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김없이’ 죽을 수 있을까?

[추모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권력의 시공간에 새기지 않은 어르신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21년 2월 15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소절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세상을 떠나신 분이 계신다. 백기완 선생님. 선생님의 부음 소식을 듣고서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선생님과 헤어지는 의식을 치렀다. 우리 부부는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지 않다. 선생님을 직접 뵌 적도 없다. 젊은 시절 시위현장에서 멀리서 뵈었을 뿐이지만, 선생님의 사자후와 생각과 꿈을 마음에 담고 살아왔기에, 장례의 장에 가는 것 말고는 그저 ‘남김없이’ 살았던 시대의 어른에 대해 경애를 표시할 방법이 달리 없었다.

장례식장 안내소는 코로나19를 방제하는 절차로 시끌벅적했다. 어수선한 안내소와는 달리 ‘남김없이’의 리본으로 선생님과 이별의식을 하려는 사람들로 장례의 장에는 애도와 침묵이 휘돌고 있었다. 호상들과도 눈빛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내가 가졌던 의식의 시간은 짧았지만, 선생님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1987년 이후의 긴 시간을 되살릴 수 있었다. 35년이라는 변화가 나를 감쌌다. 때로는 매서운 가르침으로, 때로는 ‘남김없이’ 살아가는 삶의 인도자가 되어 세상의 변화를 꿈꾸게 했던 선생님의 시간이었다. 1932년 이후 2021년까지의 당신의 기록은 나에게 죽음을 새롭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아이들처럼 선생님은 꿈으로 가득했다. 그 꿈은 분단과 자본주의 세상의 높고 두꺼운 벽에 거친 벽화로 태어났다고 여기고 싶다. 선생님은 늘 새로운 꿈을 온 마음과 몸으로 벽에 새겼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깊숙이 아로새겼다. 그 소재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었다. 노나메기 세상, 통일 세상, 노동해방 세상이었다.

1970-80년대, 의식이 있는 청년으로 살았던 우리들도 집단의 꿈을 꾸었다. 지금은 집단의 끈이 많이 느슨해졌을지라도, 서로가 수시로 듣고 다짐까지 했던 꿈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중장년의 나이를 앞세워 꿈을 꾸지 않거나 권력의 우산 속에서 그 꿈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심지어 자신의 꿈을 조작하기까지 한다. 나이를 먹고도 아직까지 꿈을 꾸느냐는 핀잔의 손가락과 권력의 변화를 읽어 내려는 동공만이 바쁜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날카로웠던 비판의 칼날 대신에 둥글둥글하고 두루뭉술한 협상과 합의의 테이블을 정치력이라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나이의 역설’이 슬프다.

선생님이 꾸었던 세상에 가 본 사람은 없다. 그 세상이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할지 아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셨다. <새로운 세상>은 사람들 사이에 차별과 착취가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도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독립해서 주체적으로 살다가 의존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이 보장되는 이상사회였다. 진짜 민중의 호민관을 생각한다면, 평생 민중과 함께 혁명을 꿈꾸다가 ‘남김없이’ 죽음을 맞이한 선생님일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선생님은 작가이자 정치운동가이며 민중운동가이고 통일운동가였다. ‘남김없이’ 살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민중의 호명이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을 ‘시대의 어른’으로 부르고 싶다. 민중의 호명이 거슬려서도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도 아니고 힘과 영향력이 나보다 커서도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남김없이 꿈꾸었던 자유의지, 앎과 삶의 통일이 진짜 무엇인가를 보여준 지혜, 권력의 힘보다 권리의 힘을 사랑했던 마음 때문이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으로 늙어가는 많은 ‘우리’들에게 숙제를 안겨주셨다.

어른은 죽음을 맞이하며 붓을 들 힘조차 없는데도 이승에서 마지막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생의 바윗돌에 깊이 새겼다고 해야 맞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세상, 노동해방이라는 꿈. 어른이라고 해서 죽음이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어른은 실제로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궁금하다. 내가 죽어서 혹시라도 어른을 만난다면 묻고 싶은 말이다. 나는 아주 젊은 나이였던 2009년에 죽음 직전까지 경험해서 그런지, 정말 궁금하다. 죽음 직전의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한마디로 드러내기 어렵지만, 나는 급성 기관지 폐쇄증상 때문에 질식의 순간이 지속되다 보니, 그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이 고통을 해방시켜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었다. 하지만 그 때 위급한 상황을 아내와 함께 잘 이겨내서 다행이다. 죽음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때까지 ‘남김없이’ 살지 못한 죽음을 나나 가족들이 마주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죽음은 존재의 상실이다. 생명체는 생(生)의 요소와 사(死)의 요소가 서로 길항작용을 하면서 삶을 유지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生)의 요소가 사(死)의 요소에게 자리를 내주는 변화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분리되지 않는 생사(生死)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단지 생사(生死) 고리가 연결된 상태에서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할 뿐이다. 이런 사투는 생(生)과 사(死)의 ‘관계 맺기’다. 생(生)과 사(死)는 분리되지 않는다. 서로가 밀리든 당기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다가 죽음에 다다른다.

그래서 어떻게 죽느냐와 어떻게 사느냐는 나이가 들어서 다가오는 새로운 화두거리가 아니다. 둘 사이에 선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어떻게 죽느냐이고,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이다. 둘은 운명적 관계를 맺고 있다. 초고령화 시대에 딱 들어맞을 고민거리이다. 사람들 대부분 60세 이전에 임금노동을 그만두고 100세의 생을 바라면서 살아가면서, 30-40년 동안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80대에 죽는 사람들이나 유가족들에게는 짧은 생의 아쉬움과 슬픔을 전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고 싶은가를 물어보면, 누구나 건강하게 잘 살다가 죽고 싶다고 한다. 대부분은 잘 먹고 잘 자고 아프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절반은 맞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어디에서 있을까?

나는 어른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남김없이’ 살아가는 삶 속에 그 해답이 있다고 여긴다. ‘남김없이’ 살아야 ‘남김없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고자 하는 자신의 해방의지를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힘을 쏟았다. 평생 우왕좌왕하거나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당신의 자유와 권리를 구속하는 힘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찾으려 하였고 몸과 마음으로 저항하면서 자본주의의 성벽에 자신의 삶을 새겨 넣었다. 자신과 민중들의 권리를 사랑하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른은 더 이상 쏟을 힘이 없어지자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은 이승의 삶에 ‘미련이 없는 마음’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꿈의 길을 다지는 일에 한 순간이라도 멈춤이 없었다. 죽는 순간에도 꿈을 꾸었으리라.

어른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권력의 시공간에 새기지 않았다. ‘남김없이’ 생(生)을 살다가 죽어서는 많은 것을 남긴 ‘남김없이’의 대반전을 이루셨다. 어른이 사랑했던 것은 민중과 자신의 권리였고, 어른의 명예는 민중들의 삶에 석각으로 새겨졌으며, 어른의 이름은 누군가가 당신의 꿈을 실현하는 그 날까지 영원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시대의 어르신.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덧붙이는 말

필자는 12년 전부터 월악산 자락에서 사과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삶이보이는창> 4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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