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기를 멈추지 않는 맹자와 왈패‘들’

[질문들]

  <우리가 싸우듯이> 라이브 방송 [출처: 신유아]

푸른 작업복을 입은 김진숙이 부채 하나 들고 뚜벅뚜벅 걸은 지 31일째를 맞은 지난 2월 4일. 김진숙과 두 여성 노동자가 ‘김진숙과 함께, 용기를 더하는 라이브 방송 <우리가 싸우듯이>’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35년 해고노동자인 ‘부채요정’ 김진숙이 9개월 해고노동자 ‘왈패’ 김계월(아시아나케이오지부)과 2개월 해고노동자 ‘맹자’ 최명자(LG트윈타워분회)를 초대한 자리였다.

왈패와 맹자는 36년째 투쟁을 이어가는 부채요정에 애정 가득한 경의와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그리고 부채요정은 투쟁을 시작한 이들에게 기분 좋은 웃음과 당당한 투쟁의 기운을 전했다. 부채요정과 왈패, 맹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노동자, 불의에 맞서기 위해 용기 내는 인간,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존엄한 존재를 이야기했다. 필자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이들과 함께 만들고 싶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고민과 기대를 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청소’는 청소 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부채요정은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미래 모습이 청소노동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맹자와 왈패를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이고 나이 있고 비정규직.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노동자밖에 없는 것 같아. ‘밖에’라는 말은 좀 그렇지만.” 이 말을 듣고 필자도 아차 싶었다. 나도, 누군가도 “청소‘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라는 말을 종종 하지 않았을까? ‘밖에’라는 말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청소 노동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과 태도를 품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나머지의 노동 혹은 가장자리의 노동. 특별한 기술도, 능력도 필요로 하지 않(다고 여겨지)기에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피할 수 있다면 미뤄두고 싶은 노동. 그것은 유급 노동이든 무급 (가사) 노동이든 여성과 노년의 노동이 되고, 또 ‘밑바닥 노동’이라 불린다.

‘청소’ 이야기에 대학 졸업 후 첫 직장 생활이 떠올랐다. 매일의 시작은 다른 사람들(남성 상사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해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무실 정리가 아닌, 남성 상사들의 책상 정리, 재떨이와 휴지통 비우기를 포함했다. 출근 첫날부터 시작된 이 일은 나와 다른 여성 동료가 전담했다.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한 또 다른 여성 동료는 이 일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지만 소위 ‘막내의 일’인 줄 알고 했다. 하지만 나보다 2~3개월 뒤 입사한 남성 동료는 청소하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과-차-부-사장의 방 청소로 시작하는 아침은 더욱 불쾌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당신도 같이 청소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청소하며 불쑥불쑥 재떨이를 집어 던지고 싶었던 차에 남성 동료의 월급이 나보다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왜지? 그 이유를 아무에게도 묻지 못한 나는 억울한 나머지 ‘나는 대졸이고 그는 고졸인데!’라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부당한 규칙을 향한 분노가 해결되지 않자 나 역시 차별적인 방식으로 이유를 찾았다. 만약 내가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그래서 또 다른 여성이 입사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청소는 각자 또는 모두 같이 하자고 했을까? 나 역시 또 다른 여성에게 청소 업무를 물려주었을 것 같아 두렵다. 해고돼 그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사에서 청소와 커피 심부름이 ‘당연한’ 사람은 가장 낮은 지위-어린 여성-다. 그러니 ‘청소’는 노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회사 상사들은 나를 ‘아랫사람’으로 대했다. 호칭과 업무지시, 대화에서도 나를 동료 노동자로서 존중하지 않았다. ‘청소’는 그 공간에서 나의 위치와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이었다. 그러니 이제 청소 노동을 ‘밑바닥 노동’이라 부르지 말자. 라이브 방송 중에 맹자의 “제일 밑바닥에서 일하지만”이라는 말이 너무 속상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맹자 씨, 우리 이제 밑바닥에서 일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 세상에 나쁜 노동은 있어도 높은 노동, 낮은 노동은 없으니까요. 모두 필요한 노동이고 소중한 노동이지요. 당신 스스로 당당하다고 말했듯이.”

소리 내는 통쾌함

나는 회사 다니는 동안 매일 화가 났지만, 그 ‘화’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왈패는 기내에서 불을 끄고 청소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자, 불을 켜고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불을 켜고 청소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적일 텐데,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 꼭 과거의 내 모습 같았다. 그래서 맹자의 “노조에 가입하니까 소리를 내게 되더라고요”라는 말이 기분 좋게 마음에 박혔다. 나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 순간에도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때때로 (나만 알 수 있는) 소심한 복수를 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상황에서 나의 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 점심시간에도 화가 났다. 모두 도시락을 싸 와 점심을 같이 먹는 시스템은 온전한 식사 시간을 보장하지 못했다. 매일 과-차-부-사장과 같이 먹는 것도 불편했지만, 식사하자마자 바로 다시 책상에 앉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식사 직후 커피를 준비하는 것도 거부하고 싶었다. 여성 동료들과 점심시간만이라도 밖에서 자유롭게 즐기자며 ‘온전한 점심시간 쟁취’를 결의했다.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자 과-차-부-장은 당황하면서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쟁취한 점심시간은 너무 즐거웠고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원점으로 돌아갔다. 명확한 이유 없이 도시락 점심시간이 다시 강제됐고, 우리는 더 저항하지 못했다.

왈패와 맹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지난 노동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부정의한 것을 확인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그래서 맹자는 LG그룹 회장 구광모를 부르며 항의하는 통쾌한 순간을 맞이했다. 왈패는 용기 내 큰 소리로 부당함을 지적했던 경험으로 부당한 일에 바로바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매일 화가 났던 그 시절, 나에게도 함께 용기 낼 동료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랬다면 아마 부당함에 맞서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화는 조금 덜어지지 않았을까.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그녀들

부채요정은 청소노동자의 존재가 파업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즉 소리내기를 시작하자 이 존재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과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소리내기에 대해 부채요정은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이라 했다. 자본가가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거부하는 것은 비용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순종하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구가 많아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간의 말을 시작한 노동자를 자본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부채요정의 첫 번째 해고 사유가 ‘말과 글에 능한 자’라는 사실이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여성학자인 권김현영은 ≪페미니스트 모먼트≫에서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여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함께 사는 법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부채요정의 “나에게 노동해방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의 해방도 함께 이뤄지는 것”이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노동운동의 가부장적 사고를 지적하며 그 이유를 “그 세계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권김현영의‚ ‘무지’는 ‘특권’이라는 지적과 같다. “누가 이 상황을 참아 내고 있는지 모를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질문을 던지는 용기는 새로운 문을 여는 힘이 된다. 맹자와 왈패처럼 소리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성과 소수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맹자와 왈패들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나도 그녀들의 곁에서 함께 소리 내고 싶다. 부채요정이 이야기한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그 여정에 기쁘게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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