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헤인스 국가정보국장 지명은 한반도에 무관심 표현

[1단 기사로 본 세상] 미국 민주주의의 파산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11월 3일 미 대선 이후 한 달 동안 우리는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봤다. 미국인이 자랑해온 미국식 민주주의는 파산했다.

프랑스 사람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자유와 평등, 분권과 참여,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미국 민주주의를 칭송했다. 프랑스 귀족이자 판사인 토크빌은 26살에 미국을 9개월 여행하고 무려 1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다. 프랑스식 글쓰기의 전형인 에세이 풍이라 읽는데 고역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길잡이였다.

미국 민주주의의 파산

토크빌은 1835년에 펴낸 ‘미국의 민주주의’ 1권 마지막에 “오늘날 세계에는 위대한 두 민족이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러시아인들과 미국인이다. (중략) 양자는 함께 지구 반쪽의 운명을 각각 지배하도록 하늘의 계시를 받은 듯하다”고 말했다. 1835년의 토크빌이 100년 뒤에나 등장할 미소 양극 체제를 예언했을까. 아니다. 토크빌은 현실사회주의를 예언한 게 아니라 러시아가 이미 19세기 초에 제국주의 반열에 오른 걸 봤을 뿐이다.

토크빌의 예언이 적중한 곳은 오히려 미국이다. 그는 미국이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흑백 갈등과 군사 비대화로 홍역을 치를 걸로 봤다. 이 점에서 토크빌은 탁월하다. 프랑스 귀족으로 풍요 속에 살아온 토크빌은 경제와 노동을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토크빌을 처음 번역한 이는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노재봉 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다. 노 교수는 10월 유신이 한창인 1973년 ‘시민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토크빌을 번역했다. 노재봉은 토크빌이 과도한 중앙집권의 위험을 경계했다고 썼지만, 정작 그는 노태우 정권에 복무했다. 말 따로 몸 따로 였다. 노재봉의 책에는 자유와 자치, 배심원제도, 결사, 종교의 자유가 중심인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어 토크빌에 주목한 이는 연세대 총장(경제학과)을 지낸 정갑영 교수다. 그는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에서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읽었다. 덕분에 이 땅에선 지금도 토크빌을 기독교와 관련지어 읽는다.

한국인의 눈으로 미국 보기

지난 100년 가까이 이 땅엔 미국 유학파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정작 미국을 제대로 분석한 이는 없었다. 우리는 200년 전 프랑스 사람의 눈으로 본 미국을 신화처럼 떠받들었을 뿐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1권이 출간된 1835년은 다산 정약용이 살아 있을 때다. 다산을 미국만큼 파고들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다른 세상이 닿았을 거다. 참고로 토크빌의 미국 여행 목적은 교도소 시찰이었다.

한국인의 눈으로 토크빌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토크빌에게 배울 점도 있지만 그가 끝내는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심지어 식민지 탄압을 주장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토크빌은 노예제 폐지론자였으나 이는 식민지 유지를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토크빌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식민지 문명화를 이유로 찬성했다.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와 다를 바 없다.
토크빌은 미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보지 못했다. 미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토크빌보다는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가 더 낫다. 하워드 진은 토크빌이 설명한 잭슨 시대의 미국의 민낯을 폭로했다.

책방주인에서 정보기관 수장 내정

  조선일보 11월25일 14면.

미국은 이번 대선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노출했다. 지금은 좀 안정을 되찾아 바이든 당선인이 토니 블링컨을 국무장관으로 내정한데 이어 애브릴 헤인스를 국가정보국장(DNI)에 지명했다. 이로써 대북 라인도 구색을 갖췄다.

헤인스가 국가정보국장에 지명되자 조선일보는 11월25일자 14면에 ‘性愛소설 낭독회 열던 책방주인, 美 17개 정보기관 총괄 수장으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헤인스가 물리학을 전공했다가 책 가게를 운영하다가 로스쿨에 들어가 법률가가 됐다고 소개했다. 지금 한반도는 이런 신변잡기로 지면을 채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 헤인스가 북카페를 운영한 게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특별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50년대 이후 한국 유력 언론사는 앞 다퉈 미국 특파원을 파견했다. 미국 특파원을 지내면 편집국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런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나 쓰고 있으니 미국이 우릴 얼마나 우습게 볼까. 마치 미국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신변잡기로 덮으려는 듯하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은 ‘압박을 통한 비핵화’라는 오바마 식 해법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민주당은 어설픈 기대를 접는 게 좋겠다. 헤인스는 오바마 정부 때도 대북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방식으로.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는 지난 9월 미 CBS 인터뷰에서 “강력한 경제 제재로 핵개발 포기 약속을 받아낸 이란 방식을 북한에도 적용해야 한다”며 “북한이 협상에 나오도록 진짜 경제 압박을 해야 한다”고 말한 대북 강경파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2018년 3월 최초로 CIA 국장에 여성을 앉힌 것처럼 국가정보국장에 첫 여성 수장을 임명하는 이벤트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헤인스 국장 임명은 한반도 문제가 한참 후순위라는 바이든의 고백처럼 들린다.

헤인스는 CIA 부국장 때도 그랬고,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 수석부보좌관 때도 한결같이 “강력한 대북 제재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거나 “김정은 정권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엉터리 전망을 내놓은 지 3~5년쯤 지났다. 이제 그만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게 낫다.

  조선일보 11월25일 14면.

홍콩 시위는 중국 흔들 때만 활용

미국 정부가 지난달 홍콩 민주화 인사 4명의 미국 망명 요청을 거절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10월28일자 보도) 홍콩 민주화 투쟁의 주역 4명이 10월27일 홍콩 주재 미 영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들이 미 영사관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4명의 망명 신청을 거절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타올랐을 때 미국과 미국 언론은 이를 앞 다퉈 보도하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망명 거절로 미국은 홍콩 시위를 중국을 흔들 수단으로만 활용했다는 걸 고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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