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서 토슈즈가 해지도록 발레”, 혹사 논쟁을 부르다

[미디어택] 개인의 ‘열정’, ‘노력’, ‘투혼’만을 강요하는 사회


“대한민국을 위로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우울증에 빠진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물해준다던 KBS 〈우리, 다시: 더 발레(The Ballet)〉(12월 24일)가 ‘무용수 혹사’ 논란에 휩싸였다.

KBS 〈우리, 다시: 더 발레(The Ballet)〉는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대한민국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며 KBS와 국립발레단이 공동 기획·제작한 프로그램으로, 국내 주요 명소 7곳을 찾아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공연을 펼치는 것으로 기획됐다.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은 이번 프로젝트와 관련해 “고난, 극복, 희망, 꿈이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작품과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염전 노예’, ‘여교사 성폭력’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전남 신안이 ‘명소’라는 타이틀과 ‘희망’이라는 키워드와 적절하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티저 영상이 공개되고 나서는 곧바로 ‘무용수 혹사’ 논란이 벌어졌다. 이 ‘추운 겨울’ 발레복을 입고 굳이 ‘야외공연’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KBS는 “염전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토슈즈가 해지도록 뛰어오른 발레”라면서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도전”, “한계를 넘다”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시청자들은 추운 날씨에 얇은 발레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염전과 아스팔트 위에서 토슈즈를 신고 발레를 하는 모습을 위험하다고 느꼈다. 여러모로 기획에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KBS·국립발레단에 쏟아진 비판, “열정이 아니라 학대다”

발레는 다양한 동작을 정확히 구사해야 할 뿐 아니라, 정적인 동작을 포함하고 있어 그 자체로 몸을 혹사한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무용수들은 관절 부위 통증을 달고 산다. 그런 무용수들에게 공연장이 아닌 염전과 아스팔트에서 토슈즈가 해지도록 춤을 추도록 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방송을 보면, 무용수들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춤을 추느라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것을 두고 몇몇 언론매체들은 ‘부상 투혼’이라고 기록했다.

KBS 〈우리, 다시: 더 발레(The Ballet)〉 티저 영상에는 “열정이 아니라 학대다”, “사람 몸 망가지는 게 투혼이냐”, “아스팔트 위에서 토슈즈 신고 뛰다가 충격 때문에 발목 염좌 오면 산재는 해주나?”, “고문 같은 공연은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즐겁지 않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안전하게 공연하는 모습을 원하지 이런 1990년대식 ‘노오력’ 신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비난 댓글들로 도배됐다. 이 같은 문제제기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것이 2020년에 볼 기획인가”라는 말이다.

이 같은 비판에도 국립발레단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단원에게 모두 동의를 받아 진행했다”고 해명해 시청자들의 화만 키웠다. 단원 선발권을 국립발레단에서 가지고 있는 불평등한 관계에서 ‘동의’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발성을 띨 수 있느냐는 얘기다. 결국, 해명조차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유사한 논란들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우리 사회에 돌풍을 일으킨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는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20대를 위해 던지는 김난도 교수의 따뜻한 멘토링”이라고 책을 소개했지만, 청년들로부터 ‘현실성 제로’, ‘영양가 없는 위로’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청년들은 물었다. ‘청춘이기에 아픈 것이 왜 당연한 일이냐’고 말이다. 2014년 6월 폴킴은 ‘Ex’라는 곡을 통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누가 그랬어. 어이가 없어”라는 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즈음 ‘열정 페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미용·패션 등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노동 현장에서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저임금 논리가 통용됐다. 스타트업에서는 ‘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희생하는 게 맞다’, ‘회사가 크면 그때 더 챙겨주겠다’라며 고강도 노동을 강요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니까’라는 논리도 있다. 대체로 진보진영 내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놓여 있는 현실이다. ‘열정 페이’는 이런 인식들이 모여서 생겨난 말이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2015년 11월에는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주연 박보영·정재영)가 개봉했다. ‘노오력’, ‘20대 개새끼론’은 어떤가.

개천용 불가시대, 최소한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한국 사회는 이처럼 청년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한다. “노력이 부족하다.”, “눈높이를 낮춰야.”, “젊으니까 아픈 것쯤은 견뎌라.” 하지만 이 같은 말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는 사회구조와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지워버린다. 미디어가 보여준 청년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청년이라면 열정을 가져 도전해야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해왔다. 청년의 아픔을 정당화하는 콘텐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유사한 논리가 공영방송 KBS에서 재연된 것이다. 기획 의도만 좋다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상관없나. 이런 발상이 아직도 가능한 것인지 솔직히 놀랍다. 무용수들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미래를 걸면서까지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나.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이 왜 염전과 아스팔트여야 하나.

최근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 페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개천용’이 많이 거론된다. 한국 사회가 말해주는 건 ‘더 이상 개천용은 없다’는 사실이다.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최소한 명문대라도 가려면 첫 번째로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재력을 가진 조부모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변했고,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열정’, ‘노력’을 강요하기 전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열정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성공이 뒤따라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말이다. 개천용이 가능한 때 살았던 세대와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다르다. 개천용은커녕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청년들에게 쉽게 던질 수 없는 말들이 바로 ‘도전’, ‘열정’, ‘노력’인 것이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라떼는 말이야’라고 꼰대질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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