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추동한 EU와 영국의 실패

[INTERNATIONAL2] 유럽통합 성격의 변화와 영국 경제정책 수립의 역사

올해 1월 1일, 브렉시트 협상이 막을 내리며 영국이 유럽연합(EU)의 품을 완전히 떠났다. 현재까지도 주류언론은 이를 EU의 ‘선한’ 질서에 대한 영국의 무모한 도전이라거나 영국 노동자의 ‘자충수’ 쯤으로 보도한다.

과연 브렉시트는 영국 노동자들의 반동일까? 그동안 브렉시트의 배경을 다룬 글들은 공통으로 신자유주의에서 소외된 노동자 계급의 분노와 인종주의적 혐오를 직접적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영국 노동자의 분노라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치·사회·경제적 맥락은 부재하다. 이 때문에 유로 나르시시즘이나 노동자의 무지로 개별 사건들이 해석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본 지면에서는 유럽통합 성격의 변화와 영국의 경제정책 수립의 역사를 살펴보며 그 맥락을 통해 사건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려 한다.

[출처: https://tribunemag.co.uk/]

1970년대 경제 위기와 유럽 통합의 성격 변화 : 통화주의적 유럽통합

EU 통합의 목적은 대표성을 지닌 의회를 통한 정치와 재정 통합, 그리고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연방국의 건설이었다.(1) 그러나 1970년대 경제 위기는 유럽통합을 정치적 측면보다 경제적 통합에 주목하게 했다. 이에 따라 연방주의 계획은 좌초됐고 유럽 단일 시장과 단일 통화 논의로 빠르게 전환됐다. 특히 유럽통합은 화폐 체제가 정치를 규정하는 과정이 된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 달러의 과잉 유동성과 국제화폐로서의 불안정성 문제가 대두했고, 이에 따라 유럽 공동화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후 베르너 플랜(단일통화와 유럽중앙은행 제도를 포함한 계획)(2)에 따라 유럽통화동맹(1994) 출범에 이어 유로화(2002)가 도입됐다.

그러나 유럽통합의 전환에 따른 통화 통합정책은 부작용을 수반했다. 무엇보다 회원국 간 경제적 격차가 문제였다. 통화 단일화를 위해 통화 동맹에 참여한 국가들은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통화가치를 상승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고이자율에 토대를 두고 화폐량을 조절해야 했으며 재정적자 폭까지 감소시켜야 했다. 결과적으로 상대적 경제 약소국들의 산업경쟁력은 약화했지만 그들의 자산 시장은 상승했다. 즉, 단일통화 체제 출범은 개별 국가의 독자적 금융정책을 제한했다.

결국 개별국가들의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한 수단은 노동력의 평가절하, 즉 임금삭감밖에 없었다. 재정적자 확대와 부채 증가가 안정성장협약에 위반되기 때문에 경기회복을 위한 독자적 재정정책에도 제약이 뒤따랐다.(3)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며 국가 간 경제력 차이의 해소를 추구한 것이다.(4)

유럽과 영국 상생 : 영국의 금융체제 구축과 제조업의 쇠퇴

유럽은 이 같은 유럽 통합 과정에서 영국을 주목했다. 영국이 가입 의사를 한 차례 거부했지만, 유럽엔 당시 지역뿐 아니라 세계적 달러 시장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던 영국의 자본시장이 필요했다. 결국 영국 금융자본과 유럽 대륙 지배계급 사이의 상호 간 필요성이 영국의 EU 참입을 성사시켰다.

영국의 금융화 체제는 고 파운드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제조업 분야의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 그리고 제조업 노동자들의 희생에 따른 것이다.(5) 70년대 유럽 달러 시장의 중심이던 영국의 세계적 금융체제는 성장을 거듭해, 대처 시기 금융빅뱅 등과 같은 과감한 금융 드라이브를 통해 완성됐다. 영국의 제조업-금융업 전환기가 된 1976년 재정위기와 IMF 구제금융 시기 등장한 대처 총리는 제조업 부흥보다 금융 제도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정책으로 일관했다.(6) 고 파운드를 유지하면서 세율 감면과 자본이동 자유화를 통해 런던을 세계 금융허브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유로존 가입을 포기했다. 투기에 따른 파운드 평가절하와 영국 금융산업의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자율 통제의 영란은행 위임 등 자본시장 개혁은 블레어와 브라운 노동당 정부하에서 더욱 가속화했고, 이 시기 영국의 금융 GDP 성장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영국의 금융체제는 자본이동과 금융거래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파운드화 평가절상을 통해 영국으로의 자본 유입을 유도해 완성된 것이었다.

반면 고 파운드화 정책은 전통적인 제조업의 쇠퇴를 동반했다. 결국 GDP 제조업 비율은 반 토막이 났으며, 노동자 임금 억제 및 삭감, 나아가 실업자의 폭증으로 이어졌다. 특히 잉글랜드 북부 제조업 지역의 처지는 날로 처참해졌다.(7) 물론 대처-블레어-브라운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적 금융개혁은 영국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복지 수당을 통해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동유럽과 남유럽의 값싼 노동력 유입을 유도하며 저항하는 노동자의 빈자리와 임금상승을 관리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대륙의 노동력을 유입해 자국 금융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EU를 통해 역내 영국 금융시장의 패권 강화를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미국금융위기에 따른 유럽과 영국 관계의 균열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유럽-영국 상호 공존에 균열을 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런던의 유럽 투자은행들이 무분별하게 투자했던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으로 이어지며 그 위기를 유럽으로 확산시켰다. 이에 투자은행과 기업들의 파산 규모는 커졌고 실업률은 계속 높아졌다. 무엇보다 유럽금융위기의 결과, 영국과 유럽을 상존하게 만들었던 토대의 약한 고리가 드러났다.

경제 위기에 유럽은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경기침체로 세수가 감소하며 재정수지가 악화했고, 이어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가 급속도로 증가해 국가 부도에 내몰렸다. 하지만 독자적 금융정책을 구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EU를 이끄는 독일과 프랑스에 의지하고, 채무 조건으로 그들의 요구를 듣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게으른 돼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이 위기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노동자들에게 붙여진 별명도 다르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양적 완화를 통한 경기회복을 가늠했지만, 회복 양상은 양극화돼 나타났다. 이를 보완할 재정정책은 유럽연합의 안정성협약에 제한돼, 실증적 경기회복 수치와 국민의 실질적 삶의 질 회복 간에 간극이 발생했다.(8) 영국 정부는 금융기업에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한편 적극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도 실업률은 크게 상승했다.(9) 특히 대처 시대 제조업 소외정책으로 완성된 잉글랜드 남북 간의 격차는 실업률과 위기 회복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럼에도 당시 캐머런 보수당 정부는 재정 확대를 통해 소외지역을 지원하기보다 긴축을 택했다. EU 회원국이었던 영국은 안정성장협약으로 재정적자는 GDP 대비 3% 이내, 정부 부채 총규모는 GDP 대비 60%로 제한돼 있었다. 총부채 규모가 한계를 넘어선 상태여서 재정확장정책을 선택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재정 회복을 위해 실업수당이나 복지수당 등을 축소했다. 긴축재정의 악순환이었다.(10) 잔인한 건 구조적 소외계층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배제의 선동이었다. 캐머런은 정책의 정당성을 위해 배제된 노동자를 ‘노력 없이 보상을 바라는 세금 도둑’이라고 불렀다. 대처가 광부노조를 비롯해 그의 정책에 대항하는 노조를 ‘복지병자’라고 부르며 복지예산을 급격히 삭감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즉 영국 정부는 영국 제조업과 제조업 노동자를 사실상 포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영국 노동자 계급과 포퓰리스트 극우파와의 만남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킨 건 금융자본이었으나 그로 인해 고통받는 건 제조업 노동자였다. 게다가 긴축재정의 개혁대상인 복지체계는 노동자의 삶을 보전하기 어려웠다. 노동자는 산업 구조적으로 배제됐지만, 빈곤의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갔다.

주류정치가 외면한 노동자를 자극한 것은 바로 포퓰리스트와 극우 정당이었다. 현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을 필두로 한 보수당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이민자와 EU를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영국독립당/브렉시트당 등 극우파 정치인들은 반이민과 인종주의, 서구(기독교)문화를 앞세워 노동자를 선동하며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 노동자가 자신의 고통에 의문을 품자,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이민자들이 문제의 원인이라며 그 실체를 눈앞에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이 EU라고 선동했다. 이로써 극우파는 2014년 26.77%(영국독립당)(11), 2019년 31.6%(브렉시트당)(12)의 지지를 얻었으며, 2015년 총선에서도 세 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얻어냈다. 궁핍하고 불안정한 삶에 놓인 이들을 이용한 정치적 마케팅이었다.

아울러 주류 자유주의 지식인 사회는 그들을 지지한 노동자를 저소득·저학력·백인 노동자의 무지, 인종주의적 편견, 세계시민주의적 성찰 부족 등의 결과로 프레이밍했다.(13) 이는 지난 50여 년에 걸쳐 형성된 영국 노동자계급의 문제를 단순히 무지와 편견의 문제로 단순화한 것이었다. 미디어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이미지를 그저 불만 많은 사회 부적응자로 표상화했다. 그러나 그들의 ‘유로 나르시시즘’으로 영국 노동자 계급의 처지를 더 미화할 수도,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금융화된 EU의 비판과 함께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레미 코빈 전 노동당 당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며, 선거에서 EU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영국 정부가 긴축재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EU 잔류의 유일한 조건은 유로존의 개혁임을 밝혔다. 그러나 코빈은 EU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유럽 균열이 국가 간 대립과 경제적 피해를 일으킬 것이란 막연한 불안감과 유로주의의 환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시도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결국 친 EU 자유주의 인사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됐다.

나가며

이제까지 영국 노동자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배경으로 유럽통합의 성격 변화와 영국의 경제체제 금융화 과정을 살펴봤다. 탈정치화된 유럽통합 계획과 탈산업화 금융화된 영국경제체제, 그런 영국과 유럽의 협력은 결국 약소국과 노동자의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영국은 경제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금융산업에 재정을 투하하는 한편 긴축재정과 복지축소를 통해 영국 노동자의 추가적 희생을 강요했고, 그들의 삶을 악화시켰다.

그럼에도 주류 정치인들은 그 책임을 노동자의 게으름과 EU 협정을 통해 들어온 이민자에게 전가해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포퓰리스트와 극우 정당은 EU와 이민자를 통해 형성된 불만을 선동해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 냈다. 나아가 유로 나르시시즘에 빠진 지식인들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분석하기보다 편견과 무지의 집단으로 그려내며 세계 시민적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훈계하기 바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 보자.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영국 노동자들의 무지의 소산이었을까? 극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선동한 결과였을까? 혹은 지금의 처지에서 그들이 선택한 최선은 아니었을까?

[각주]
(1) Bulmer, Simon (2020). The member states of the European Unio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 European Commission (Oct 1970), Report to the Council and the Commission on the realisation by stages of Economic and Monetary Union in the Community - "Werner Report" https://ec.europa.eu/economy_finance/publications/pages/publication6142_en.pdf
(3) 유로화 통화동맹을 위해 통화가치를 통일해야 했고 이를 제도적으로 규율한 것이 안정성장협약이다. Stability and Growth Pact https://ec.europa.eu/info/business-economy-euro/economic-and-fiscal-policy-coordination/eu-economic-governance-monitoring-prevention-correction/stability-and-growth-pact_en
(4) Godley, Wynne (2012). "Maastricht and all that." The Stock-Flow Consistent Approach. Palgrave Macmillan, London. 189-193.
(5) Todd, S. (2014). The People: The Rise and Fall of the Working Class, 1910-2010. Hachette UK.
(6) Hall, S. (1988). The hard road to renewal: Thatcherism and the crisis of the left. Verso Books.
(7)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The North of England Economic Indicators, https://webarchive.nationalarchives.gov.uk/20160105200635/http://www.ons.gov.uk/ons/rel/regional-trends/regional-economic-indicators/north-of-england-economic-indicators/rep-north-of-england-economic-indicators.html
(8) Hazeldine, T. (2017). Revolt of the Rustbelt. New Left Review, (105), 51-79.
(9) 2008년 5.2%에서 2012년 8.4%로 실업률이 상승(https://www.ons.gov.uk/employmentandlabourmarket/peoplenotinwork/unemployment/timeseries/mgsx/lms), 실업률을 지역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런던과 대표적 공업지대인 요크셔주를 비교해 볼 때, 양자간 증가 추이는 약 두배로 나타난다(https://www.ukdataservice.ac.uk/get-data/themes/labour.aspx).
(10) 기초자치 단체별 삶의 질을 수치화 한 연구를 살펴보면 빈곤율, 교육 건강 등 거의 모든 기준에서 북부에 속한 기초자치단체가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Dorling, Danny. "Persistent north-south divides." In The economic geography of the UK (2010): 12-28.).
(11) https://www.europarl.europa.eu/elections2014-results/en/country-results-uk-2014.html
(12) https://www.bbc.com/news/topics/crjeqkdevwvt/the-uks-european-elections-2019
(13) P. Anderson, “Why the System Still Win”, Le Mond Diplomatique (March 2017) https://mondediplo.com/2017/03/02bre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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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 보자.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영국 노동자들의 무지의 소산이었을까? 극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선동한 결과였을까? 혹은 지금의 처지에서 그들이 선택한 최선은 아니었을까?

  • 김양권

    노동자계층의 무지와 무능력에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다만 첨언하고 싶은 것은 영국의 경제정책이 1970년대말 대처리즘 이후 금융업 및 기타 서비스업 지원 강화가 진행되면서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쇠퇴 지속, 금융업 등 서비스업 비중 비대화가 진전되었음.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런던에 집중된 금융 및 서비스업은 소득증가의 혜택을 누렸지만 지방의 제조업 종사 노동자계급은 점점 가난해 졌습니다. 이러한 불만이 국민투표에서 표출되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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