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코로나 백신 보급 불평등에 일조”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공동성명 내고 한국 정부의 ‘TRIPS 유예안” 지지 촉구


부유한 국가뿐 아니라 중·저소득 국가들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유예를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들의 사재기 등으로 코로나 백신이 불평등하게 보급되는 가운데, 한국 사회가 이를 제재하기 위한 제안에 침묵하면서 국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3일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전 세계 시민이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TRIPS 유예안’을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는 4일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TRIPS 이사회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Trade-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이하 TRIPS)’ 논의를 앞두고 한국 정부에 코로나 백신의 공평한 보급을 위한 입장을 촉구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2일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의료제품의 특허권을 일시 유예하자는 제안, TRIPS 협정 유예안을 제출했다. 이 유예안이 채택되면 코로나19 예방, 억제, 치료에 관하여 위의 조항에 관한 의무는 유예되고, 특허 독점은 대폭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의료단체들에 따르면 이 유예안에 대해 이집트, 케냐, 볼리비아, 파키스탄을 비롯한 100여 개 국가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에이즈계획(UNAIDS),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 등 국제기구 및 수백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지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기술개발 독점에 유리한 미국, 영국,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들이 유예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히거나 침묵하면서,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의 WTO TRIPS 이사회에서 유예안 채택은 미뤄졌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날 성명에서 “한국 정부 역시 계속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말로는 국제무대에서 수차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국경을 넘은 협력’과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의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의 공평한 보급’을 주장하지만, 실제 이런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코로나19 의료기술이 공공재로 취급되지 않고 자국 우선주의와 국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을 방조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미 특허 독점으로 인해 백신 구매 계약도 민간제약회사 우위로 매우 불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소득 국가들은 이미 자국민들의 2~5배에 달하는 백신 구매계약을 했지만, 저소득 국가들은 단 한 건의 직접 계약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미국은 자국 제약사 길리어드가 생산한 코로나19 임시치료제 렘데시비르 3개월 생산 물량을 거의 독점한 바 있다. 특허로 인해 특정 회사만 이를 생산·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라며 “최근 유럽연합도 유럽에서 생산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백신 또한 특허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별 백신 접종의 불평등은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위험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감염병 위기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라며 “결국 선진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위해 백신구매 경쟁을 벌였지만, 백신을 접종하고도 감염병 위기에 계속 노출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WHO는 선진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세계가 ‘파멸적인 도덕적 실패’에 당면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달 18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18일 개막한 제148회 WHO 이사회에서 최소 49개의 고소득 국가가 지금까지 3900만 회 분량 이상의 다양한 백신을 접종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최빈국 중 한 곳에선 2500만 회분도, 2만5000회분도 아닌 단 25회분만 투여됐다”면서 “세계가 파멸적인 도덕적 실패 직전에 와 있으며, 실패의 대가는 극빈국 국민의 삶과 생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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