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주도한 모든 구조조정, 재벌체제 안정화에 기여”

<대우조선·아시아나항공 등 기간산업의 재벌특혜성 민간 매각 대응을 위한 정책토론회> 열려

코로나19로 한계 기업이 생기고, 대기업 구조조정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의 역할은 커져 산업은행 회장이 기업 지원을 빌미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인 쟁의행위 중지 각서를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건드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 산업은행의 주도로 대우조선의 현대중공업으로의 인수합병, 아시아나항공의 대한항공으로의 인수합병 등 기간산업에서 굵직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가운데 산업은행의 구조조정이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재벌 지배체제를 안정화하고 시장 독점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이전처럼 ‘재무적 차원의 구조조정만’을 지속한다면 재벌의 지배체제와 사업영역은 더욱 커져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국가 경제의 기초인 기간산업을 살린다는 이유로 수십조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수익성을 높여놓으면, 재벌에 헐값에 넘겨져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지난 20년 동안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기업 회생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시장 독점을 용인하게 되면 하청 및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가 심화되고 소비자, 즉 국민의 후생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함께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정의당 류호정, 배진교, 심상정, 장혜영 국회의원은 27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대우조선·아시아나항공 등 기간산업의 재벌특혜성 민간 매각 대응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한국정부의 산업정책이 조선, 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의 역량과 미래자산 가치를 훼손하고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주도한 재벌 특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기간산업의 국유화, 산업은행을 기간산업을 관리하는 국가지주회사로 전환 등을 제안했다.

재벌의 손실은 사회가 책임지고, 기업의 이익은 재벌이 가져간다

(1) 현대중공업 일가의 지배권 굳히기

이날 정책 토론회에선 최근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산업은행 주도 재무적 구조조정과 매각의 모든 과정이 대주주 즉, 재벌의 손실 방어와 특혜적 지원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대중공업 총수일가가 단돈 6,000억 원에 11조 원 규모의 알짜배기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을 손에 쥐게 됐다고 했다. 산업은행이 2000년부터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7~12조 원에 달한다. 2017년부터 대우조선해양이 흑자를 내기 시작하자 재빨리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에 팔겠다고 나섰다.

김 선임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들이는 현금은 4천억 원에서 6천억 원에 불과한데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을 현금을 받고 파는 게 아니라 현대중공업 주식과 맞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현대중공업 정몽준, 정기선 등 총수 일가는 흑자로 전환한 11조원 규모의 알짜배기 공적자금투입기업을 단 4~6천억 원에 사들이면서 동시에 산업은행이라는 국책금융기관을 후원자로 둘 수 있게 된 셈”이라고 했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은 이같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정몽준 일가의 지배권을 확실히 보장했다고 주장했다. 홍 연구실장은 “더군다나 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산업은행은 정몽준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에 올라설 수 없도록 했다”라며 “산업은행의 현대중공업 주식 처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고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 거래가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 변동 등을 초래하는 거래는 금지됐다”라고 말했다.

(2)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강화

산업은행이 지난해 밝힌 아시아나항공의 대한항공으로의 매각도 재벌특혜 의혹이 짙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으로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5대 쟁점 발제를 맡아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놓여 있는 조원태 회장 개인에 대한 특혜”를 하나의 쟁점으로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이 아니라 한진칼에 8천억 원 유상증자로 투자하는 것은 경영권 분쟁 중인 한진칼에서 경영권 분쟁에 놓여 있는 조원태 회장 개인을 지원하는 셈”이라며 “산업은행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대한항공에 직접 출자를 하지 않고 한진칼에 출자하는 것은 결국 조원태 측의 요구에 의한 것이고, 조원태 측은 경영권 분쟁에서 10%의 지분을 갖는 국책은행이 백기사로 우호지분 10%를 확보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총 1조 8,000억원이다. 대한항공은 2조 5,000억 원 유상증자를 통해 인수대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한진칼은 산은과의 계약에 따라 제 3자 배정 유상증자로 5,000억원,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3,000억원 등 총 8,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 중 산은이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이 이례적이어서 그 방식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한진칼에서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는 KCGI는 자신들도 유상증자 등에 참여해 한진칼에 투자할 의향이 있음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는데, 한진칼 주주들도 유상증자 등에 참여해 투자한다면 산업은행이 투자하기로 한 8,000억 원 전부를 부담하지 않고 일부만 부담해도 되는 것 아니냐”라며 “산업은행이 덜 부담해도 될 투자금을 더 부담하게 된 것은 아닌지 점검을 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독점기업의 탄생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은 기업의 독점 확대로도 이어져 문제다. 수주량 기준 각각 조선업 세계 1위와 2위를 차지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 시장독점이 강화되고, 본 계약을 앞둔 현대중공업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는 국내 굴삭기 시장의 과반 점유 기업의 탄생과 연결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역시 항공산업 독점 확대가 예고돼 있다.

항공산업과 관련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로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더하면 통합항공사의 점유율은 62.5%에 달한다. 국제선 점유율은 외항사를 제외하면 73.1%다. 공정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는 점유율 50%를 훌쩍 넘는 수치다.

홍석만 연구실장은 “공정위는 ‘어떤 회사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기업결합에 있어 예외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라고 기업결합 용인 가능성을 열어 주더니,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용인했다”라며 “산업은행이 시작한 재벌의 시장독점 확대조치를 공정위는 묵인하고 정부가 승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독점기업이 가뜩이나 불투명한 기업경영을 심화시키는 문제도 지적됐다. 김남근 변호사는 “이미 항공산업의 독과점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운영하는 기업 총수일가의 갑질, 횡령·배임, 밀수 등 비정상적인 경영행태가 나타나고 있는데, 기업가치를 크게 하락시키는 이런 전횡·비리가 심화되도 소비자가 다른 기업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어 비정상적 경영행태가 재현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김 변호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독과점 형태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이 더 비싼 차량값을 지불하는 문제를 예시로 들었다. IMF 당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기업결합이 예외적으로 승인됐고,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어가는 등 경쟁 완성차 업체가 자리잡기 힘든 시장이 구축됐다. 김 변호사는 “이후 한국 자동차 가격은 같은 사양의 미국 수출 자동차에 비해 20~30% 비싸 수출된 현대·기아차량을 역수입해 판매하는 업체가 생기는 등 소비자 후생이 크게 후퇴했다”라며 “세타-2 엔진결함에 대한 리콜 사건에서는 현대차가 미국에선 즉각 리콜을 하면서도 한국에서는 2년이 지난 뒤 리콜을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노동자 패싱하는 산업은행 구조조정

이날 정책토론회엔 대우조선지회, 아시아나항공노조의 관계자들도 나와 노동자 현실을 증언했다. 두 기업의 노동자들은 매각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김종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대외협력실장은 “산업은행 아래에서 실질적인 공기업이었거나, 장기적인 경영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조건 속에 있었다면 지금의 대우조선은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20년간 수없이 던져왔다”라며 “지난 20년은 구조조정 대기상태였다”라고 말했다.

김 대외협력실장은 “대우조선이 천문학적 흑자를 달성할 땐 경영진과 산업은행이 개입된 부정과 비리가 있었다. 반대로 대우조선이 어려워지면 경영진과 산업은행은 오로지 금융적 측면만을 보며 책임을 묻는 구조조정에만 혈안이 됐다”라며 “급박한 매각이 진행되면서 2년 이상의 수주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공정위 기업결함심사와 경쟁국 기업결함심사 등으로 수주 활동에 심각한 제약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우조선은 지역 중소 기자재업체를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자체적 기자재 자회사를 갖고 있는데 현대중공업으로 매각시 경남, 부산 지역 엔진부터 대부분의 기자재 벨트가 몰락할 것”이라며 산업과 지역에서 연쇄적인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규덕 아시아나항공노조 위원장은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추후 아시아나항공을 건실한 기업으로 만든 후 재매각하겠다는 말을 뒤엎고 두달여 만에 밀실야합으로 대한항공으로의 매각을 결정했다”라며 “고정비 절감을 위하여 노후 항공기 처리가 급선무로 대두되고 있으며, 노후 항공기 처리는 항공기 한 대 당 필요 인력이 책정돼 있으므로 인력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 위원장은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에서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언론을 통해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양 항공사의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김남근 변호사도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 인수의 정당성의 근거로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코로나19 항공산업 위기로 인한 아시아나 고용유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원태 이사의 한진칼 투자 요구에 응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구체적으로 한진칼이나 조원태 회장이 아시아나 종업원들의 고용유지에 관한 각서나 이를 위반한 경우 위약금 지불 등을 협약했다는 증거는 없고, 다만 인수 후 통합관리(PMI)의 일환인 조직융합 관리 계획을 수립할 때 이를 고용유지 방안으로 다뤄 이후 이에 대한 이행실적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즉, 구체적인 고용유지 보장이나 각서는 없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고용유지를 담보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에 홍석만 연구실장은 “수십, 수백조원의 정책자금을 직접 다루며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기관인 산업은행은 재무적 구조조정의 문제와 논란을 피해 나갈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고용 중심의, 생산의 사회적, 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구조조정의 목적과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홍 연구실장은 ‘노동(고용)과 환경주도 국영화(Labor&Eco-led nationalization)’를 강조하며 “채권자들의 빚을 갚아주고 대주주의 지배권을 안정화시켜 주는 재무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주주와 채권자의 책임을 물어 부채를 일소하고 소수의 재벌이나 대주주의 지배가 아닌 국가와 사회가 기간산업을 지배하는 지배구조로 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 또한 탄소발생을 없애고 친환경적 방식으로 산업이 운영될 수 있도록 개발과 투자에 탄소배제적이고 친환경적 요인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모인 다른 토론회 참가자들도 산업은행이 주도한 재벌 특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기간산업의 국유화, 산업은행을 기간산업을 관리하는 국가지주회사로 전환 등을 제안했다.

이승철 사회변혁노동자당 집행위원장은 "현행법으로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공운법상의 공기업 혹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있다. 매년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통해 이뤄지며,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건을 상정토록 하고 있다"라며 "공공기관 지정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일이 아니며 수서고속철도(주)의 경우 2016년 민간기업으로 운행을 개통했으나 2018년 기타공공기관에서 시장형 공기업으로 변경지정됐고 (주)공영홈쇼핑도 2018년 기타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된 바 있다"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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