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INTERNATIONAL2] 백인우월주의와 소수인종의 인종주의 그리고 연대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 장면 [출처: 위키피디아]

인종주의는 미국의 치명적인 풍토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주의 제거를 위해 노력했지만, 완전히 뿌리를 뽑지는 못했고, 오늘날에도 미국 안팎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2020년 5월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 데릭 쇼빈에게 살해된 사건은 전 세계에서 인종주의 반대 운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인종주의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플로이드 사망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사건 이후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는 일은 인종주의를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생각할 기회가 될 것이다.

플로이드 사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8일부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지방법원에서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경관 쇼빈의 재판이 시작됐다. 2급 살인은 사전 계획이 없는 고의적 살인을 뜻한다. 법정에서는 플로이드가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 목을 눌렸다는 새 증거가 공개됐고, 미니애폴리스 경찰서장은 쇼빈의 목누름 행위가 경찰 규정과 관행에 어긋난다고 증언했다. 반면 쇼빈의 변호인들은 플로이드가 심장질환과 약물, 매연 중독 등으로 사고사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쇼빈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제 남은 것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 배심원 평결이다. 쇼빈에게 중형이 내려진다면 이 재판은 경찰의 물리력 사용을 법적으로 처벌한 드문 판례를 남길 것이다. 하지만 무죄나 가벼운 형량이 선고될 경우 미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항의 시위가 발생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많은 미국인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관들이 무죄 평결을 받은 날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이미 미니애폴리스 시장은 배심원 평결이 진행되면 주방위군과 경찰을 각지에 배치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여름의 대규모 시위와 관련한 사건들이 모두 플로이드 사건처럼 법적 정의를 구현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대표적 사례는 2020년 3월 13일 켄터키주 루이지빌의 자택에서 경관들의 총격으로 사망한 26세의 흑인 여성 브리오나 테일러 사건이다. 테일러의 유가족은 경관들을 살인 혐의로 고발했지만 지난 9월 23일 켄터키 대배심은 경관들의 총격이 정당방위였다는 이유로 불기소를 결정했다.

플로이드 이후 살해된 유색인종들

플로이드 사건의 재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건 이후 미국 경찰의 폭력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대응이 변화했는지 여부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경찰의 대응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4월 1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플로이드 사건의 공판이 시작된 3월 29일부터 3주 동안 미국 전역에서 적어도 64명이 경찰의 법 집행 과정에서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 흑인과 라틴계의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지난 4월 11일 미네소타주 브루클린센터에서는 20세의 흑인 남성 단테 라이트가 교통 단속 도중 백인 경관의 총에 숨졌다. 지역 경찰은 경관이 테이저건을 쏘려다 실수로 권총을 발포했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흑인이 사소한 범죄로 단속당하고 살해되는 일이 재발했다고 느꼈다. 곧바로 항의 시위가 일어나 주방위군이 동원되는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라이트가 사망한 브루클린 센터는 플로이드가 사망한 미니애폴리스에서 불과 14km 떨어진 곳으로, 교사인 플로이드의 여자친구는 라이트를 가르친 적도 있었다. 라이트를 쏜 경관은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라이트가 사망하고 4일 후인 4월 15일에는 시카고에 살던 13세의 멕시코계 미국인 소년 애덤 톨리도의 총격 사망 영상이 공개됐다. 톨리도는 3월 29일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는데 애초 경찰은 무장 대치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 경관의 보디캠 영상에서 경관이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손을 든 톨리도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카고에서도 즉시 해당 경관의 기소를 촉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비극적인 사건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지난 12월 23일 캘리포니아주 안티오크에서 30세의 필리핀계 남성 안젤로 퀸토가 플로이드와 같은 방식으로 경관에게 목을 눌렸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일 후 사망했다. 퀸토의 가족은 불안과 우울증, 편집증으로 흥분한 퀸토를 진정시키려 경찰을 불렀고 제압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퀸토가 사망한 지 4일 후인 12월 3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트라우즈버그에서는 19세의 중국계 미국인 크리스티안 홀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자살 시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총기를 소지하고 있던 홀은 출동한 경찰을 맞닥뜨렸을 때 톨리도와 마찬가지로 총을 내려놓고 손을 올렸고, 그다음 총을 맞았다. 이 사건들의 가해자들에게 법적 처벌이 가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 장면 [출처: 위키피디아]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의 여파

플로이드 시위에서 시위대가 요구했던 내용은 어떻게 실현됐을까? 시위에서는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라는 급진적 구호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 내용은 경찰 예산을 삭감하고 그 돈을 지역의 의식주와 교육 환경 개선, 폭력 예방 프로그램 등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구호들은 경찰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물었지만, 현실에 즉시 반영되기는 어려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경찰 예산 삭감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민주당에서도 전직 대통령 버락 오바마부터 지난해 대선 경선에 참여한 조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까지도 모두 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대신 경찰 개혁을 강조했다. 경찰은 예산이 삭감될 경우 치안이 불안한 소수인종 거주지 주민들이 피해를 받게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사실 소수인종 공동체 내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이었다.

몇몇 곳에서는 실제로 경찰 예산의 삭감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 최대 규모의 경찰 조직을 보유한 뉴욕시는 지난해 8월 경찰 예산을 6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로 10억 달러 삭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예산 삭감과 감원 계획이 예고되자 경찰노조와 시의 협의로 감원 대신 두 차례의 임금 동결이 결정됐다. 플로이드가 살았던 미니애폴리스의 시의회는 2012년 12월 제출된 연간 경찰 예산 1억7900만 달러에서 4.5%를 삭감하고 그 예산을 정신건강 돌봄과 폭력 예방 프로그램 운영에 돌렸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플로이드 시위에서 드러난 경찰 개혁 압력을 반영했지만, 치안 예산의 삭감을 불안해하는 지역 주민들과 더욱 과감한 경찰 예산 삭감을 요구한 활동가들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인종주의를 근절하기 위해 제도적인 변화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대중의 인식 변화다. 대표적인 오해는 경찰에 사망한 희생자들이 범죄자이거나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에 불행한 결과를 맞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2009년 용산 철거 현장의 화재 참사의 본질이 임차인들의 과도한 폭력이라는 주장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플로이드가 위조지폐를 사용했기 때문에 목이 졸린 것은 아니고, 단테 라이트가 체포에 저항했기 때문에 총에 맞은 것도 아니다. 이들은 미국 경찰이 빈번하게 유색인종을 단속하는 경향과 비무장한 민간인을 상대로 손쉽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 때문에 살해됐다.

경찰이 인종주의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증폭시키는 것은 무장한 백인 중범죄자에 대해선 경찰이 관용을 베푼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극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살해하고 70명에게 부상을 입힌 24세의 백인 남성 제임스 홈스는 사살당하지 않고 체포됐다. 201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인종 전쟁을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총기를 난사해 흑인 9명을 살해한 21세의 백인 남성 딜런 루프도 살아서 체포됐다.

지난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와 마사지 가게들에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해 8명을 총으로 살해한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 역시 사살당하지 않았다. 차량으로 이동하던 범인은 우연히 체포된 것이 아니라 그가 총격 살인 사건의 용의자임을 확인한 경찰의 차량 추격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이 중요 사건의 용의자를 사살하지 않고 체포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사소한 혐의로 검문 도중 사망한 유색인종 사건을 본 사람이라면 경찰이 인종주의적으로 법을 집행했다고 의심하기 쉬울 것이다. 더욱이 경찰이 브리핑에서 혐오 범죄 가능성 대신 성 중독을 범행 동기로 언급한 것은 경찰이 아시아계 여성의 죽음을 심각 여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수인종의 인종주의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혐오 범죄가 증가한 것은 지난 1년 동안의 세계적인 인종주의 반대 운동의 열기를 무색하게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흑인의 혐오 범죄 사건들이다. 아시아계에 대한 흑인의 폭력행위가 아시아인 혐오 사건의 다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폭력 사건들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은 사실이고, 이 사건들은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특히 심각하다.

소수인종이 다른 소수인종을 차별하는 이 기묘한 문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를 위해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흑인이자 미국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을 옹호하는 트럼프의 발언에 흑인으로서 반발하지만,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트럼프의 다른 주장에는 미국인으로서 동조할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미국인들의 피해를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의 책임으로 돌렸는데, 그의 논리는 비과학적이고 인종주의적이지만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조차 납득시킬 만큼 강력했다. 유색인종이 트럼프의 배외주의에 동조하면서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트럼프식의 중국인 혐오에 동조하는 현상은 같은 아시아계 내에서도 관찰된다. 5월 치러질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에 텍사스주 후보로 나선 공화당의 한국계 세리 김 후보는 중국이 우한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어 냈으며 중국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다행인 점은 이런 인종주의적인 발언에 공화당의 한국계 의원들조차 김 후보를 비판하며 지지를 철회했다는 사실이다.

백인우월주의에 맞선 다인종 연대

흑인과 아시아인이 연대한 일들은 흑인이 아시아인을 공격했다는 소식만큼 알려진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애틀랜타 스파 연쇄 총격 직후 흑인 사회는 곧바로 이 사건을 인종 혐오 범죄로 규정하며 아시아계와의 연대에 나섰다. 저명한 흑인 민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뉴욕에서 대만계 정치인 앤드류 양을 비롯해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흑인과 아시아인의 연대를 촉구했다. 3월 18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집회에는 다수의 흑인이 참가해 아시아인 혐오를 규탄했고, 3월 21일 뉴욕의 유니언스퀘어에서는 흑인과 아시아인의 연대를 위한 달리기 집회가 열렸다.

백인우월주의에 맞서 다인종 연대를 추구하는 일이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1960년대 흑인의 자기방어를 주장하며 일어선 블랙팬서당의 혁명가들은 마오쩌둥과 호치민, 김일성에게서 배우고자 했다. 1965년 뉴욕 오듀본 볼룸에서 맬컴 엑스가 연설 도중 암살당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 중 하나는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일본계 미국인 여성 유리 고치야마였다. 평생 흑인 운동과 연대한 고치야마는 일본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와 연대하기 위해 2005년 샌프란시스코 일본 영사관 앞에서 한인들과 함께 항의한 적도 있다.

4월 22일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블랙팬서당 일리노이주 지부장 프레드 햄튼의 삶과 죽음을 다룬다. 햄튼은 무장 저항만을 주장한 인물이 아니라 시카고에서 아침마다 정치 교육을 하고 무료 식사를 제공하면서 주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지역의 갱 조직들을 중재해 불가침 협약을 맺도록 했고,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이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계, 라틴계, 아시아계 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흑인 운동의 지도자를 제거하려는 연방수사국과 시카고 경찰에게 1969년 21세의 나이로 자신의 집에서 총으로 살해됐다. 하지만 햄튼이 남긴 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여전히 기억할 만하다.

“여러분은 불에 불로 맞서는 것이 최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여러분이 불에 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종주의에 인종주의로 맞서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인종주의에 연대로 맞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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