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논쟁의 두 가지 착각

[요즘 경제]


뉴노멀 시대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착각

미국발 2000조 경기 부양에 대한 견제구일까? 갑작스레 인플레이션이 논쟁 화두로 떠올랐다. 대규모 경기 부양으로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시장금리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고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양적 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취해왔다. 이제 그 후유증이 올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전망 때문인지 최근 국채금리가 다소 오르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의 인플레이션 논쟁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리가 가진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미지는 통상 경제 교과서에 서술된 부정적인 효과다. 즉,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다. 서민들의 관심사인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 언론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뉴스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난 10여 년간 세계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양적 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10년 넘게 취했지만, 인플레이션은커녕 오히려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앞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가을, 인플레이션 억제를 뒤로 미루는 정책 전환을 발표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중앙은행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왜 다시 인플레이션 논쟁이 벌어지는 걸까? 앞선 비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완화적 통화정책 당시에도 한바탕 유행한 적이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리는 미국 중앙은행 의장의 우스꽝스러운 만평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달러 가치가 폭락해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는 엉뚱한 예언까지 횡행했다. 하지만 돈이 휴짓조각이 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짐수레에 돈을 한가득 싣고 다니는 역사적 일화는 우리가 말하는 인플레이션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것은 전쟁 등으로 국가기능이 마비될 때나 가능한 것이다. 즉, 돈을 뿌리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단순한 논리가 불러들인 착각인 셈이었다.

이러한 오해가 발생한 것은, 돈이 풀리는 방식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이 풀린다는데, 과연 우리 호주머니에도 돈이 가득 들어왔을까? 아니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었다. 첫 번째 목적이 금융 시스템을 되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식과 부동산시장을 비롯한 자산시장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만든 파생금융상품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진화해야 했다. 또한 대중 자산이 폭락한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자산 가격을 안정시켜야 했다. 이로 인해 혜택을 받은 집단은 부동산을 비롯한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들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수혜대상은 정부였다. 독일 같은 일부 국가에선 국채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정부의 국채발행 부담이 매우 적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업과 가계가 지출을 줄이고 빚에 허덕일 때, 유일하게 재정지출을 할 수 있던 정부가 위기 대응의 역할을 한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돈 풀기 정책의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산 시장을 빼곤 실물 시장에선 그다지 경기가 호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2016~17년경에는 예상만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자, 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했거나 침체에 빠졌다는 논란이 전 세계적으로 일기도 했다. 그래서 뉴노멀 시대의 3가지 특징으로 ‘저물가-저금리-저성장’이라는 새로운 3저 현상이 제기됐다. 결국 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은 금융시장에서만 뱅뱅 돌며 금융자산의 버팀목이 됐을 뿐, 우리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그러니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이션 공포가 10년 넘게 세상을 짓누르고 있던 것이다.

재정정책의 부상과 중앙은행의 변신

이러한 가운데 중앙은행의 돈 풀기 정책이 부유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국의 제레미 코빈 같은 사람들은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를 이야기하며 자산시장 부양에만 돈을 쏟지 말고 민중들의 삶을 회복하는 데 돈을 쓰자고 주장했다. 심지어 주류경제학계에서 거의 이단처럼 취급받던 MMT(현대통화이론) 학자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얻으며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의 강연에 대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바이든 정부에도 MMT 진영의 유명한 이론가(스테파니 켈튼)들이 들어가 있다. MMT 이론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중앙은행과 정부는 한 몸이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재정을 원하는 만큼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입세출을 따지는 균형재정론자들과 정반대에 서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많은 논쟁이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단아 취급받던 그들이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된 이유다. 그 시대적 배경에는 뉴노멀 시대의 양극화 된 경제 현실이 놓여 있다. 그리고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에 대응하는 주류진영의 변신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전 미국 중앙은행장이었던 버냉키다. 그는 퇴임 후 2016년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중앙은행에 남아있는 대응책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헬리콥터 머니’ 이론의 정책 실현 가능성을 상세히 설명했는데, 이 정책 제안은 MMT와 거의 비슷하다. 이로써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서 미국의 전광석화 같은 대응책은 이미 플랜B처럼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알려진 중앙은행 역시 드라마틱한 자기 변신을 했다. 지난해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 남긴 유명한 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Think big(크게 생각하세요)”이다. 이 말은 경기부양책을 앞두고 의회(하원의장)에 던진 말인데, 중앙은행은 준비가 돼 있으니 인플레이션 걱정하지 말고 의회는 고용회복에 모든 정책역량을 쏟으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면서 남긴 또 다른 유명한 말이 “heart breaking(가슴이 미어집니다)”이다. 이 말은 기자회견에서 여러 번 등장했다. 저소득층의 실업률 회복 수준이 더디고 특히 가난한 유색인종의 고용이 처참한 수준이라 “가슴이 매우 아프다”라는 말이다. 보통 이런 정치적 수사는 의회 정치인이 하는 말인데, 중앙은행 수장이 여러 번 반복하며 유행시켰다. 예전처럼 중앙은행장의 수수께끼 같은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해석할지 전전긍긍하던 시대가 아니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스탠스가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중앙은행이 정치의 한복판에 스스로 선 것이다.

인플레이션 파국에 대한 착각

그렇다면 현재의 인플레이션 논쟁에 이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일단 무시 전략을 취하고 있다.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며, 인플레이션이 벌어져도 그것이 정책목표이니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통제 불가할 정도의 급격한 인플레이션인데, 이것의 가능성은 매우 낮게 두고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 우려는 채권금리 상승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동요가 클 수 있다. 지난해 벌어진 전 세계적인 주식시장의 호황은 고착화된 저금리 정책 기조와 매우 연관이 깊다. 주식이 마치 채권처럼 인식되는 현실은 뉴노멀 시대의 또 다른 단면이다. 원래 주식은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데, 금융완화 정책의 일상화로 주식시장 부양이 지속되다 보니 주식이 채권처럼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주식에 돈을 차곡차곡 묻어둬라 언젠간 큰돈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 개미들이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대기업과 IT, 전기차 등의 유망산업에 대거 돈을 몰아넣은 것이다.

그런데 저금리 상황에서는 약간의 변동에도 증가 비율이 매우 커진다. 가령 금리가 10%에서 11%로 오르면 사람들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에서 2%로 금리가 오르면 두 배가 오르는 셈이 된다. 주식의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방식 중 할인율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이 금리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 물론 정부의 시장개입이 있을 테지만 어느 정도 떨어질 때까지 금융시장의 변동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부의 시장개입 목적은 이것이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데 있지, 주가를 유지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급격히 오른 만큼 분명 거품으로 인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인플레이션 논쟁이 언론에 주목받는 이유도,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대중이 매우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물가가 상승할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이 여기서 꺾일 것인지, 5천만 원 수준인 비트코인은 과연 1억 원까지 갈 것인지 등에 눈이 벌게져 있다. 주식 3000시대를 연 동학개미들에게 숟가락 얻지 말라는 정치인들과, 주식을 대량 매도한 국민연금이 동학개미들의 원흉이 되고 있다는 뉴스에서 보듯, 위기 대응의 본질은 사라지고 주식 한방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벌어지는 인플레 논쟁을 두고,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능력이 한계에 달한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 돈 풀어 경기 부양하는 것에 한계가 왔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자산시장의 거품이 터지고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어떻게 결론 날지,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 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을지를 설명하고 분석하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저 문제가 터진 듯 보이니, 위기가 온 것 같다는 식의 주장은 10년 전 호들갑스러웠던 하이퍼인플레이션 논란처럼 찻잔 속 태풍으로 사라질 것이다.

잘못된 포퓰리즘 비판

예정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가령 매년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는다고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재난에 대비하고, 예상외 피해가 발생하면 긴급조치를 취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강화해 나간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때 진짜 위기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인플레이션 위기가 통제 불가능한 위기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위기관리가 가능한 인플레이션은 앞서 언급했듯, 중앙은행이 바라는 바다.

그러므로 잘못된 착각 속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게 되면 엉뚱한 주장과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령 정부의 재난지원금 정책을 두고 재정위기와 인플레이션 위기를 들먹이며 포퓰리즘이라는 속류 비판에 빠지는 식이다. 아쉬운 점은 원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균형재정론자 뿐 아니라, 자칭 사회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이러한 잘못된 비판에 함몰된다는 점이다. 포퓰리즘 비판을 마치 성경책에 쓰여 있는 진리인 양,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며 암송하고 다니는 짓은 이제 그만 둬야 한다. 포퓰리즘 비판보다 위기에 빠진 대중의 삶을 구원하고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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