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어가는 몸이 부르는 봄

[기고] 정년을 앞둔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자들

  박삼구가 사는 한남동에서 오체투지하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과 연대자들. 판화가 이윤엽이 그린 조형물에 ‘봄을 부른다’가 적혀있다 [출처: 명숙]

구름이 땅을 무겁게 누르는 흐린 오후,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과 연대자들이 복직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벌써 해고된 지 1년이 다 됐다. 오체투지를 마치고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단식 중인 해고자 기노진 씨를 만났다. 공항에서 캐빈(객실) 청소노동자들을 싣는 버스를 운전했던 그는 5월 30일이면 정년이다. 해고로 끝나는 정년을 거부하고 단식에 들어간 지 4월 25일로 13일째다. 날씨처럼 그의 낯빛이 흐리다.

“어제 오체투지 하는 걸 잠깐 봤는데 더 못 보겠더라구요. 속상해서 오늘도 안 봤어요.”

말을 하던 그의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노동자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단식 중이긴 하지만 오체투지하느라 고생한 동료들 고기라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단식은 괜찮냐고 물었더니, ‘하고 싶어서 하는 단식이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제 몸까지 버려가면서 해야 하나 싶어서 썩 내키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괜찮은데 어제까지만 해도 음식냄새가 힘들어서 짜증을 냈어요. 돌아보면 미안한데 제 성격이 좀 그래요. 그나마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영선후보 캠프에서 강제로 3박 4일 단식한 게 예행연습이 돼서 다행이죠.”

민주노조 탄압의 핑계가 된 코로나19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해고에 대해 책임지라며 농성하던 노동자 10명은 선거캠프의 방역지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했다. 정부가 90%를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제도는 기업주가 신청을 해야만 작동하도록 설계했기에 강제력이 없다. 더구나 작년에 아시아나항공에 정부가 2조 4천억을 지원했음에도 아시아나케이오 기업주는 10%도 안 내겠다며 고용유지지원금제도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참에 바른 소리만 하는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자를 기회로 삼았다. 그는 녹물이 떨어지는 전자렌즈 교체 요구를 하는 등 바른 소리를 잘 했다.

함께 단식 중인 김정남 씨도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코로나19를 핑계 댄 것이라 했다.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고 달라진 점은 벨트 작업장 관리자들의 폭언이 사라진 거라고 했다. 그가 했던 수하물 분류작업은 인력이 적어 긴장도와 노동강도가 꽤 높았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관리자들이 사람들한테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많이 했어요. 브리핑한다며 일찍 출근시키기도 했고. 그런데 노조 생기고 회의도 업무시간 내에 하고 무상노동이 사라졌어요. 특히 캐빈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어요. 점심시간도 없이 일하거나 안전장비도 없이 독성이 있는 청소용품을 만지던 일들이 사라졌어요.”

작년 5월 11일 아시아나항공 2차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가 일방적으로 무기한 무급순환휴직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한 민주노조 조합원들 8명만 정리해고 했다. 체불임금 소송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조의 제기를 원천봉쇄하는 노조탄압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작년 7월 인천·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12월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라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아시아나항공 → 아시아나에어포트 → 아시아나KO’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의 말단노동자들 해고 소송을 김앤장 로펌에게 맡길 정도로 거액을 들였다.

상상했던 정년은 사라지고

“지방노동위까지 가면 우리가 패소하든 회사가 패소하든 싸움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행정소송까지 하다니, 집요한 놈들이죠. 싸움이 길어져 긴 겨울도 지나고. 늙은 노동자 우리 두 사람이 정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기씨는 정년을 이렇게 맞이할 줄은 몰랐다. 몸만 괜찮으면 정년퇴임 후에는 몇 개월 쉬면서 새로운 인생을 기획할 생각이었다. 부인과 함께 귀촌을 해서 새로운 직업을 갖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회사의 부당해고로 상상했던 정년의 모습은 사라졌다. 게다가 1년 가까이 되는 농성으로 몸이 많이 축났다. 종각역 금호아시아나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무려 6킬로그램이나 빠졌을 정도다. 단식을 하면서 6킬로가 더 빠졌으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농성장에 찾아온 아들에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보일까봐 하얀 민복을 벗고 맞이했다.

  박삼구가 살고 있는 한남동 집 앞에서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 왼쪽부터 김하경, 김계월, 박종근 님. [출처: 명숙]

정년이 4월 30일이 김정남씨에게 복직하면 무얼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리워하듯 웃으면서 말한다.

“제가 일하던 현장 가서 수하물 분류작업하고 동료들하고 시원하게 막걸리 한잔 하고 싶어요. 노조가 달라도 대부분 서로 친했거든요.”

무엇보다 해고투쟁 중 돌아가신 아버님을 뵈러 가고 싶다고 했다.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농성을 하려다 18시간 만에 쫓겨나던 다음날이 49재였다. 항상 ‘해고싸움은 몇 명이 하는지, 밥은 먹고 싸우는지’ 걱정을 하던 아버님께 복직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셋이 함께 웃던 일상으로 가고 싶어요

생애 처음으로 오체투지를 했다는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 지부장에게 금호문화재단 박삼구 이사장이 살고 있는 지금 한남동 부자동네를 오체투지를 할 때 어땠냐고 물었더니 울컥울컥 밑에서 자꾸 올라왔다고 했다. 박삼구는 아시아나항공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금호문화재단은 아시아나항공의 하청업체들의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원청으로, 여전히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 중앙지검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이 내부지원방식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했는지 수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자금 몰아넣은 정황으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사실 서럽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산다는 게 이렇게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하는 건가 싶고. 나의 권리나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게 한스럽기도 하고.”

특히 오체투지를 하는 데 단식하는 두 분이 떠올라 힘들었다고 했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깡마르고 말수가 적어진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왔다. 지부장이니까 힘을 내서 싸우려고 눈물을 감추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빨리 모두 복직해서 셋이 퇴근 후 함께 뭉치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기 회계감사님과 제가 인천공항에서 일하고 김 전부지장님은 김포공항에서 일을 했지만 셋이 잘 어울렸어요. 집이 김포공항에서 가까워서 동갑내기인 두 분이 술자리라도 만들면 저를 불렀거든요. 복직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에게 봄은 언제 올까요? 벌써 해고 1년 후 맞이하는 봄이지만 복직이 안 됐으니 봄은 아니죠.”

나날이 사위어가는 두 늙은 노동자들을 보면서 김계월 지부장은 복직의 봄을 가져올 싸움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더 많은 봄의 싸움들이, 더 많은 연대들이 봄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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