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책임 보건의료일자리가 건강할 권리를 보장합니다

[연속기고④] 번아웃 의료진, 공치사 아닌 국가책임일자리를

번아웃, 공공의료 노동자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이 지난 2월 2일 청와대 앞에서 투쟁을 선포했다. ‘덕분에 챌린지’로 국민적 지지와 응원을 받는 ‘코로나19 전사들’이 인력충원과 극심한 노동강도 개선을 촉구한 것이다.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부터 인력보충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답이 없었고,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결국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100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IMF 구제금융 이후 최악의 일자리 참사 상황에서,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공공의료기관 노동자의 과로와 탈진은 매우 역설적이다.

  지난 2월 2일 보건의료노조가 코로나19 전담병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 인력 부족과 열악한 공공의료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 1,000명당 2.4명의 의사가 있고, 6.9명의 간호 인력이 있다. OECD 평균인 인구 1천 명당 의사 3.4명, 간호인력 9.0명의 약 70%에 불과하다. 의사 수는 최하위이고, 간호사 수는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 결과 한국 의사 1명은 연간 약 7,500명을 진료하여 OECD 평균 2,500명의 3배에 달하는 업무를 하고, 병상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18.6%에 불과해 5배 이상의 고강도 노동을 견디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2018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역시 현실을 잘 드러낸다. 응답자 81.8%가 인력이 부족하고, 76.2%가 인력부족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76.5%가 이로 인해 의료사고 발생위험이 높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50.5%가 ‘업무량이 근무시간 내에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다’고 답했지만, 연장근무가 일상화되어 있음에도 이를 온전히 보상하는 경우는 20.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가혹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해온 공공의료기관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한국 병상 수는 OECD 평균 3배에 달해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공공병상은 10%에 불과해, 70%인 OECD 평균 공공병상 비율에 비하면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멕시코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를 기록할 만큼 열악한 수준이다. 공공의료기관 역시 6%로 OECD 평균(53.5%)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국립대학병원을 제외한 공공의료기관 대부분의 인력은 민간병원의 80-85%에 지나지 않고, 시설과 장비는 민간병원과 비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열악하다. 이렇듯 공공의료 노동자들은 모자란 인력, 낙후한 시설과 장비,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탈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코로나19 대응 최전선, 공공의료 노동자에게는 공치사가 아니라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라는 재난 한복판에서 공공의료는 자신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했다. 지금껏 코로나19 환자의 대부분을 공공의료기관이 담당했다. 세계 최고의 병상 수와 시설을 자랑하는 민간병원들이 하지 못한 일을,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열악한 자원과 인력을 가진 공공의료기관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공공의료는 요구되는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악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코로나19 환자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병상 부족을 이유로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하던 환자가 쫓겨나는 사태도 일어났다. 의료붕괴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 뒤에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피와 땀이 있다. 공공의료의 획기적 강화는 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역시 공공의료 강화·확충을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코로나19 유행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한 일이 없다. 시설·기관은 고사하고 인력을 보충하지도 않았고, 과로에 시달리는 감염병 대응 인력에게 보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공공의료를 더욱 약화할 의료산업화·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2020년 정부는 ‘소비자대상 직접(DTC) 유전자 검사’ 항목 확대, 모바일 의료용 앱 안전관리지침 완화, 전화 및 원격처방 추진 등 의료산업화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7월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종합계획’의 보건의료 정책 역시 ‘스마트병원’, ‘원격의료’, ‘AI진단’, ‘디지털 돌봄’ 등 의료산업화 일색이었다. 2021년 4월 26일 정부가 발표한 ‘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안’ 역시 공공의료 확충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실할 뿐만 아니라, 공공의료 자동화를 명분으로 ‘스마트병원’ 등 의료산업화 정책을 공공의료 강화대책으로 포장해 내놓았다.

여전히 정부에게 보건의료는 말로만 필수노동, 말로만 공공재일 뿐이다. 자본을 위해 이윤을 낳아야 하는 또 하나의 산업일 뿐이다.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공공의료 노동자에 대한 공치사가 아니라 실제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거대한 재난으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야 한다.

건강할 권리, 공공의료 강화와 국가책임 보건의료 일자리로부터 시작하자

정부가 고수해온 민간중심 보건의료체계 구축정책으로, 또한 1990년대부터 진행된 의료민영화·산업화로 공공의료는 거의 몰락하다시피 했다. 민간중심 보건의료체계는 이윤 추구에 따른 과잉진료 및 비급여 진료가 만연하고, 수익에 따른 지역 의료기반과 의료직역 간 불균등,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왜곡 등의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건강할 권리는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보건의료 인력 부족과 이윤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민간중심 의료체계 아래 대중의 온전한 건강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현행 민간중심의 의료체계를 공공의료 중심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건강할 권리가 기본권이라면 의료는 공공재여야 한다. 보건의료 노동이 사회적 필수노동이라면, 이를 국가책임으로 확충해야 한다.

최악의 일자리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보건의료 노동자들, 특히 공공의료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탈진하고 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고용난의 본질을 드러낸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선 필수노동을 확대해야 하지만,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한다’는 논리가 필수노동 확대를 막고 있다. 번드르르한 ‘4차 산업혁명’론이 선전하는 것처럼 더 이상 노동자 없이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어서 고용난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고용난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필수부문인 보건의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 공공의료가 그 열악한 기반으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현실은 말한다. 우리는 사회적 필요 충족을 위해 필요한 일자리를 지금보다 확대해야 하며, 또한 확대할 수 있다고. 이것이 필자가 공공의료의 질적 강화를, 국가책임 보건의료 일자리의 획기적 확충을 주장하는 이유다. 정부는 코로나19와 싸우는 공공의료 노동자들에게 공치사만 거듭했다. 그러나 말뿐인 대책은 필요 없다. 정부는 사회적 필수노동인 보건의료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어디 보건의료 영역에만 있겠는가. 사회에 필요한 일자리는 확보될 수 있고, 확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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