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력난의 교훈

[녹색 스트라이크]

  휴스턴의 도심은 전력 공급이 이뤄져 밝은 모습을 보이는 반면, 주변 지역은 전기가 끊겨 어두운 모습이다. 휴스턴 주민들은 밤에 사용되지도 않는 공간은 밝히고, 거주공간은 전력을 중단한 것에 분노했다.
[출처: https://houston.culturemap.com/news/city-life/02-16-21-downtown-lights-mayour-sylvester-turner-lina-hidalgo-power-down/]

지난 2월, 미국 텍사스주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영하 20도의 혹한과 대설로 전례 없는 난리를 겪었다. 한겨울에도 평균 온도가 10도 내외였던 지역을 덮친 이상 기후는 에너지 시스템과 상수도, 필수재 공급 등의 생활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영하의 날씨를 대비하지 못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은 강추위에 얼어붙어 텍사스에서만 500만 명이 정전을 겪었다. 수도관이 동파돼 수천만 명의 물 공급이 끊겼고, 동네 가게부터 대형 슈퍼마켓 진열장이 텅 비어 생필품 공급에 곤란을 겪었다.

전례 없는 혹한에 난방마저 안 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체온증으로 죽어갔고, 추위를 피하려고 실내에서 숯을 태우거나 가스 자가발전기를 돌리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수십 명이며, 완전한 파악까지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는 당국의 발표를 고려하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 후 평균 온도로 돌아오며 눈이 녹고 전기도 들어왔지만, 여전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풍부한 에너지를 자랑하는 텍사스에서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가장 먼저 비판을 받았던 것은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와 이에 따른 규제 완화였다. 신자유주의 확산 속에서 1999년, 텍사스는 발전과 송·배전까지 민간에 넘기는,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전력시장의 탈규제 민영화”를 실시했다.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조지 W. 부시는 민영화 법안에 서명하며 전력산업의 경쟁이 전기요금을 낮추고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줄 것이라 장담했다.

실제로 한동안 텍사스 주민들은 풍부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에만 몰두하는 전력사들에 비상 상황에 대비한 인프라 마련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텍사스는 2003년과 2011년 겨울에도 소규모 전력난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이에 미연방규제기관은 추위에 대비한 백업용 발전 시설을 갖출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텍사스의 전력망을 관리하는 규제기관은 이를 계속 무시했다. 텍사스가 연방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력망과 규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텍사스 전 주지사이자 트럼프 정부에서 에너지 장관을 맡았던 릭 페리는 여전히 텍사스가 연방규제로부터 독립돼야 하고 이를 위해 “며칠간 전기 없이도 버틸 수 있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며 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평소보다 300배 넘는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은 주민들의 원성에 공화당 주지사와 의원들까지 규제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 규제는 강화될 것이고 이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텍사스 전력난과 관련해 국내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언론은 굉장히 다양하고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규제는 강화돼야 하고 시민이 안전하게 에너지를 사용할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전력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규제만 강화해 다시 마음껏 에너지를 소비하자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에너지 소비 감축이라는 더 핵심적인 문제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의 8.6%가 사는 텍사스는 미국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3%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2050년까지 동파 방지 작업과 예비 발전소·저장시설 설립 등을 완료하려면 미국의 동남부지역에서만 35%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간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에 따른 기후 변화가 텍사스 전력난의 원인인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 전력난에 대비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기술과 설비 강화로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는 잘못된 시도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웨덴 상공에서는 에어로졸을 투입해 인위적인 태양열 방어막으로 온난화를 막겠다는 ‘기후 공학’ 실험이 한창이다.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은 탄소포집·저장이라는 기술로 대기 중 탄소를 없애겠다고 공언한다. 이는 모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아니라, 지구의 신진대사를 훼손하고, 또다시 자본의 배만 불리는 거짓 해법일 뿐이다. 기후 위기의 모든 해법은 지구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색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에너지 소비 감축이 필수적이다. 기후 위기가 전력난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올바른 대책도 나올 수 없다.

또한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력난의 피해가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에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텍사스주는 이미 한파와 대설을 예상했다. 주민들에게는 전력이 끊길 가능성이 있으니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전기를 아껴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전력 위기에 대비해 병원과 요양원 등이 있는 지역에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과 요양원은 부유한 지역에 편중돼 있기 때문에, 가난한 동네에만 전기가 끊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빌딩이 밀집된 도심에도 전기 공급이 이루어졌는데, 컴컴한 주변 지역과는 달리 환하게 불을 밝힌 휴스턴 도심 풍경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정전이 되자 여유 있는 이들은 호텔로 향했다. 텍사스의 호텔들은 빈방 하나 없을 정도로 예약이 찼고 가격도 10배 이상 뛰었다. 텍사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가족과 함께 멕시코 휴양지인 칸쿤으로 갔다가 비난 여론에 다음날 돌아오는 촌극을 벌였다. 반면 호텔에 묵을 돈도, 차도 없는 저소득층은 한파로 인한 정전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낡고 단열이 안 되는 주택은 동파가 잦았고 생명까지 위협했다. 트레일러나 이동식 주택에 사는 이들의 고통은 특히 심했다. 휴스턴 북쪽의 한 소도시에서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11살 소년의 부모가 민간 발전사와 규제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던 에콰도르 출신 이주자 가정이었다. 홈리스들의 피해는 집계도 안 되는 상황이다.

마실 물과 먹거리 등 생필품마저 귀해졌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렉산드라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500만 불이 넘는 재난 기금을 모아 텍사스 주민들과의 연대에 나섰다. ‘선라이즈 무브먼트’도 무료급식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선 구호 활동으로 여겨질 이런 상호 돌봄(mutual aid)은 미국 사회운동에선 다른 역사적 맥락과 전통을 가진다. 18세기 후반 열병이 돌던 시기 흑인사회에서 시작된 상호 돌봄은 ‘자선이 아닌 연대’라는 원칙에 따라 배제되고 억압당하는 유색인종과 지역사회의 역량 강화, 그리고 사회운동 기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상호 돌봄은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보여주는 (우리의) 비전입니다”라는 구호는 이런 사회운동적 지향을 보여줄 뿐 아니라 AOC와 미국의 기후 정의 운동이 무시 못 할 세력으로 성장한 이유를 알려준다.

훗날 텍사스 전력난은 잊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 기후 위기가 어떻게 현실화하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에너지의 공적 책임을 포기하는 탈규제 민영화는 막아야 한다. 동시에 전력난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화석연료와의 절연, 에너지 소비 감축, 전력망 효율화를 위한 계획도 함께 세워야 한다. 대규모 발전시설에 의존하는 대신 지자체와 지역 시민사회가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소규모 지역 분산형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기후재앙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수립도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닫힌 귀를 열어야 한다. 다양한 방식의 민중 투쟁과 민중들 간의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