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폭행으로 본 아파트문화

[1단 기사로 본 세상] 주거공간 분리로 표 챙긴 50년 개발동맹 넘어 지속가능한 서울을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해 6월 경기 군포의 한 아파트에서 주차위반 차량에 딱지를 붙였다는 이유로 입주민인 유치원 원장에게 욕설과 수차례 폭행을 당한 50대 경비노동자가 지난 1월 13일 뒤늦게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1월 초부터 사경을 헤매고 있다.

지난해 폭행 당한 뒤부터 그는 아파트에 일하러 올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힐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떻게 해서든 일하고 싶었던 그는 불면증과 우울증을 얻어 결국 그 달 말에 일을 그만뒀다.

  경향신문 1월 15일 10면(왼쪽)과 동아일보 1월 15일 14면.

퇴사하고도 계속되는 충격과 공포로 그는 지난해 7~9월까지 다섯 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외상성 신경증’, ‘정신적 쇼크’ 등의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한 달간 입원도 했다. 하도 억울해 지난해 9월 경기도노동권익센터의 도움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평소 지병도 있어 산재 승인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월 13일 그의 산재를 승인했다.

그를 진료한 병원이 작성한 ‘심리학적 평가 보고서’가 결정적이었다. 보고서엔 ‘주의 집중력이 유의미하게 저하돼 있고, 불안정한 정서 상태로 외부 자극에 정신을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적혀 있었다.

아파트 입주민과 지방정부의 노력으로 그는 갑질 피해 아파트 경비노동자 최초로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정작 1월 초부터 정신을 잃었다. 가족들이 노모가 있는 전남 고흥에 요양하라고 보냈는데, 일하고 싶다며 올라온 그는 결국 올해 초 지병까지 도져 집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최근 수원고법도 그의 심리학적 평가보고서를 바탕으로 지난 7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했던 유치원장의 폭행치상 혐의에 대해 그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유치원이면 교육기관인데 거기서 원장을 하는 이가 입에 담지도 못할 쌍욕을 해댔다. 원장은 그에게 “네 주인이 누구냐”며 폭언했다.(경향신문 2021년 1월 15일 10면)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인권유린은 유치원장 하나를 악마로 만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비단 경비노동자 뿐이 아니다. 아파트를 둘러싼 이 야만의 권력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앞날은 없다. 80년대까지 주거공간의 왕따였던 아파트가 어떻게 권력을 증식해왔는지 되돌아보고, 바벨탑처럼 공고해진 아파트 권력구조를 해체할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그는 어렵사리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지난 1월 11일엔 같은 경기 군포에 있는 또 다른 아파트에서 30대 입주민이 50대 경비노동자를 폭행했다.(동아일보 2021년 1월 15일 14면) 경비노동자는 미등록 차량 조수석에 타고 온 입주민에게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입주민은 차에서 내려 경비노동자 얼굴을 때려 코뼈를 부러뜨렸다. 맞은 경비노동자가 도로에 나뒹구는 영상이 MBC 뉴스에 그대로 방영됐다. 그런데도 출동한 경찰은 이를 지켜보고도 입주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는커녕 입건조차 않고 인근 호텔로 데려갔다. 경찰은 뒤늦게 조사에 들어갔고, 가해자는 변호사를 대동해 며칠 지나서야 경찰에 나왔다. 유치원장만 비난한다고 아파트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음을 반증하는 사건이다.

  한국일보 1월 22일 12면 머리기사.

1970년 4월 8일 이른 아침 장난감처럼 와우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자 시인 김광섭은 “와우 아파트 한 채가/ 무너지자/ 다른 아파트가/ 나두 나두 하면서/ 부들부들 떠는 바람에/ 시민들이 놀라서/ 삽시간에 서울이 없어졌다”(와우 아파트)고 했다.

1966년부터 1970년 와우 아파트 붕괴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박정희의 육사 1년 후배 김현옥에 얽힌 일화가 있다. 하루는 서울시 공무원이 김현옥 시장에게 “시장님, 우리는 공사기술이 부족해 평지에 아파트 짓기도 힘든데, 왜 아파트를 높은 산 위에다 짓습니까?”라고 물었다. 김현옥은 “높은 곳에 지어야 각하께서 청와대에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당시엔 높은 건물이 없어 청와대 앞뜰에서 보면 와우산이 보였다. 이런 자들이 국무위원으로 나라를 이끌었고, 아직도 이런 자들을 숭배하는 집단이 국회의원의 1/3이 넘는 나라다.

작가 최인호는 단편 ‘타인의 방’(1972년)에서 아파트와 인간 소외를 다뤘다. 최인호는 평생 아파트를 ‘집’으로 치지 않았다. 김혜순 시인은 아파트를 이렇게 조롱했다. ‘옆집 남자가 죽었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그는 죽어 있고/ 나는 살아 있다 그는 죽어서 1305호 관 속에 누워 있고/ 나는 살아서 1306호 관 속에 누워 있다.’

신석상은 1983년 한국소설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 ‘아파트 공화국’에서 “수목으로 꽉 들어차야 할 도시의 공간에 아파트라는 괴물이 숨 막힐 듯 늘어만 가고 있다. 시멘트 벽으로 차단된 이웃, 굳게 닫힌 철문은 비윤리와 퇴폐나 황금만능주의가 낳은 사고의 현장이 되고 있다. 주거의 목적이 아닌 재산증식의 수단인 된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특히 아파트 운영관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비리와 병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고 했다.

문학은 아파트가 권력의 공간이 될 것임을 날카롭게 예견했고, 그 예언은 사실이 됐다. 21세기 들어 아파트는 숭배의 대상이 됐다.

여성학자 고 이효재 선생이 1971년 서울의 아파트 거주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만족한다’는 응답은 채 2%가 안 됐다. 사람이 살만한 집이라고 안 여겼던 아파트가 50년 만에 부의 상징으로 둔갑하는 동안 한국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21세기 들어 한국의 아파트를 관찰한 두 여성의 글이 있다. 작가 김윤영이 2009년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내 집 마련의 여왕’과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2007년에 쓴 ‘아파트 공화국’이 그것이다. 소설과 연구보고서라는 서로 다른 형태로 출판된 책이지만, 두 저자 모두 상상 속의 아파트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 글을 썼다.

김윤영 작가는 ‘내 집 마련의 여왕’에서 아파트 광풍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욕망의 바벨탑 오르기”라고 했다. “요샌 지역구 국회의원이 얼마나 일 잘했나 보는 기준이, 그 동네 아파트값이라고 하더군요”라는 대사는 모든 권력이 아파트에 집중돼 저항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인간의 항복 선언 같다.

하지만 소설은 집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동산 경제를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상처 받은 이들을 감싸 안는다. 이 과정에 집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가 얽힌다. 소설은 부동산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서 약자를 보듬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공선의 가치를 강조한다. 작가는 2009년 12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시대 변치 않는 꿈은 여전히 내 집 마련”이라며 “내 문제를 고민하는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반면에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은 냉정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 아파트, 특히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를 관찰했다.

줄레조는 ‘8장 단지 안의 사회적 관계’에서 “특히 ‘경비 아저씨’들의 중대한 역할은 강조할 만하다”고 했다. 줄레조는 “이들(경비노동자)은 주민들의 개인적인 여러 일을 돕거나 집안의 설비를 고친다. 장바구니를 날라주고, 화분을 옮기고, 아이를 봐주고, 손가락을 다친 아이에게 반창고를 붙여주고, 자전거를 옮기는 아이를 도와주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은 경비원 이상이었다. 그들은 봉사를 의무로 저임금에 고용된 하인들”이라고 썼다.

줄레조는 이 모든 일을 경비노동자에게 주문하는 기이한 현상을 ‘하인’이란 단어로 잡아냈다. 명백히 경비업법을 위반한 한국 아파트 문화의 불법을 포착했다. 지난해 군포와 1월11일 김포에 있는 아파트에서 일어난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방인 줄레조는 몇 가지 신선한 생각을 던졌다.

한강변을 따라 늘어선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보고 우린 부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줄레조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 흉물스런 군사시설로 봤다.

프랑스에서 대단지 아파트는 불품없고 질 낮은 주거환경을 뜻하는데, 반대로 서울의 아파트단지는 고층화 고급화, 첨단기술까지 접목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한다. 졸레조는 단지형 아파트는 적어도 앵글로색슨이 바라는 주거형태는 아니라고 했다.

줄레조는 ‘임대’에 기초한 프랑스의 아파트 정책과 ‘소유’에 기초한 한국의 아파트 정책의 차이를 지적했다. 한국 아파트단지의 엄청난 성공 이면엔 아파트에 ‘사로잡힌’ 중산층의 욕망이 있다. 그 뒤엔 욕망을 부채질해온 국가권력이 숨어 있다.

줄레조는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아 아파트가 불가피하다’는 개발론자들의 논리를 부쉈다.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아무리 도시로 인구가 집중해도 단지형 아파트는 없다. 서울에서 밀도가 높은 구에 아파트가 더 많은 것도 아니다. 서초구 강남구 노원구는 주거형태의 60~80%가 아파트지만 인구밀도는 오히려 서울의 평균이 안 된다. 인구밀도 높다고 고층 아파트가 필연인 건 아니다.

결국 단지형 아파트는 욕망이 몰리는 곳에 들어설 뿐이다. 이건 주거정책이 아니라 투기일 뿐이다.

서울의 아파트단지들은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가 재벌과 손잡고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면서 만들어 낸 한국형 발전모델의 ‘압축적 표상’이다.

한국의 권위주의 국가는 인구증가를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을 경제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다.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고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획득했다. 결국 이런 상호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과 중간층 일반이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다.

김윤영의 희망적 결론과 달리 줄레조는 비극을 예고한다.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머지않아 하나의 중요한 도시문제가 될 것이다. 건물 수명을 30년으로 볼 때 70년대 아파트단지의 재건축이 이미 서울에서 진행됐다. 앞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대건설로 탄생한 모든 아파트도 재건축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 목동은 벌써부터 난리다.

재개발로 하층민을 몰아낸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 좀 더 부유한 계층이 이주해 오는 탈바꿈을 반복한다. 주택 시장 자유화로 호화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늘었다. 스파와 골프, 피트니스, 대형쇼핑몰이 들어선 아파트단지에서 서울의 중상류층은 아파트를 무기로 점점 자신들만의 요새를 만들었다. 이들은 ‘외부인 출입제한 주거지역’(게이티드 커뮤니티)으로 발전하고 있다. 총 든 경비원이 서 있는 남아공 백인 전용 거주지나 미국 상류층 거주단지처럼. 이런 퇴행적 발전은 주거 형태를 획일화하고 점점 더 파편화된 도시를 만들어 낸다.

줄레조의 보고서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빠뜨린 게 있다.

한국의 전세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해 조사 때 아파트 소유자와 세입자를 분리해 내지 못했다. 또 1993년 한국을 첫 방문한 줄레조는 1996년부터 한국의 아파트단지를 연구해 2003년 박사 논문을 썼고, 2004~2005년 다시 한국을 방문해 재조사했다. 그런데도 1998년 외환위기(IMF) 전후의 아파트문화의 변화를 포착해내지 못했다.

대단지 아파트의 출현은 재개발을 일상화했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되는 놀라운 일을 만들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지속 불가능한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 것이다.

여전한 난개발을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발화하는 서울시장 후보가 줄을 선 오늘, 지속가능한 서울은 난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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