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⑤] 《미혼모의 탄생》 저자, 권희정 안토니아스 대표 인터뷰

[이슈]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

①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시설에서 겨우 1년을 살았습니다
② ‘교회에 가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자원에 입소했습니다
③ 15년간의 내부고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④ 토착 기업이 된 모자원, 비리와 세습의 역사
⑤ 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
⑥ 정부가 시설에 숨긴 0.3%의 한부모 여성들


2019년 출간된 《미혼모의 탄생》 표지엔 ‘추방된 어머니의 역사’라는 구절이 부제처럼 붙어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근대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은 미혼모의 모성을 거세하는 근대 가족 정치 이데올로기와 당대의 사회사업 실천이 맞물려 있음을 여러 자료로 증명한다.

과연 ‘미혼모’의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미혼모를 둘러싼 정책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워커스》는 권희정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혼모라는 개념이 없던 1970년대 이전부터, 미혼모의 모성을 박탈하며 국가와 입양기관이 함께 진행한 입양 사업, 이후에도 여전히 시설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책적 문제의 맥락을 짚었다. 인터뷰는 코로나19에 따른 방역의 일환으로 서면으로 진행했다. 저자 권희정은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출판사 안토니아스의 대표다.


-한국의 미혼모 관련한 정책은 어떻게 시작됐나?

한국 전쟁 이후부터 미혼모의 양육권이 표면화 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지 미혼모 가정에 대한 정책 자체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2007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설립자이자 초대 대표인 리차드 보아스 박사가 미혼모 권익운동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한부모 관련 단체를 찾았다. 그때까지 한부모 운동 당사자들조차 미혼모도 아이를 키우고, 다른 한부모들처럼 지원과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 미혼모 정책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혼혈 아동을 출산한 어머니와 미혼모의 양육권을 억압한 역사다. 1950~60년대는 전국 혼혈아동을 파악해 시설을 지어 (홀트 기부로 상도동에 ‘리시빙 홈’과 ‘선명회보육원’을 지음) 이들을 수용한 뒤 입양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1970년대부터는 출산 달이 가까운 미혼모를 수용한 뒤, 출산 후 아이는 입양 보내고 어머니는 퇴소시키는 것이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전부였다.

1970년대 이후부터 입양 대상인 혼혈 아동 출생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이때 ‘미혼모’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입양기관에서 친권 포기를 전제로 미혼모 상담 사업을 시작하면서 등장한 용어다. 결과적으로 1970~80년대에 우리 입양 역사상 가장 많은 아동이, 대부분 미혼모의 자녀였던 아이들이 국내외로 대거 입양된다.

-경제가 고속으로 성장 중이었는데 왜 입양이 활발했나?

경제 발전 이후에도 입양이 중단되지 않은 것은 전쟁‧빈곤과 상관없이 국가가 원하는 근대적 사회질서와 기강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는 아동들을 처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입양이 활용됐다. 심지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해외입양을 통해 많은 외화가 유입됐다. 결국 국가 질서와 국가 경제 모두 이익을 가져다준 셈이니 입양은 경제발전과 함께 더욱 활성화됐다. 그 이면에 정상 가족은 계속 신비화됐고, 미혼모와 그들 자녀에게는 계속 낙인이 찍혔다. 더욱이 1970년대 입양아동에 대한 설명이 ‘미혼모가 키울 수 없는 아이’ 였다면 1980년대엔 ‘미혼모가 버린 아이’로 더 자극적으로 변한다. 입양 사업 존속을 위해 미혼모에 대한 낙인이 필요했던 아이러니가 근대 입양의 슬픈 자화상이다.

-미혼모 지원 정책이 시설 위주가 된 배경은?

1970년대 후반, 정부는 미혼모를 병리적 모성으로 규정하고 시설 수용 후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으로 미혼모 복지정책의 틀을 잡았다. 1977년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심의회’에서 출간한 “요보호 여성의 복지향상을 위한 연구”는 서구의 경우 “미혼모를 위한 써비스는 임신 중인 이들을 위한 임시 시설수용, 상담사업(...) 및 친권 포기 등이 중심이 된다”고 소개한다. 이때부터 보건복지부는 미혼모의 생활 안정과 자립을 도모하고자 산실과 미혼모 보호시설을 증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양육 미혼모를 위한 제도나 논의 등은 언제부터 본격화됐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해외언론에서 한국 고아 입양 시장을 비판하는 보도가 이어 졌다. 이에 따라 입양정책은 해외입양 중단 및 국내입양 촉진으로 방향을 바꿨다. 정부, 입양기관, 언론뿐 아니라 지식인, 예술가, 여성단체들도 “우리의 아이는 우리가 키우자” 는 자성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미혼모생활보호시설인 ‘애란원’은 1989년 처음으로 양육을 원하는 미혼모의 자녀를 맡아주는 탁아소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수준의 사업은 미혼모 양육권 보호라는 사회적 변화는 끌어내지 못했다.

한편 2002년부터 해외로 입양돼 나갔던 입양인들이 해외입양중단과 미혼모의 양육권 보호를 요청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귀환 입양인들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국내 입양 지형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중 하나가 2011년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의 개정을 끌어낸 것이다.(1)

당 법은 “아동입양 절차가 아동 복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최선의 아동 보호는 출신 가정과 출신 국가 내에서 양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패러다임으로 국가 입양 정책을 수립”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또 2002년엔 미혼모 양육을 돕기 위한 ‘중간의 집’이 만들어졌고, 2008년 처음으로 보건복지가족부 예산 ‘보육·가족 및 여성’ 분야에 ‘가족 기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위기가정역량 지원’ 항목이 신설됐다. 한국 최초로 ‘시설’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미혼모가 임신, 출산, 양육에 있어서 응급 시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 예산이 마련됐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예산은 불과 1억6천만 원이었지만 양육 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라 중요하다.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의 운영상 문제들이 이슈화되거나, 크게 여론화된 적은 없었나?

알고 있는 인권 침해 사례는 많지만, 기사화된 건 적다. 엄마들이 스스로 검열하는 마음이 작동하는 듯하다. 개인에 대한 시설의 가스라이팅이라고나 할까? 다만 2008년 미혼모 당사자의 조직화 움직임이 있었는데 한 시설 원장의 방해로 유야무야됐다. 초기 조직화에 동의했던 미혼모 당사자 100여 명이 모인자리에서한시설원장이“당사자단체 하면 언론에 얼굴 나가고 당신들 부모님이 미혼모 자녀 두었다는 것도 세상에 다 알려지는데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거의 모두 조직화 참여 의사를 철회했다. 당시 한 미혼모가 왜 단체를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한 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시설은 좋아지는데 우리 삶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조직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미혼모를 돕고 싶으면 시설을 돕지 말고, 미혼모를 도우면 된다.

-현재의 정책은 미혼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지원 방향은 어떤가?

여성가족부가 11월에 내놓은 2021년 정책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보이지만 결국 다시 시설 중심 정책을 강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거점기관을 통해 양육지원액을 증액하고 임대주택 보증금 지원 등 주거 지원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입소 기준 완화 및 입소 기간 연장으로 시설의 기능을 확대하려 한다. 거점 기관을 통해 양육 지원금을 증액한들 거처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아이를 기를 수 없다. 서구처럼 아예 주거수당을 신청해 보증금뿐 아니라 월세 지원, 이사비 지원 등 다양한 주거 선택이 가능하도록 주거 지원을 다양화하고 현실화해야 하는데 세월을 거꾸로 돌리는 정책이 안타깝다.

1. 2011년 8월 4일 개정, 2012년 8월 5일 시행. 이 법의 개정은 입양인 당사자 단체뿐 아니라 입양인 권익 옹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뿌리의 집’ 및 미혼모당사자 단체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입양을 보낸 친부들의 모임인 ‘민들레회’, 한부모 단체인 ‘한국한부모연합’ 등 뜻을 함께한 정부 공무원, 국회의원 및 각계 지도자들의 공동 활동으로 이루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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