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탄압에 피 흘리는 벨라루스, 한국 정부는 침묵

재한 벨라루스인과 한국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민주주의 위해 나서 달라”

“지금 벨라루스에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진이나 댓글, 감정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기록하기만 해도 감옥에 갈 수 있다. 반정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적백색의 국기와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거나 물건을 가지고 있다가 체포되는 경우도 있다. 운이 나쁘면, 우연히 산책하러 외출했다가 체포되기도 한다. 보안당국은 심지어 활동가의 가족들에게서 핸드폰과 컴퓨터, 신용카드와 현금까지 압수해 최소한의 생계수단마저 앗아가고 있다.”

벨라루스 출신의 한 시민이 지난해 8월 치러진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부정과 잇따른 정부의 탄압을 폭로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는 다른 벨라루스 출신 참가자와 마찬가지로 고국에 있는 가족과 동료의 신변 안전을 문제로 신원을 밝히지도 못했다. 21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재한벨라루스시민모임과 한국 정당(정의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과 국제민주연대 등 46개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22일부터 양일간 진행되는 46회 유엔인권이사회의 벨라루스 결의안 지지를 포함해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벨라루스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해줄 것을 요청했다.

[출처: 벨라루스의 민주주의 지지를 요청하는 재한 벨라루스인과 한국시민사회단체]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각종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26년째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집권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대 운동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현 정권은 엄혹한 탄압에 나서 철권 통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벨라루스 정치 상황에 여러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대표적으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선거 직후 벨라루스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말라고 국제사회에 권고했다. 현재 유럽연합과 영국, 미국, 캐나다는 벨라루스 대선 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루카셴코 정권은 대선 결과를 조작한 데 이어 현재 집회와 언론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한 상태다. 또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침묵시키려고 심각한 국가폭력과 막대한 벌금, 수감 등의 방법으로 탄압을 일삼고 있다.

실제로 재한 벨라루스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루카셴코 현 정권의 부정선거와 인권 침해의 문제는 방대했다. 루카셴코 정부 집권 초기인 1990년대 때부터 전 중앙선거위원장이 불법부정선거에 항의하자 행방불명된 바 있다. 이후 중앙선거위원회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영향력 하에 놓였고, 부정선거 의혹이 반복됐다. 2019년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는 행방불명된 전 중앙선거위원장을 납치·살해했다는 특수부대 출신 정치망명자의 증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벨라루스 변호사단체가 선거법 위반 사항을 25개의 두꺼운 문서 파일로 기록 및 수집해 중앙선거위원회에 제출했지만, 선거위원회는 이 모든 증거들이 “중요하지 않다”며 기각했다. 이외에도 많은 인권변호사들이 야당 활동가들과 집회 참가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대변하며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자원했지만, 현 정권은 법원 절차를 노골적으로 위반했고, 부당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과대한 벌금과 징역형을 받게 했다. 오히려 인권변호사들은 이 같은 활동 때문에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맑심 츠낙(Maxim Znak), 일야 살레이(Ilya Saley) 변호사는 반역죄로 기소돼 현재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3명의 변호사도 반정부 활동 혐의로 변호사 면허를 박탈당했다.

양심적인 의료인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벨라루스 경찰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다수의 시민들이 겪은 부상과 트라우마를 직접 목격해온 이들로, 매일 휴식시간에 국가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여 왔다. 그러나 벨라루스 심장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알렉산떠 므로체크 국립심장센터(RNCC) 소장은 직원들의 비폭력시위를 허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됐고, 전염병 전문가 니키타 솔로 베이 씨도 현 정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해고당됐다. 이들 외에도 응급의 아르템 소로킨 씨의 경우에는 경찰의 심한 구타로 사망한 아티스트 로만 본다렌코 사건에 대해 의료기록을 전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았다. 이 의료정보는 피해자 가족의 동의를 얻고 언론에 공개됐지만 그는 2년형, 이를 보도한 기자는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독립적인 언론인들 또한 위험에 처해 있다. 프레스 배지는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쉽게 식별해 체포하고 수감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벨라루스의 주요 독립 언론 <툿바이(Tut.by)>는 최근 언론 면허를 박탈당했다. 또 다른 독립언론 <벨삿 티브이(Belsat TV)>의 두 여성 언론인은 작년 11월 평화적인 집회를 생중계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아울러 현지 인권단체와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부정선거 이후 3월 14일까지 최소 4-8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285명이 정치수로 수감됐으며, 공식으로 집계된 고문사례만 450건에 달한다. 대선 직후에도 3일 만에 평화 시위에 참가했던 벨라루스 시민 5천명 이상이 체포됐고 그들 중 250명은 총이나 폭탄, 경찰봉에 부상을 입었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1379명이 구타, 고문, 성폭력 등의 폭행을 당했고 이중에서 절반은 경찰서 안에서 자행됐다. 경찰들은 체포된 시위자들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물감 스프레이로 얼굴과 손, 옷에 표시하고도 있다.

[출처: 벨라루스의 민주주의 지지를 요청하는 재한 벨라루스인과 한국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재한 벨라루스 시민은 “벨라루스에서 이런 사례들은 민주화세력을 침묵시키려고 인권탄압을 일삼는 현 정권의 범죄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라며 “현 정권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지지율은 3%에 그치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 말 4%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벨라루스 출신 시민은 “오는 25일은 ‘벨라루스 자유의 날’로 한국의 3.1절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한 기쁨을 즐겨야 하는 날이지만, 부정선거 이후 벨라루스 국민에게 삶의 기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포악한 독재에 맞서 싸우는 벨라루스 시민들의 힘겨운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벨라루스 출신 시민들의 부탁처럼,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벨라루스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에 연대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우선 한국 정부에 △루카셴코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말 것 △국제사회의 감시 하에 새 대선 실시 요구 △벨라루스 정부 관계자에게 인권 문제 언급 △벨라루스 정권에 대한 재정지원 금지 △유엔인권이사회의 벨라루스 민주주의 결의안 지지 △국가폭력으로 고문과 부상을 당한 벨라루스인에 대한 의료 지원과 신변 안전을 이유로 출국한 벨라루스인 지원, 한국 시민들에게는 △국민청원 등 정치권에 벨라루스 인권상황에 대해 목소리 내기 △재한 벨라루스 시민들의 행동에 연대 △‘벨라루스연대재단’ 등 정치 탄압에 고통당하는 벨라루스 시민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후원 등에 동참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재한벨라루스시민모임의 페이스북에서 동영상으로 생중계( https://fb.watch/4myVDP_E2w/)됐으며, 참가자들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46회 유엔인권이사회 벨라루스 결의안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벨라루스의 민주주의를 위한 재한벨라루스시민모임 (BKDB: ‘Belarusians in Korea for the democracy of Belarus)입니다.

저희는 3월 22-23일로 예정된 46차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에서 한국이 새로운 벨라루스 결의안을 지지하길 호소합니다. 벨라루스의 인권상황은 올해 2월과 3월에도 심각히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대선부정이래 벨라루스 정부가 저지른 각종 심각한 인권침해의 연속입니다. 이런 악화된 상황으로 인해 유엔인권이사회와 한국 같은 회원국들의 행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가해자의 신원을 밝히고 책임을 지게 하는 이 새로운 메커니즘은 현 인권위기 상황에 꼭 필요합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의 보고서는 현 상황을 “벨라루스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인권위기”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정부당국은 새로운 선거의 필요성을 논하거나, 정부와 조금이라도 다른 정견을 표현하는 시민들을 계속해서 탄압하고 있는데, 특히 인권활동가들, 야권 정치인들, 언론인들, 노조원들, 변호사들, 학생들을 주요 타켓으로 삼아왔습니다. 일부 공론화된 사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올해에도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두 명의 여성 언론인들이 지난 11월 평화로운 집회를 취재했다는 이유만으로 2년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벨라루스 경찰은 대내외적으로 존경받는 벨라루스의 대표적 인권단체, 비아스나 (Viasna) 사무실 두 곳, 벨라루스 언론인협회의 본사, 독립벨라루스라디오&전 자업계노조 (REP) 본사를 급습하여 수색하였습니다. 지난 몇 주간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인권활동가및 언론인, 가족들은 모두 40여명이 넘습니다.

보안당국은 유엔과 함께 활동해온 단체들도 공격했는데 특히 유엔의 긴밀한 협력기구, 장애인권리사무소 (ORPD)는 현재 조작된 경제범죄로 기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동 단체의 대표는 가택연금에 처해졌고 변호인은 재판 전 구금상태입니다. 이는 장애인권리사무소의 인권활동에 대한 명백한 정치적 보복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울러, 벨라루스 정부가 이미 수감 중이거나 구금상태로 재판을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의약품을 제공하지 않거나 변호사 선임을 거부한 비인도적인 사례들을 다수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보안당국은 심지어 활동가의 가족들에게서 핸드폰, 컴퓨터, 신용카드, 현금등을 압수함으로써 이들의 최소한의 생계수단마저 앗아가고 있습니다.

현지 인권단체와 언론사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8월 부정선거이후 3월 14일까지 최소한 4-8명의 시민사망이 추정되고, 285명의 정치범이 수감되었으며, 공식으로 집계된 고문사례만 무려 450건에 달합니다.

벨라루스는 유럽평의회 (Council of Europe)의 회원국이 아닌 관계로 현 인권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유엔인권이사회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의 이런 노력을 지지하고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시민들의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민주주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26년간의 악명높은 공포정치로 인해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립니다.

군사독재를 몸소 겪은 한국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저희의 힘겨운 상황과 싸움을 잘 이해 하시리라 믿으며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저희의 공개서한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며, 혹시 앞으로도 벨라루스의 인권침해 상황에 정보를 원하신다면 주저하지마시고 belarusinkorea@gmail.com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2021년 3월 21일 '벨라루스의 민주주의를 위한 재한벨라루스시민모임 (BKDB: ‘Belarusians in Korea for the democracy of Belarus) 및 이 공개서한에 동의하는 46개 한국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고양시민회/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 행동/국제민주연대/권리찾기유니온/ 나눔문화/난민인권센터/녹색당/다른세상을향한연대/다산인권센터/더 좋은 세상 뉴질랜드 한인모임/미국 애틀란타 사람사는 세상/미주지역 5.18 광주 민중항쟁동지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부산 그린 트러스트/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사단법인청년김대중 창립준비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생명안전 시민넷/세계시민선언/사)사람예술학교/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알맹/예하운 선교회/이재명을 지지하는 해외동포모임/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인천 도시생태ᆞ환경연구소/인천기본소득포럼/전국금속노조쌍용자동차지부/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두환심판국민행동/정의당/정치하는엄마들/제로웨이스트홈/진보3.0/참여연대/충남 녹색당/캐나다 노바 밸리 한인회/캐나다 노바스코시아 호남향우회/캐나다 에드먼튼 희망실천 네트워크/프로그레시브 코리아/ 한국기독교회협의회인권센터/해외주민운동연대/형명재단/호주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 위원회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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