은 정당한 기준 없이 제재된다. 이 모든 일들이 수감자들에게 어떤 몸을 가져야 하는지, 그 몸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에 관한 명령이 된다.

한국은 상황이 낫다, 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한국 역시 구치소, 교도소 등에서 수용자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수용동을 배정하지 않으며, 신체에 맞는 속옷의 사용이나 호르몬 요법을 거부당하는 등의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법무부 내부 지침 「성소수자 수용처우 및 관리 방안」(2019.07.)에 따르면2) 법무부는 “성소수자는 별도의 수용동에 분리하여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이 아닌 (그러나 본인의 정체성도 아닌) “현재 신체적 성”을 기준으로 수용동이나 신체검사자의 성별 등을 정하도록 한 점에서 개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여전히 정체성을 “분리”의 이유로 삼고 거주 공간에서는 물론 운동, 종교행사, 진료 등 여타 생활 영역에서도 다른 수용자와의 접촉을 차단한다. 인권침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하지만 실상 이러한 분리는 또 하나의 차별일 뿐이다. 사회적 고립은 수용자의 안녕에 큰 위해가 되는 동시에 정체성이 여러 차별 행위들의 원인인 듯 여겨지게―성소수자 피해자가 비난받게―만든다. 고립되거나 차별받지 않으려면 그런 몸은 갖지 말라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몸을 배우기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수감자들 사이의 권력 관계도 문제가 된다. 여성교도소의 흔치 않은 남성으로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교도소의 트랜스젠더 남성들은 (이 영화의 소개 문구대로) “교도관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여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수감자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남자가 되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커다란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 특정한 ‘몸’을 배워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달리 어째야 할지 몰랐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어요.” “적어도 내게 그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시스젠더 남성 범죄자의 고정관념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내게는 전혀 없는 것이었거든요.” 5년간의 수감 생활을 한 레오 모레이라 싸의 말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구현해야 하는 어려움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고정관념 특정한 몸만이 허락되는 곳에서는 단순히 어떤 명칭이나 정적인 (예컨대 옷차림 같은) 요소를 내거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몸짓이나 말투와 같은 적극적인 수행 혹은 연기 또한 요구된다. 이것은 종종 사고방식의 층위에서 몸에 새겨지기까지 한다. 다른 출연자인 댄 산토스는 수감 생활 동안 여성혐오를 갖게 되었고 현재는 그에 관한 상담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감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모든 것은 소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숙소나 화장실, 옷, 직업 등 수많은 것이 성별을 기준으로 배정되고 각각의 성별에는 적절한 목소리와 몸짓과 성격이 따라붙는다. 트랜스젠더인 케이트 본스타인은 “여자로 패싱(passing)하는 걸 배우는 과정에서, 난 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의 눈을 응시하지 말라고 배웠다.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남성 단서라는 거다”라고 말한다. 시선 처리는 물론 악수를 청하거나 엘리베이터에 문을 여는 등 일상의 곳곳에 ‘예의’라는 이름의 이러한 ‘억압’과 ‘단서’가 숨어 있다.3)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새로 배우느라 의식하게 된 것일 뿐 이 같은 몸을 배우는 일은 트랜스젠더만의 경험도 여성만의 경험도 아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의심이나 비난을 받게 된다. 종종 이를 ‘교정’하려는 (종종 악의조차 없는) 시도들을 마주하게 된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고 권력 구도가 선명한 공간에서 (보다 직접적인 위협과 함께) 더 두드러진다고는 해도, 어떤 몸은 금지 당한다는 사실, 몸이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이며 이는 생존이 걸린 강요라는 사실은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다.

다른 배움

브라질은 수감 인원이 세계 최상위에 속하며 그 2/3 가량이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인 국가다. 그런 곳의 감옥에서 몸에 가해지는 금지와 허용, 특정한 ‘배움’의 힘은 한국의 것과는 아마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러나 먼 일은 아니다. 올해 초, 동료들의 지지 속에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를 강제전역 조치한 군대가 바로 그러한 힘을 행사한다. 여전히 외부성기를 비롯한 신체외관과 생식능력의 상실을 ‘조사’하는 대법원 성별정정 예규가 그러한 힘을 행사한다. 우리는 오늘도 배우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몸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몸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트랜스젠더 운동으로 성별정정 예규는 거듭 개정되어 지난해에는 부모동의 요건이 삭제되었고 올해에는 “조사한다”가 “조사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병역거부 운동은 얼마 전인 11월 26일, 의정부 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에서 기독교와 페미니즘적 신념을 토대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시우 씨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현역 복무 거부자를 상대로는 최초의 무죄 판결이다.4) 이런 곳들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몸을 또한 배운다. 이 다른 배움이 우리를, 그리고 ‘군대’와 ‘감옥’과 ‘국가’를 바꾸어 나간다.

*각주

1) 루이 카를로스 데 알렌카(Luis Carlos de Alencar) 감독, 2019년작.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으로, 자세한 소개는 http://hrffseoul24.org/portfolio-item/우리가-여기-있다에 실려 있다. 이 글에서 인용한 대사와 작품 소개 문구는 모두 서울인권영화제에서 가져온 것(각각 자막팀 성령·다빈·고운의 번역, 자원활동가 남선의 글)이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같은 페이지에 실린 박한희의 인권해설을 참조.

2)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정보 공개 청구와 (법무부의 거부에 따른) 행정 심판을 거쳐 지난 11월 하순에 공개된 자료이다. 분량상 본문에는 쓰지 못했으나 이 지침은 “여장남자”, “남장여자” 등을 언급하며 멸칭인 쉬메일(shemale, 직역하면 그녀-남자), 히피메일(hefemale, 직역하면 그-여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전문은 http://www.cathrights.or.kr/bbs/view.html?idxno=22824. 한편 법무부는 지난 4월 관련 지침을 개정하였으나 성수소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의 청구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이에 대한 행정심판이 진행 중이다.

3) 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옮김, 『젠더 무법다: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바다출판사, 2015, 56쪽. 여기서 패싱은 특정한 성별로 인지되는 것을 뜻한다.

4) 자세한 내용은 전쟁없는세상 논평, 「병역거부자 시우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 – 평화주의 양심·평화운동 실천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포함된다는 것 증명돼」, 2020.11.27.(http://www.withoutwar.org/?p=1685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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