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리아의 서랍]

최근 처음 만난 페미니스트와 친해져 SNS 아이디를 교환하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그분의 아이디를 아무리 검색해도 계정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서로 차단한 사이였다.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2015년부터 온라인에서 너무 많은 사람과 싸워왔다.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패악을 떨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가 내게 뭘 어쨌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차단의 원인이 내 쪽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서 일단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 아마 제가 잘못했겠죠? 우리 화해해요.......(하트)


우리는 화해했고, 차단을 풀었고, 친구를 맺었다. 운이 좋은 날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업보를 회수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잘못하긴 했는데 사과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다. 날 미워하는 것을 안다는 어떤 가수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시작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

*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상상은 대한민국 넷페미사를 읽다가 잠들어 2015년 8월의 뜨거운 현장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게... 나? 거울 속에 여섯 살이나 어린 여자가 있다. 소라넷이 폐쇄되고 성폭력처벌법 14조가 개정될 미래를 아는 그 애는 과거보다 덜 미쳤다.

몇몇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찾아간다. 그때 그 사람을 돌본다.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던 방법을 전부 동원해서 살자고 매달린다. 카페나 SNS에 뿌릴 콘텐츠를 선정하며 진심으로 주저한다. 다 봤으면서도 삼키는 증언이 생긴다. 날 것 그대로의 자극적인 고발은 차마 하지 못하게 된다.

발언을 적게 한다. 덕분에 실수가 줄어든다. 자신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조금 눈치챈다. 다른 사람에게 훨씬 관대해진다. 우리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내가 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온라인 공간의 성폭력이 근절되는 꼴을 보려고 활동에 뛰어들었다는 치기 어린 소리 따위 못한다. 어차피 6년 뒤에도 안 끝날 일인 것을 아니까, 일보다 나를 더 챙기게 된다. 밥도 느긋하게 먹고 커피도 마시고 잠도 잔다. 친구도 만나고 애인이랑 데이트도 한다.

그 애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누구와도 헤어지지 않으면서, 과거의 내가 밟고 지나온 모든 오판을 피해 걷는다. 그러자 그의 움직임과 그를 둘러싼 풍경이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고,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하얗게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 공백 상태로 이어진다. 그는 이미 내가 아니게 된 것이다!

내 상상 속인 데도 이런 불행한 결말이 나온다는 게 너무 황당해서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렇게 글로 적기까지 했으니 이젠 정말 그만 생각해야겠다. 어쩌겠는가. 견뎌야지.

*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에 맞서 싸우는 동안, 나는 자주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문구에서 싸우는 여자를 담당하는 사람쯤으로 소개됐다. 아예 대놓고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라는 타이틀을 단 채 잡지 표지에 서기도 했다. 조금만 검색해 보면 이 이상한 여자의 절박하고도 비장한 각오를 찾아볼 수 있는데, 정말 별 쓸데없는 말까지 다 해놨더라.

"전 소득 수준이 낮은 동네에서 자랐고, 장애나 성별에 대한 폭력에 늘 노출돼 있었습니다. 여성 살해나 매 맞는 아내, 성범죄 사건을 보고 자랐죠. 저 역시도 초등학생 시절 범죄 피해를 당할 뻔한 경험이 있었고요."(1)

기억난다. 학교 화장실에서 여아 대상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가정통신문에 화장실에 혼자 가서는 안 된다는 주의 문구가 붙던 시절이었다. 등굣길에 모르는 아저씨가 미나야! 라고 부르면서 나를 껴안았던 날이 있었다. 저는 미나가 아닌데요, 라는 대답을 할 새도 없이 그대로 질질 끌려가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다. 아빠는 엄마를 혼냈다. 초등학생인 내게 미니스커트를 입혔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헤비 인터넷 유저였어요."

틈틈이 인터넷 댓글 창을 돌아다니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옷차림을 탓하는 댓글과 싸웠다. 키배(온라인 언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람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을 악착같이 하고 다녔다.

"일찍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많이 접해,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알고 있었어요. 화장실 몰카부터 시작해 (생략) 영상을 봤어요."

그랬다. 보면서 저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성폭력은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가 유발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댓글을 다는 동시에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 남초 커뮤니티를 샅샅이 훑어보는 시기를 거쳤다. 어디서 남자 아이디를 구해다가 넷나베(온라인에서 남성 행세를 하는 여성)짓을 하며 픽업 아티스트 카페를 통해 형님들의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알면 알수록 도저히 조심해서는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무력감이 더 컸어요. 어차피 조심해도 소용없는 일이니까 일정 부분 포기하고 있었어요. 변화의 필요성이야 언제나 느끼고 있었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죠."(2)

그리고 2015년이 왔다. 성폭력 가해는 피해자의 옷차림과 관계없다는 내용의 댓글을 습관적으로 달고 있는데, 상대가 나를 자연스럽게 '메갈년'이라고 불렀다.

"이 싸움에 승산이 생겼다고, 내 삶의 일부를 한 번 걸어볼 만 해졌다고 느꼈어요."(3)

나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허우적거리며 이길 때까지 있으려고 노력했다. 기다리는 동안 몇 번 졌다.

(1) ‘몰카’ 피해자에 울고, 불안한 미래에 울고, <쿠키뉴스>, 2018.9.9
(2) 울지마, 죽지마, 삭제해 줄게, <한겨레 21>, 2018.1.3
(3) 위와 같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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