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당한 이들의 광장

[레인보우]


“지금도 출입금지 상태거든요. 지금도 못 들어가요. 그 공장을 들어가 본 게 박창수 장례식 때, 김주익 장례식 때, 최강서 장례식 때, 그리고 크레인에 올라갈 때. 그게 다예요. 그렇게 우리가 투쟁해서 식당도 만들어지고, 화장실도 만들어졌는데 나는 거길 못 가봤어요. 거기를 안 들어가면, 그냥 내 삶은 평생을 떠돌다 끝날 것 같아요. 해고자들이 다 그럴 것 같아요. 내 발로 나온 게 아니잖아요.”

유튜브 채널 ‘따오기’와의 인터뷰에서 해고된 지 35년이 된 김진숙에게 복직 투쟁의 의미를 묻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렇게 답했다. 한진중공업은 김주익의 분신 이후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키면서도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단 한 사람, 김진숙만은 복직을 시키지 않았다. 2011년, 한진중공업이 생산직 노동자 400여 명을 해고하기로 하자 김진숙은 홀로 크레인에 올랐고, 그해 6월 김진숙을 찾아간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담장을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동지들의 죽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공장 크레인 위에 김진숙이,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쫓겨나고 거부당했던 이들이 크레인 밑에 모여 밥을 먹고 춤을 췄다.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1차 희망버스를 타고 찾아온 많은 성소수자 친구들도 그날 크레인 아래에서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날 밤의 강렬한 기억은 2차 희망버스의 ‘퀴어버스’로 이어졌다. 김진숙은 자신을 거부했던 공간에 들어가 세상에서 거부당한 이들이 함께 춤추는 광장을 만들어냈다.

광장, 거부당한 이들이 점유하는 저항의 자리

쫓겨나고 거부당한 이들이 공간을 점유할 때, 그곳은 어디든 광장이 된다. 희망버스가 찾아갔던 한진중공업 공장 안,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점유한 건물 로비, 아시아나케이오 기내 청소노동자들이 차린 길 위의 천막 농성장, 수십 명의 장애인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탔던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선로 위, 집 없는 사람들이 길 위에서 죽어간 이들을 추모했던 서울역 앞…. 이들은 누군가의 소유로 여겨지는 공간, ‘시민’과 ‘공공’으로부터 자신들을 배제했던 공간을 광장으로 열어냈다. 그리고 광장이 되자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차마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들도 용기를 냈다. 쫓겨난 이들은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 힘을 주었다. 그곳은 쫓겨난 자리였지만 다시 저항의 자리가 되고 때로는 축제의 자리가 됐다. 오랜 세월 쫓겨난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은 공간을 광장으로 열어주었다.

한진중공업 퀴어버스를 비롯해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 투쟁에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연대했던 2011년 이후. 성소수자들이 열어낸 광장에도 많은 노동자가 함께했다. 그해 겨울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당시 임신한 청소년과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을 요구하며 청소년 및 인권활동가, 성소수자들이 점거했던 서울시의회 건물 로비, 2012년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도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해고노동자들이 무지개 깃발 옆에 섰다. 그 첫 만남은 이후 더 큰 광장을 열어내는 연대의 힘이 됐다. 그리고 2015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가 마침내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오게 됐을 때, 수많은 연대의 깃발이 함께 휘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퀴어문화축제의 광장으로 열어낸 것은 전 시장의 업적도, 성소수자 인권을 외교의 언어로 내세우는 각국의 대사관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자리에 있던 이들, 자리를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함께 싸우며 열어낸 광장이었다.

광장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지난 2월 18일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시장이 되면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언급하며 “그곳은 시내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열린다”면서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 답변은 그가 생각하는 서울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보기 싫은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밀어내버리는 서울. ‘거부할 권리’를 내세워 멀리 치워버리고 싶은 이들은 비단 성소수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행보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우상호 예비후보의 생각도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모르는 것이 있다. 이 축제의 주인공은 ‘이미 거부당한 이들’이라는 것. 새삼 무슨 권리를 내세울 것도 없이, 애초에 광장을 열지 않으면 존재조차 거부당해 온 이들이 거리를 점유하고 광장을 열어 왔다는 것 말이다. 서울 곳곳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거부당하고 쫓겨난 이들이 만드는 광장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므로 ‘거부할 권리’라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애초에 이 광장은 누구에게 인정받을 필요 없이 모이고 모여서 열어내는 공간이기에. 막아도 어떻게든 열릴 것이고, 어디에 있든 눈에 띌 것이니 혹여 마음이 동하거든 그저 한 번 와 보시라.

덧붙이는 글

광장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 멀리서 온 소식에 관해서도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우리의 외교 및 해외 조력자들이 성소수자를 불법화하는 것과 싸우겠다”며 성소수자 인권을 1순위 외교 의제로 삼겠다고 천명한 미국의 새 대통령 조 바이든에 대한 이야기다. 그 역시 저항하는 이들이 열어내는 광장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광장에 필요한 것은 대신 싸워주겠다고 자임하는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의 영웅 놀이는 할리우드 영화의 레퍼토리만으로도 충분히 지겹다. 부디 앞으로 미국 내의 수많은 성소수자와 이주민, 난민들이 열어내는 광장이나 가로막고 탄압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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