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 민주노총 “노동법 전면개정 남았다”

공공부문 쟁의권 제한, 교섭창구단일화, 특고 단체교섭권 제한 등 문제 ‘여전’

정부가 지난 20일 ILO 핵심협약 비준서를 ILO에 전달한 가운데, 민주노총이 현행 법·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말뿐인 선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준서 기탁 1년 후면 핵심협약이 효력을 갖게 되지만, 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의 현실이 ILO 핵심협약이 명시한 노동3권의 주요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민주노총은 21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서를 기탁한 데 대해 “지키지 않을 약속으로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는 협약과 현행 법·제도 사이의 간극을 인식해야 한다. 협약이 본격 발효되기 전인 향후 1년간 현행 법·제도를 전면 개정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20일 정부는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 또는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29호) 등 3개 핵심협약을 ILO에 기탁했다. 이로써 비준서 기탁 후 1년이 지난 2022년 4월 20일부터 협약은 효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현행법을 고치려는 노력은 방치한 채 비준서만 제출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하고 30년 만에 핵심협약을 비준했다. 우선 반갑지만, 너무 늦어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30년 동안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못했던 것은 국내 노동법이 낙후하고 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억압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부터 국제 노동법 기준에 맞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ILO 핵심협약 비준이 “단순한 선언과 약속이 아니”라며 “ILO 핵심협약은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체결·공표된 조항이며, 국회 동의를 받아 비준됐기 때문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신법 우선 원칙’, ‘특별법 우선 원칙’은 법률끼리 충돌할 경우 나중에 제정된 것이 우선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ILO 핵심협약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교섭창구단일화 폐지, 초기업·대정부 교섭 등 필요

기자회견에는 주요 노동조합 대표자들도 참가해 앞으로 개정돼야 할 노동법 독소 조항들을 증언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필수유지업무제도를 비롯해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초기업 교섭에 대한 배제 등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위해 개정할 노조법은 한둘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필수유지업무제도와 관련해 그는 “현행 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라는 이유로 쟁의권을 제한받는 업종과 사업장 수는 260여개로, 공공부문 노조의 상당수가 노사관계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불리한 지위에 설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따라서 현 위원장은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를 폐지하고 ‘업무 정지가 국민의 생명·안전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경우’로 엄격 적용하는 ‘(가칭) 최소업무 유지 제도’를 신설해 쟁의권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제기했다.

또한 현 위원장은 현행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 제도는 “어용노조가 다수일 경우 창구단일화 제도를 통해 독점적 교섭권을 부여할 수 있고, 어용노조가 소수일 경우 자율교섭을 인정해 차별 교섭에 나설 수도 있다”라며 따라서 “현재의 교섭창구 강제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고, 폐기 이전이라도 복수노조를 활용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위원장은 이외에도 초기업 교섭과 대정부 교섭이 보장돼야 한다며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정부가 경영평가와 예산지침 등 법률과 행정 권한을 통해 ‘사용자 지위’에 있음에도 정상적 노정 교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초기업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용자는 사용자 단체를 구성하고, 공공기관 초기업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노정 교섭을 요구할 경우 정부가 ‘정부 교섭대표단’을 구성해 교섭에 응하도록 규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와 관련해 양성영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은 “(ILO 기준에 따르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원청 사용자와 교섭·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준만 정했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민간위탁 청소노동자의 경우 “작년 20개 지자체장과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쟁의 조정 신청을 넣었는데 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각했다. 실제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라며 이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전면 위배하는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특고 노조 설립은 ‘법 해석’ 문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 ILO 핵심협약의 핵심”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현행 노조법의 허점이 사용자에게는 교섭 회피 수단이 되고, 대리운전노동자의 기본권은 부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환 위원장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지난한 투쟁을 거쳐 423일 만에 노조 신고필증은 받았다. 그러나 정작 카카오모빌리티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현 노조법의 허술함을 이용해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대리운전 노조는 지방·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조정 절차까지 완료했으나 사용자는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20일 정부는 ILO 핵심협약 기탁식 개최 관련 보도자료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설립을 법 규정이 아닌 ‘법 해석’의 문제로 다룬 바 있다. 이에 김주환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요구는 허울뿐인 법과 판례나 정부의 ‘해석’이 아니라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요구했다.

관련해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역시 “정부의 태도는 굉장히 유감”이라며 “노조법 제 2조 1호의 ‘근로자 정의’를 바꾸지 않고 법 해석의 문제로 보는 것 자체가 ILO 핵심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노동자이고, 누가 노조를 만들 수 있는지를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 ILO 핵심협약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과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과제도 지적됐다. 전희영 전국교직원노조 위원장은 “광주의 한 선생님은 총선을 앞두고 이제는 성인이 된 제자에게 퇴근 후 문자로 딱 한 번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로 교사직을 상실당하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또 “교사·공무원에게는 파업권도 주어지지 않고, 전임자 급여지급은 입법의 개입 없이 노사 자율에 맡겨져야 함에도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을 유지해 타 직종 노조와 구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내년 핵심협약 효력 발생까지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개정이 진행돼야 한다”라며 “민주노총은 ILO 핵심협약이 국내제도와 현장에 온전히 구현되도록 전 조직적 투쟁을 이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은 △결사의 자유(노동3권) 주체를 고용 관계·종속관계를 벗어난 모든 노무 제공자로서의 노동자로 넓힐 것 △특수고용노동자·간접고용 노동자가 단체교섭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할 것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강제제도 폐지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 자유를 전면 금지하는 법조항 폐지, 정치기본권 보장 △정부 정책을 바꾸는 목적의 파업과 구조조정에 맞서는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조항 폐지 △공공부문 파업권을 억압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 평화로운 파업 참여자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관행 폐지 등을 요구했다.

오는 26일에는 민주노총·한국노총·ILO노동자활동지원국 주최로 ‘ILO 핵심협약 비준 이후 효과적 이행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국제토론회가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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