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506명 시국선언 “우리의 시대는 실패, 새 시대 직접 열겠다”

“우리의 요구는 시대의 교체…기성 정치는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청와대가 청년 현안을 전담하는 ‘청년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지만 이를 보는 청년들의 시선은 차갑다. 오히려 청년들은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며 자신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정치적 주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기성정치가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시대적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은폐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24개 청년·학생 단체가 결합한 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는 30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라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주최 측은 사회의 화두인 ‘세대론’이 청년 세대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지 않다며 청년 세대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가 야기한 시대적 모순을 제거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속에서 불안정 노동자와 차별받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농민, 이주노동자, 동물 등 모두가 희생되고 있다며, 청년 역시 이 시대의 결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지 않는 정치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운 역사적 경험”이라며 “우리의 요구는 세대교체도, 정권교체도 아닌 시대의 교체”라고 밝혔다. 더불어 “계급갈등을 노동조합 이기주의로, 가부장제의 문제를 성별갈등으로, 나이 위계를 세대갈등으로, 주거권 문제를 땅값과 시장 활성화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관계를 새로운 성장 신화로 왜곡하는 기존 정치는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시국선언자들은 비판에 그치지 않고 기후위기, 코로나19로 드러난 사회구조의 취약성, 시장경제가 양산한 양극화와 불평등 등 삶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안도 발표했다. 그중 하나는 ‘불평등한 사회’의 종식으로, 사회의 출발선인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보편적인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위계화된 학벌을 평준화하고 학력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정규직 등 노동과 삶에서의 구분도 없애야한다고도 덧붙였다.

이 밖에 △토지, 교육, 의료, 식량 등 삶의 필수품을 보편적인 권리로 보장 △여성·성소수자·장애인 역시 비성소수자-비장애인-남성에게만 허락된 보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사회 △탄소자본주의와 성장제일주의에서 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사회 등을 요구했다.

청년 비정규직, 트랜스젠더, 장애인
“우리가 겪은 삶의 위기는 사회구조적 결과물”


기자회견에는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청년들이 직접 발언에 나서 시국선언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태훈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위험은 아래로 흘러 ’하청‘에 고인다는 표현이 있다. 저임금의 굴레와 언제든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 사고라도 나면 온전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비정규직에는 위험과 부담, 가난이 뒤따른다”라며 자신의 노동환경을 설명했다.


또 김태훈 비정규직 노동자는 “제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며 “다들 가정은 꾸리고 싶어 하는데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출을 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불안정한 비정규직 인생에 대출을 끼는 것은 저당 잡힌 인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17년간 목사를 꿈꿨지만, 장애인 차별로 신학대학원을 자퇴한 청년도 현장에 나와 발언했다. 학교의 정규 커리큘럼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고, 교회 역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진우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자퇴생은 4학년 재학 당시 목회 실습 수업을 이수하기 위해 12곳의 교회에 전도사 지원을 했다. 그러나 교회들은 갖가지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유진우 씨는 “(교회는) 축구부가 있어서, 운전해야 해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등 여러 이유를 댔다”라며 “기숙사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진입로에 계단이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를 탄 저는 ‘출입 불가’였기에 자퇴”했다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말하는 기회조차 빼앗겨버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자본주의 생산방식 때문에 장애인은 노동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여전히 몸에 맞는 노동은 찾을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능력주의, 공정성이 옳다고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며 그들이 만든 세상에 균열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랜스젠더인 한빛 씨도 발언에 나서 청년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얘기했다. 그중 하나는 수능 시험장이 성별로 나뉘어 있어서 겪은 처참했던 기억이다. 그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수능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시험장에는 트랜스젠더의 자리가 없었고 수능시험은 망쳤다. 한빛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활동가는 “수능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장이 성별에 따라 장소가 구분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라며 “시험을 앞두고 복도를 지나갈 때 여러 남자 무리가 ‘저 계집년이 왜 왔냐’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번 화장실 가서 벗겨봐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수능시험을 망쳤을 때의 처참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가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것을 자본과 보수 양당도 모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차별과 불평등을 기반으로 우리를 분열하고 경쟁에 몰아넣어 이득을 보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허울뿐인 공정과 배제, 경쟁을 동력원으로 삼았다면 우리는 평등과 연대의 언어로 그들을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시국선언문 발표 후의 계획에 대해 김건수 시국선언 원탁회의 집행위원은 “시국선언 원탁회의의 진로를 결정하고 의제별 요구사항을 구체화할 예정”이라며 “이를 관철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 행동을 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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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ㅋ

    과반인 180석이 좌익정당 더불어민주당인데
    보수정당 이야기는 왜 나오지 ㅋㅋ 트랜스젠더라고
    이대 입학 취소 시킨 정권도 좌익정당 과반집권때고
    남성에게만 허락된 보편적 권리도 없는데 뭐가 보편적 권리란건지? ㅋ

  • 문경락

    넘치는 말 한 마디....철저하게 자본주의로부터 외면을 당한 까닭은 외면한 그들조차 충분한 자본(주의)을 분배받지 못하여 그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